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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 아버지와 비린 냄새


BY 라메르 2006-07-19

아버지와 비린 냄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다가 해질무렵에 멎었습니다. 거리는 맑고

깨끗해졌는데 비릿한 냄새가 사방에서 흘러나옵니다. 냄새는 어디에서

나온걸까요? 방죽위를 범람하던 물따라 샛강의 물이끼가 따라온 모양입니다

언젠가 아버지와 비온 날 냇가로 미꾸라지를 잡으러 갔을 때 강에서 나던

비릿한 냄새와 같습니다.


아마 초등학교를 들어가던 해 여름방학부터였을꺼예요. 여름이면 아버지는

늘 미꾸라지를 잡으러 강으로 나가셨지요. 어깨에 긴 그물망을 메시고 앞장

서 가시면 전 깡통을 들고 뒤따라 나섰지요.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얼마나

빠르던지요 마치 흐르는 강물같았어요. 아버지를 놓칠세라 콩.콩.콩 뛰면

나보다 깡통이 더 요란한 소리를 냈지요. 비 온 뒤 샛강의 풀들은 다정한

몸짓을 하며 내 다리를 휘휘 감았고 간질한 감촉때문에 황홀했지요. 


아버지가 그물을 드리우던 곳. 이젠 그곳에는 고층의 모텔이 들어서

있더군요. 강의 맨 끝자락쪽으로 물살이 완만한 그곳에 버드나무 숲이

있었지요. 아버지가 버드나무 숲 옆구리에 그물을 쿡 찔러두고 발을

휘젖어 몰이를 하시면 화들짝 놀란 고기들이 얼떨결에 그물에 걸리곤

했어요. 버드나무 숲위로 넓직한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바위

위에서 \'나뭇군과 선녀\'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그 바람에 전 그 바위에

오르면 아버지가 서 계신 저 웅덩이 어디쯤에선가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을꺼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어요.  어쩌면 선녀는 엄마가 아닐까

상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때면 고기를 잡는 아버지가 나뭇군이 되어

아내를 잃어 버리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요.

\"이놈아 고기 안 받고 뭐하냐?\"

아버지의 고함은 나의 이런 몽상을 금새 깨워버렸지요.


언제부턴가 깡통을 드는 일이 창피해지기 시작했어요. 4학년 즈음이었을

꺼예요. 내 생에 봄날이 찾아 오고 있었지요. 안개속처럼 희뿌연 것들이

때론 기쁘기도 한 것 같다가 이내 슬퍼지고, 놀랍기도 한 감정의 소용돌이

와 몽환이 자주 찾아와 발을 딛는 현실이 건조하고 딱딱해 버거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지요. 그해 여름 어느날, 그날도 여느날처럼 깡통을 들고

강에 갔다가 준구오빠를 만나고 말았어요. 오빠는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타를 치며 노래를 잘 부르던 마을의 중학생이었지요.  오빠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다리를 헛디디고 말았어요. 깊은 늪처럼 아득했던 느낌.

깨어났을땐 엄마와 아버지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렸지요

\"저 아이가 아무래도 사춘기인가봐\"

\"그럴리가요. 저렇게 쬐끄만게, 아직 애긴데...\"

\"이 책 좀 보라구 큰 아이가 보던 건 줄 알았더니 아니라네\"

\"고독한 사춘기,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어머머  제가 이걸 이해한단

말예요?\"

\"다음부터 저 아이한테 깡통들게 하지맙시다\"

그후로 깡통의 바턴은 동생에게로 넘어가게되었지요.


그해 여름 몸이 마르고 가끔 어지럼증이 찾아왔어요.

\"더위엔 보양으로는 추어탕이 최고여\"

아버지는 추어탕을 자주 먹으라 하셨어요. 그런데 어쩐일인지 그후로

추어탕 근처만 얼씬해도 임산부가 입덧하듯 속이 편치않았었지요. 가족들은

추어탕을, 전 추어탕 대신 볶음요리를 먹기 시작했는데 제가 좋아하는

멸치볶음이라 하셨지요. 새 학기가 시작된후에도 전 즐겨먹던 볶음요리를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갔는데 어느날 멸치요리로만 알았던 볶음요리의

실체를 알게되었지요.

\"으 악\"

놀라서 내동뎅이쳐진 도시락 반찬 칸엔 밥에서 나온 김 때문에 양념이

벗겨진 허연 미꾸라지 사체가 눈을 휘번덕 뜨고 있었지요.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져 반 아이는 물론 다른 반 아이들이 절 보면

\'으 악 ~ \' 뒤로 넘어가는 시늉울 하며 놀려 대곤 했지요.


비가 멎은 저녁 사방은 고요하네요. 물 비린내가 어둠처럼 낮게 깔리

면서 사방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냄새는 그물을 메고 가던 아버지의

어깨의 그물망에서 나던, 소녀가 들고 가던 깡통에서 나던 추억의

냄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