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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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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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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비닐봉투


BY 진주담치 2006-07-31

전 국토를 벌집 쑤시듯 휘젓고 떠나간 장마.

아직 일부 지방의 비소식을 간간히 접하지만

이젠 그 휘젓고 지나간 상처들을 치료하고 보듬어야한다.

상처입은 마음들도 아울러.

 

며칠동안 산에 가지 못하고  휴일날도 공원에만 산책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비가 계속되고 바깥 출입도 자제하다보니 슬슬 궁금해지는것이 있었다.

 

학교옆 담장밑에서 늘 옹기종기 모여 계시던 대여섯 할머니들의 좌판 시장이.

장마동안 벌이가 없어 어찌 사는지.

 

금방 따온 풋고추, 흙묻은 열무 .  - 그러나 가지런히 다듬어 놓은-.

호박잎, 상추, 쪽파, 꼬부라진 오이들, 크기가 들쑥날쑥인 싱싱한 토마토들.

 

도시 처녀들처럼 세련되고 화려하지않은

산골처녀같은 어리숙함이지만  그러나  이뻐해주고 싶은 볼품없는 그 야채들.

 

대형마트의 거대 냉장 진열대에서의 야채처럼 세련됨을 뽐내지도 못하지만

1000원, 2000원 어치씩 모듬지어져 주인의 때절은 보자기  위에서

주인만큼 초라하고 순박한, 시골처녀 냄새를 물씬 풍기는 그 야채들.

 

오이1000원, 비듬나물 2000원,  고구마줄기 2000원어치 사면

역시 몇번 써서 쭈그러진 까만 비닐봉투에  담겨진다.

 

담아주는 그 손길 역시 세월의 흔적이,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주름진 얼굴과 맞먹는 주름진 손과  

닳아 없어질것 같은 지문을 가진 손바닥이다.

그분들에게 도라지나 민들레 잎.  고들빼기 등을 사면서

어찌해서 먹냐고 물으면 자세히 설명도 잘해 주신다.  신나서.    

 난 알지.    이 설명을 하시면서 그들이 얼마나 자기 존재가치를 느끼시는지.

 

그 할머니들 중엔 같이 사는 며느리에게 시간을 주기위해

일부러  나와계신 분들도 있을것이고  용돈 벌이라도 하기 위한 분들도 있겠지.

아님  방세를 내기 위해,  관리비를 내기 위해,  쌀을 사기 위해 나온 분들도 있겠지.

 

그 한켠에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파는 손두부 장수가 있다.    콩국물도 같이 파는.

두부가  따끈할때 김치에 싸서 먹는것을  우리 아이들도 좋아한다.

 

언제부턴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편리함, 화려함보다는

이 검은 비닐봉투에 담겨지는 쇼핑을 즐기며 애착을 갖게 되었다.

3,4년쯤 되었을까?    아니,5,6년쯤 되었을까?

자신감을 서서히 상실해가면서부터,  

삶이 그리 녹녹한게 아니란걸 알게 되면서부터,

자식들이 기대만큼 잘 성장하지 못하면서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아니면 나이들면서 정이 많아져서 일까?           철들어서일까?

 

남편과의 야산 등산이나 산책중에 그냥 지나칠수없어 충동적으로

사들고 오는 검은색 비닐봉투는 한동안 남편의 골치거리였다.

집 가까이에서 사면 괜찮은데 공원이나 산넘어  반대편에서 사는 야채나 물건들은

 고스란히  남편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가 들고 와야 하니까.  

 

처음엔 \"내가 들고 갈수 있어\" 하고 호기를 부리지만

얼마 못가서 내 한몸도 추스리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걷는 속도가 달라서 내가 쉬이 지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까만 비닐봉투는 늘 그의 차지가 될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등산하는 산의 초입에서 사들인 알타리 3단을 배낭속에  짊어지고

등산을 한적도 있었다.               

그날,  그는  마누라 잘못 만난 고생좀 했었지.    ㅎㅎ

 

그 뿐만이 아니다.

차타고 어디 좀 멀리라도 갈때면  차가 밀리는 구간에서 항상 나타나는 뻥튀기장수.

막걸리 넣고 부풀린 옥수수나 밀가루빵 장수.

역시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난 또 그들의 단골 고객이 된다.

땡볕이 내리쬐는 몇차선의 아스팥트 도로위를  차가 밀리는 시간을 이용해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그들을

그냥 지나칠 배짱이 내겐 없다.

 

한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나의 이런 충동적 구매에 신경질내며 뭐라 말했지만

 난 오히려

\"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저 사람들도 먹고 살지.

 당신 소득이 저들보다 몇배 훨씬 낫잖아.

내가 이러는건 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이야\"      라면서 큰소리 친다.

 

이젠 남편과 아이들도 포기했다.

오히려 외출했다가 빈손으로 오면 이상하다 한다.

내가 취미생활을 못했다고 한다.

 

가끔은 사온 야채들을 다 못먹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할수 없다.

 

그래서 다정도 병이다.

 

오늘도 산에서 내려오는길에

고구마 줄기와 크기가 다양한 싱싱한 토마토를 5000원어치 샀다.

두부 한모와.

오늘 저녁 메뉴는 고구마줄기 볶음과 된장찌게 이다.

 

그러나  난

늘  한탄한다.

그 야채들을, 그 뻥튀기를 한번쯤 다 몽땅  사줄수 있는 기회가 없음을.

그럴 능력이 없음을.

 

 

식당이라도 차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