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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장례식(3)


BY 개망초꽃 2006-07-28

나의 아버진 꽃상여를 타고 밭고랑을 지나 냇물을 건너 산으로 올라가셨다. 어릴 적에 꾼 꿈같이 아련한 아버지 장례식은 내게 있어 첫 번째 장례식이었다. 관을 묻고 붉은 흙을 덮으며 어이 어이 곡을 하던 아버지 장례식과는 달리 작은 아버지는 화장을 한다고 산으로 뚫어진 길을 장의차를 타고 달려갔다.


산속에 박혀 있던 화장터는 산사에 온 것 같이 조용하고 한가했다. 세 개의 방이 있는 한꺼번에 세 시신을 녹일 수 있는 오 분의 서랍같이 생긴 곳에 관을 올려놓고 기도를 했다. 세상 시름 다 태우고 가라고 기도를 하는 것인지, 목사님 목소리는 더 떨렸다. ‘철컥’ 관을 실은 오븐서랍은 닫혔다. 우리는 야회에 차려진 벤치에 앉아 화장하는 건물을 마주보고 앉았다. 미세한 연기가 건물위로 약간보이더니 이내 열기만 아지랑이로 어른어른 올라간다. 까만 바탕에 흰 글씨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만 커다랗게 간판으로 붙어 있는 평범한 건물이다. 한참 침묵의 시간이 흐르던 중 막내작은아버지가 ‘빕’ 글자에 잠자리가 앉아 있다, 하신다. 우리의 눈은 일시에 그 곳으로 향한다. 그러게 잠자리가 한 마리 앉아 있네. 막냇동생 딸내미가 잠자리를 가까이 본다고 달려가고, 나는 건물위 낮게 내려앉은 하늘색 하늘을 본다.


왼편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물을 바라보고 비비추가 한창 절정기였다. 까맣고 큰 나비가 비비추 꽃에서 꿀을 찾는다. 장례식장이라서 나비도 까만색만 모여드나보다. 몇 마리 까만 나비는 꽃에 앉았다 하늘위로 올랐다가 뒤에 있는 흰 납골단 건물로 날아간다. 올케랑 화장실이 있는 건물로 내려가면서 시멘트 담벼락에 피어 있는 누두베키아꽃을 발견했다. 키 작은 해바라기 닮은 꽃,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꽃, 올케는 삼입국화라고 했고, 나는 아니야 누두베키아야, 라고 우겼다. 갔다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화장터로 천천히 걸었다. 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치? 그렇게 욕심이 많고  엄마를 미워하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데 사는 것이 힘들다고 싸우고, 미워하고, 뒤 돌아 앉고, 만나지도 않고 그랬을까? 고생만 하시다 가신 분. 인생이 참 별 거 아닌데.......막내작은아버지에게 커피를 건네고 다들 말없이 똑같이 커피를 마신다. 달다. 향긋하다. 인생이 달기만 하면 인생이 향긋하기만 하면…….그러면 재미가 없겠지. 무기력하겠지. 행복이 뭔지 모르겠지. 차 한 잔 갖는 시간이 이렇게 소중한 줄 모를 거야. 독감을 앓다가 밥맛도 약 맛 같고 커피 맛도 약 맛 같다가 일주일쯤 지나 감기가 물러갈 때쯤  밥맛이 구수하고 커피 맛이 향긋할 때, 얼마나 살 것 같은지,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것처럼.


막내작은아버지는 고향 이야기를 하신다. 고향의 계절꽃 이야기를 하시며,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덧붙이신다. 그리고  지금 화끈하게 잘 타고 있는 작은아버지를 곁들여 그리움에 축축이 젖은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아버지가 꽃상여 타고 가던 모습이 복사꽃처럼 화사하게 자꾸 보인다. 그게 나에겐 첫 번째 장례식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 장례식이 된다. 아버지는 종이꽃에 싸여 흙에 파묻혔고, 작은 아버지는 생화에 싸여 뜨거운 불가마속에 묻히고 계신다. 첫 번째 장례식은 38년 전이었고, 그때는 울음소리로 온 산천이 흔들렸었다. 너무 젊은 나이에 가신 아버지를 따라 울음소리와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 번째 장례식은 눈시울이 젖다가도 이내 지난 이야기를 조용하게 하고 추억을 더듬거리며 웃었다.


두 시간쯤 지나 작은아버지 시신은 석고처럼 하얗게 형태만 남아 있었다. 전시한 조각품 같았다. 우리는 석회로 만든 하얀 조각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조각품을 쓸어 담아 분쇄기로 갉아 오동나무 항아리에 담아 보자기에 싸여 나왔다. 큰 체구의 작은아버지는 작은 항아리만 해져 나온것이다. 동화속 호리병속의 거인처럼 부르면 휘리릭 연기에 싸여 나올 것만 같았다. 하얀 건물, 까만 나비가 날아가던 곳. 아파트 우편함 같이 생긴 곳에 뼈가루를 담은 항아리를 넣었다. 살아 있을 때는 집 평수를 늘리려 갖은 욕심과 고생을 다 하던 사람들이 죽을 땐 사과 상자보다는 작고 우편함보다 큰 곳에 눕게 되는 것인데, 나도 왜 이리 누군가를 미워해야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갖으려 고민하고 울고 기다리고 안달을 해야 하는지.


막내작은아버지는 나무을 붙잡고 뒷모습으로 서 계셨다.  뒷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모처럼 의지하던 큰형인 우리 아버지를 잃고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외로움과 허전함으로 보냈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자꾸 나온다. 서로 미워한 작은형을 이제 납골 단에 두고서는 살아생전에 자주 만나고 덜 미워할걸, 하시며 뒷모습으로 서 계시는 걸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 그 허전함이란 얼마나 가슴이 저리고 쓰라릴지 나는 아직 다 잃지 않아 모르지만 나무를 붙잡고 계신 그 쓸쓸함이 내게로 전달이 되어와서 눈물이 흘렀다.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병원으로 다시 모여 헤어지는 인사를 강줄기처럼 길게 길게 했다. 살아 있을 때 자주 보자고 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작은어머니는 우리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드신다. 그 옛날 나를 쥐어박던 손은 이제 없다. 안쓰럽고 안타깝고 정겨운 손만 남아 흔들고 또 흔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