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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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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인 못사는 체질?


BY 혜진엄마 2006-07-19

소설 읽기를 즐겨하면  삶도
소설같이 살아진다던가

 

아이들과 성로원 영아원에서 지낼 때다
때는 81년 여름이었던가


딸 혜진이 등에 업고 

저녁 반찬으로 감자를 깎고 있는데


(매 끼마다 감자 한말씩 깎고  김치는 일주일에 한 접씩 담궜다 )

 

보모 장 인 전옥자씨가 웃으며 오더니
\"아줌마 3층 강당에 영화촬영 하러 오는데 구경 하러가지? 한다


내가 시골서 왔으니 그런 구경을 어디서 했겠는가 

그 시절에는 더욱이나 ..

 

..
전옥자씨가 큰맘먹고 날 일에서 잠시 놓여나 멋진 구경 좀 하라고 해주니
얼마나  좋던지 ..


땀에 절어 등에서 고개를 늘어뜨리고 자는

아이를 업은 채


내 꼬라지도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을 해 가지고도 

젊고 어린 맘에 그저 구경이라니 좋아서
헐레벌떡 3층으로 올라 가보니 

 

보모 몇과  배우들,

엑스트라 와  감독 

 

이런 사람들이
벌써 촬영에 들어가고 있는 중이였다


영화 제목은  어둠의 자식들.   

주연 나영희 감독 이장호


엑스트라는 우리 보모들, 

극 내용은   박원숙이 사창가에서 낳은 사생아를 우리 고아원에
맡겨서  보모가 돌보는데

 

나영희가 죽은 박원숙이 대신해서 

찾아와 원장 역인 중년 배우와
대화 몇 토막  나누는 장면이 그 날 촬영 전부다

 

너무나 젊었던 이장호 감독 

요즘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 분을 TV에서 보노라면


그 날 그 여름 오후

후텁지근한 3층 강당의 열기가 다시금

내 몸을 근질 오싹 하게 만든다


젊고  패기 만만하고 눈빛이 빛나던.그 분 

작은 체구지만  탄력 있고 근육질인 몸 하며 

 

참말로
젊은 이십대 생과부 심장을 벌떡 벌떡 뛰게 맹글고 

오줌이라도 지리는 느낌으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게 만들던

  그 터프한  동작  동작들 ..

 

거침없이 중년 배우 사내에게

독설을 뱉고도

무표정으로 외치던  레디 고! 소리

  

난  촬영 내용이나  여배우 나영희씨 얼굴이나 

 뭐 대사나 그 딴 거 다 아랑곳없이


오직 이장호 감독에게 혼을 빼앗긴 채

온전히 나를 잊었던 순간이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고

 나와 다른 대단한 사람이라도 

 그도 사람인지라  누가 자기를  오랜 시간 동안  
구멍이 나도록  쳐다본다는 걸 알았는지 

 

어쩌다 한번 힐끗 쳐다보는데   아! 그 눈빛! 이라니 ..

 

불같이 이글거리는  젊은 감독의 눈길을


정면으로 받은 난  인어공주처럼  파도로 변하던가

한줌 연기처럼  사르르 전신이 해체 되어 버린 느낌  바로 그것이었지 싶다

 

대사 몇 마디가 다인

 촬영이  두시간여의 시간을 끌다 드디어 끝나고


딸 데뷔작에 자랑스레 따라온

나영희씨 어머니가

 

나와 보모들한테 인사 일일이
하고   돌아가고  난 뒤에야

난  영아원 입구에 세워둔 큰 전신 거울에서 내 모습을
봤다 

 

땀에 절어 헝클어진 파마 기 없는 생 머리를

 뒤로 아무렇게나 꿍처 틀어 올려 검은 철사 핀꼿고 

 

야윈 어깨엔 영아원에서 얻어 걸친 늘어진  티 쪼가리 

퉁퉁 불어 축 처진 젖퉁이에다


등에 업힌 아이의 야윈 팔 다리  

때에 절고 보풀이 휴지처럼 허옇게 붙은  여름 포대기 
내 비닐 슬리퍼  하하 ~

 

그 꼴을 해 가지고도 남자에게 혼을 빼앗기다니  

장장 두 시간 동안이나  말이다

 

그 날부터

난  밤마다 소설을 썼다  상상 속 그 분과의 사랑을


백 여명의 영아원 식구들 밥을 해대고 

늦은 시간

내 자는 골방으로 돌아오면


전신은 육탈이 될 정도로  초죽음이 되건만 

이장호 감독  그 분 생각만 떠올리면


희한하게도 곤하지 않고  비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외롭지도 않으니  어찌 소설을 아니 쓰고 배기랴


내 인생에 있어 어둠이었든  그 시절에

무엇이든  희망의 끈 마음의 끈이  절실히 필요했었기도 하던

시기여서 일까

 

 어느 날 

영화 관람권이 서너 장 원장님 앞으로 왔다면서 

전옥자씨가 나와 보모 몇이서 

을지로 명보극장으로 가서 구경하고 오랬다  

 

저녁 일을 마치고  아이를 들쳐업고
보모들과  구경갔었다 

 

  영화 어둠의 자식들 ..

 

아무튼  그 해 여름은  택도 없는 짝사랑 핑계로 

그    지겨운 한 계절을
버텨냈던 것 같다


자나깨나  그 분 생각만 하고 

감자를 깎으면서도  소설을 쓰고


김치를 치댈 때도 그 사람 생각으로  억지  힘을 돋우고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기에 ..

 

 

그리고  몇 년 뒤 그 곳을 나와서

다시 힘겹게 살아가는 중에도 꼭 누굴 마음 속에 사랑을 해야
살아갈 자신이 생기는 병 아닌 병 버릇이 붙었다


하다 못해 감기가 걸려 병원에 가면

다정하게 대해주는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에도


그만 뿅 가설랑

나 혼자 사랑에 잠겨버리는

이상한 체질 독특한 취향으로까지 변해버렸으니  ..

 

오래 산 지금도  그 병이 자주? 도진다  여태도 .. 쩝

 

요즘

 나영희씨 드라마에 나오던데 데뷔 적 모습이나

별반 변한게 없더라

 

성로원 영아원에서 지낼 때

어떡하면 이 세월을 견딜까 뭔 낙으로 살까 고심하다

짬 틈틈이


수필 하나 써서

당시 주부생활 산문 부에 냈더니 뽑혔더라


뽑아주고  평해준 분이

 젊은 느티나무 쓴 작가 강신재 님이셨다

당시  내 참담했던 심정과
고난의 일상 속에  그 일이야말로 참으로 크나큰 기쁨과

자신감 회복에도   일조한 일이기도 하였고  ..

 

 요새 와서     ..쬐끔  그리워 진다 

아주 쬐끔만 ..........

 

 

오늘 괜히 사랑이 그리운 날
눈물과 한숨의 세월을 더듬고 캐내어  짝사랑하나 찾아보았네  

 

이제
서랍 닫고  점심이나 한 술 떠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