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벌써 늦가을로 접어든다.
산중의 가을도 이제 고즈넉해졌겠지.
너무나 고즈넉해서 우울증이 생길지도 모를텐데, 세상밖으로 나와서 돌아다니기도 하지...
그렇게 오지말라고 하던 친구가 오라고 해서 페루친구와 또다른 친구가 산사를 향해 달렸다.
난 아이때문에 다음기회를 엿봐야 했다.
\"음......너무 말랐더라...그렇게 오지말라고 지랄을 떨더니만 우리 둘이 나타나니깐
너무 좋아라 팔짝 팔짝 뛰더라....너두 갔으면 좋았었을텐데 너두 보구싶다더라\"
\"그래....나두 너무 보구싶어..\"
\"오래...... 못.......산다구......하더라..........\"
\"어쩌니........................\"
친구는 힘겨운 투병을 하면서 좋다는 곳은 다 돌아다니면서
치료를 적극적으로 했지만 결국 병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출산의 고통보다 몇십배나 더 크다는 아픔을 참아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페루친구는 자주 문병을 가서 나에게 친구의 상황을 전해준다.
조만간 부산에 내려가서 다시 한번 치료를 해본다고...
연말이 되니 여기저기 분위기가 들떠있어
친구들을 만나고....가족모임을 나가고...떠나보내는 2005년을 아쉬워하며
모임에 모임....술에 또 술....
페루친구와 또한명의 친구를 집으로 불렀다.
남편이 아이를 잘 봐준 덕에 오랫만에 친구들과 망년회란걸 하게되었다.
\"우리 J한테 전화해보자...그 지지배 아마도 좋아할꺼야...\"
\"그래 나좀 바꿔 줘라 꼭.......\"
따르릉~~~~~
\"우리 지금 밥먹구있어...너두 같이 있음 정말 좋을텐데....
참...너 생일이 12월22일이지? 미리 축하해....생일 미리 축하해주면 오래산다더라.
올리비아 바꿔줄께...\"
\"J야 .....오랫만이야. 찾아가보지 못해서 미안해...나 지금 너 너무 보구싶다.
너무 보구싶어...\"
친구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어눌해서 알아듣질 못하겠다.
\"그..래.. 지...지...배야.. 나두... 너... 보구...싶어..넌... 애땜시... 그렇잖아....
매일밤....나.... 생각하면서 ....하얀...... 손수건... 적셔라.....\"
\".............\"
\"애들아 이건 내 생각인데......우리 지금 부산내려가서 깜짝 생일파티 해줄까?..\"
\"난 괜찮은데 올리비아가 아이때문에 그렇지.....\"
\"토요일이니 남편이 아이보면 될꺼야......한번 말해보께.....\"
남편은 아이걱정은 하지말고 다녀오라며 케익사주라고 몇만원을 내주머니에 찔러넣어준다.
고마워 미치겠네....
새벽의 고속도로는 황량하기만 했다.
언양휴게소 근처에 오니 동쪽 새벽하늘이 희미하게 열리기 시작한다.
맘이 떨려온다.
\"올리비아야 J 보구 너무 놀라지마....우린 그래도 몇차례 보아왔기때문에
그리 놀랍지 않을텐데 넌 조금 ...아니 많이 놀랄지도 몰라...마음 단단히 먹어.....\"
더욱더 마음이 방망이질을 한다.
네비게이션은 친절하게도 친구가 묶고있는 이모집앞까지 데려다 준다.
아침일찍 연 빵집을 찾아 시골스러운 케익하나를 사들고 문앞에 서있으니 친정엄마와 이모가 나와계신다.
그냥 친구만 불러내서 생일축하해주고 갈생각이었는데...그게 무슨 경우냐며
들어와서 아침을 먹으란다.
아픈사람이나 곁에있는 모든사람들이 모두 지쳐가고있다.
현관을 지나 거실문을 열고 들어섰다.
거실한켠에 어디에서고 본일이 없는 아주 낮선 사람이 앉아서
약봉투를 어눌한 손놀림으로 뜯고있다.
\"친구야...나야....나 너무나 너 보구싶어서 이렇게 밤을 달려서 달려서 왔어.....\"
\"에....이....구....지....지....배....들...하....구...는.......애...는....어..찌..하...구....\"
\"음.....주말이잖아 남편이 봐주고있지....우리한번 껴안아 보자..멋지게 인사한번 하자...\"
친구는 너무나도 말라있었다. 훅하면 날아가 버릴정도로.....
그 곱디고운 얼굴은 어디다 버리고 넌 이렇게 생소한 모습으로 날 바라보고있는거니...
나 정말 미쳐버리겠다 친구야...미쳐서 심장이 터져버릴것같아....
근데 니 앞에서는 눈물보이면 안될것같아서 꾹꾹 참을래... 참을래....
\"맛...나...지? 우..리..이..모..가.. 음..식..솜..씨..가 좋...으..셔..서.... 달..랑..무..좀 ..먹...어..봐 ..넘.. 맛나....\"
\"응......................\"
신랑 무릎에 기대어 앉은 친구는 복수가 너무나 차서 편하게 앉아 있질 못한다.
\"너 41살이니까 초를 그리꼽을까?\"
\"나.. 호..적..으..로.. 2년..이 줄...었..어...병..원..나..이..가.. 38이..더..라.....\"
\"그럼 38개? 지지배 그래도 젊은건 좋아서...ㅎㅎㅎㅎ\"
\"니..네..들.. 맘...대...로...해.....\"
41개의 촛불이 아스라히 켜지더니 또 아스라히 꺼져간다.
\"친구야 내년엔 내가 꼭 2단케익으로 모시겠습니다...너 그거 먹으려면 꼭 건강해져서
올라와야 해....\"
\"지..지..배....알..았..어..\"
친구의 남편은 병원으로 올라가기전에 전주에 있는 한의원에 한번 가보고 싶단다.
잠시들른 휴게소에서 친구는 우리한테 커피 한잔씩을 뽑아준다.
그렇게 친구는 힘들게 부산에서 전주로 향한다.
전주에 도착하니 해가 어둑어둑 저물고 있다.
아픈친구를 앞자리에 태우고 가는 길은 너무나도 멀고도 멀었다
산골을 구비구비 들어가니 겨우 희미하게 한의원이 있다.
어두워 풍경은 안보이지만 코끝에 느껴지는 공기는 분명 서울에서 느끼지 못하는 신선함과
에너지가 넘쳐있었다.
\"친구야 너무 좋은곳이야...너 여기있음 병이 몽땅 사라져 버리겠다...
푹쉬고 올라와야해...알았지?\"
우리가 서울을 향해 떠나려는데 친구가 어리둥절해한다.
왜 자기를 여기에 남기고 다들 떠나려하냐고 여기가 너무나 낮설다고...
어둠속에 친구를 남기고 떠나는 귓전을 찬바람이 매섭게 내려친다.
\"남편이 그러더라.....부산에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이젠 가망이 없으니 정리하라고...\"
\"..............................\"
친구가 산속 한의원에서 묶던 밤....전라도 땅엔 하늘도 슬펐는지 하얀 눈물을 하염없이 뿌렸다.
\"친구야 잘잤니? 어제밤 전라도엔 눈이 엄청 많이 왔던데...큰일앞에 눈이나 비가 오면 꼭 좋은일이 있다더라...너한테도 꼭 좋은일이 있으려고 그러나보다..힘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