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처음으로 상경했을때는
대학4학년 여름방학때였다.
상경이라지만 서울은 아니었고
(경상도 사람은 서울근처는 무조건 서울이라 하는 경향이 있어서)
서울근처인 금촌 친척언니네서 기식하며 학원을 다녔었다.
그렇게 한 1년 비비다가 운좋게 직장이라고 어디를 비집고 들어갔다.
서울중에서도 물좋은 강남 논현동.
나는 홍은동으로 자취방을 얻어 이사를 했고 주민등록도 서울로 옮겼다.
직장도 서울, 주민등록도 서울인 나는 드디어 서울사람이 된 것이다.
하지만 민증만 서울이면 뭐하나, 입에선 경상도 생사투리가 튀어나오는데.
그래서 직장에 들어가고부턴 열심히 서울말을 쓰려고 노력했다.
한 몇 달 노력하니 아닌게 아니라 그 간지러운 서울말이 입에서 버젓히 나왔다.
시장에서 콩나물 살때도
‘이거 얼만기요?’가 아니라 ‘이거 얼마예요?’
버스탈때도 ‘동대문 갑니꺼?’가 아니라 ‘동대문 가요?’
억양까지도 살짝 올리며 팔자에 없는 서울말을.
이렇게 나름대로 연습한 서울말을 쓰고 다니며
이제 경상도 사람티가 벗겨졌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나 직업상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그것은 나만의 환상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서울말을 한다고 했는데
첫마디를 내뱉자 마자 상대방이 하는말.
‘경상도에서 오셨나 봐요? 고향이 경상도 어디에요?’
참 심난했다.
서울에서 4,5년 살았을 무렵에는 내 서울말이 일치월장했건만
그래도 나의 어정쩡한 서울말은 서울내기가 듣기엔 좀 이상했던지
심지어 ‘고향이 전라도에요?’라고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뿐인가 오랜만에 옛직장 선배한테 전화를 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서울말로 대화를 하는데 중간에 선배가 그런다.
‘넌 서울서 몇 년을 살았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이렇게 살다가
하루는 우연히 경미라고 국민학교 친구를 길가에서 만나게 됐다.
국민학교 친구를 서울 길바닥에서 만나니 너무 기뻐 폴짝 뛰었지만
그 만남은 내게 씁쓸하기 그지없는 뒤끝을 남겼다.
경미는 서울서 직장생활을 하다 서울남자를 만나 결혼했는데
어찌나 어정쩡한 서울말을 쓰던지
얘기하는 내내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원래 경상도사람은 아무리 오래 서울에서 살아도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면 경상도말이 튀어나오게 되어있다.
근데 경미는 내 국민학교 친구고 나처럼 죽 경상도에서 살았으면서
내 앞에서 서울말을 쓰는 것이다.
그것도 잘이나 쓰면 모를까 나와 진배없는 어정쩡한 서울말을.
나는 이를 거울삼아 내 어정쩡한 서울말을 완전히 버리고
다시 경상도말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초년기의 20년 정도를 경상도에서,
청년기의 10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내 말씨에선 전혀 서울말투를 찾아볼 수 없다.
독일에 온 이후 유학온 학생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이상하게도 그들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말을 썼다.
서울사람만 유학을 오는 것이 아닐진데,
길거리에서 우연히 보게되는 한국사람도 거의 서울말씨,
월드컵 응원온 붉은 악마도 거의 서울말씨.
물론 이들이 다 서울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경상도 사람이 아닌 것만도 분명하다.
한국사람의 4분의 1이 서울에서 산다지만
경기도와 인천, 충청도 사람들은 거의 서울말씨와 가깝다.
전라도와 강원도 사람들도 서울말 배우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서울서 제일 먼 제주도 사람조차도 서울말을 곧잘 배운다.
하지만 경상도 사람은 정말 안된다.
그래서 어디서건 눈에 띈다.
난 경미를 만난 이후 버린 경상도 사투리를 10년넘게 고수하고 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나는 일부러 재미있으라고 경상도가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완전 깡 사투리를 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매
그때 그시절 내가 경상도 사투리쓰는 것이 부끄러워
서울말 비스무리한 말을 썼던 것이 도리어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막 닭살이 돋는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시집가 오래 사신 아컴의 화끈녀 도가도님이
얼마전 경상도 사투리에대한 재미있는 글을 올렸다.
그 사투리 분석에 얼마나 웃었는지.
그녀는 경상도에서 오래 살아 이제 자신도 경상도사람이 다 되었다고 했다.
나는 경상도 사람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시험하기 위해
도가도님께 퀴즈를 냈다.
‘인뜨라 고마 쌔리방가뿐다!’를 해석하라.
도가도님은 해석하지 못했다.
\'하동띠기 당신말야, 아직 2% 부족해!\'
이 뜻을 아시는 분은 댓글을 달아주시기 바란다.
제대로된 해석에는 상품과 상장이 없는 상을 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