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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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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BY 동해바다 2006-07-19


      아마 그게 월계천이지 싶었다. 내 지금의 기억으로는...
      그냥 또랑이라고도 하고 개울이라고도 불리웠던 그곳엔 브로크 공장이 바로 이웃하여
      열 두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곤 했었다. 우리 집은 그 공장을 내려다보는 위치의 뚝방
      이라는 곳에서 살았다. 서울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빈곤했던 동네, 하지만 부모님 덕에
      별 어려움없이 살았던 시절이었다.  

      100여미터 올라가면 개천 위로 기찻길이 있고 그곳에서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
      성북역이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 경춘선이었을 것이다. 겁없이 놀던 그 시절, 선머슴처럼 
      기찻길에서 놀다가 기적소리가 들리면 개천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교각 아래로 몸을 수
      그려트리고 기차를 머리 위로 보내곤 하였다. 기차가 지나가면 얼얼한 귀를 뚫는다고 손
      가락으로 쑤셔대곤 했는데 참으로 위험스럽기 짝없는 어린시절이였던 것 같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면 우산을 받쳐들고 모래와 흙, 브로크가 쌓여있는 공장 앞 
      마당에 모두 모여 황톳물로 변해버린 도랑 옆에서 구경꾼이 된다. 개울건너 마을 사람들
      도 똑같은 상황으로 이 곳을 쳐다보고...

      수박, 돼지, 자전거, 탁자 등이 떠내려가고 도랑가로 밀려오는 뜻밖의 수확을 거둔 사람
      들은 환호를 터트리며 집으로 가져가곤 하였다. 개울이 넘쳐 브로크 공장을 덮칠 수도 
      있는 염려스러운 상황은 차치하고 비온 뒤의 광경과 횡재가 우리들에겐 철없던 시절의 
      큰 재미였었다. 

      경제성장가도를 달리는 한때 이러한 개천들은 덮여졌고 그 위에 건물과 도로가 새롭게 
      들어서면서 물의 흐름은 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서 이곳저곳 하천생태에 큰 영
      향을 미치는 듯 해마다 악몽같은 수해가 일어나고 있다. 

      환경개발을 이유로 온 산야가 파헤쳐지고 무지한 인간들로 인해 자연은 성이 나 있는 듯 
      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긴 해도 큰 수해의 대부분이 인재인걸 보
      면 자성해야 할 우리들이 아닌가 싶다.

      루사와 매미때 입었던 수해는 지금 생각만 해도 악몽같다. 반쯤 차오르는 흙탕물과 사투
      를 벌이고 물이 빠져 나갈때 쯤 뻘이 되어버린 가게 안을 둘러보며 망연자실 바라만 봤
      던 그때, 이 모두가 하수구가 역류하여 일어난 결과라 하지만 결국 흐르던 물길이 제 길
      을 찾아가기 위해 발버둥쳤던 당연한 재해였던 것이다. 

      국가위기경보까지 치닫았던 비는 이제 조금 주춤했지만 아직도 모를 일이다. 
      주말쯤 또 다시 장마가 시작된다는데 올해 장마는 왜 이리도 긴지...

      철없던 시절의 장마는 나에게 생생한 기억의 재미진 볼거리로 남아 있는데 지금 내리는 
      비는 왜 이렇게 야속하기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