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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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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자전거


BY 개망초꽃 2006-07-15

친정엄마에겐 자전거가 두 대 있다. 온 몸에 푸르둥둥한 꽃무늬 벽지처럼 멍이 들도록 자전거를 배우느라고 십 년 전 싼 거로 구입한 것이 첫 번째 자전거고, 이번 생신날 동생 둘이서 거금을 보태 산 접이식 쥐색 자전거가 두 번째 자전거다.



첫 번째 자전거는 엄마네 아파트 입구 키 작고 가냘픈 앵두나무에 걸어 두어서 봄이면 꽃그늘에 하루가 가고, 꽃잎이 바구니와 안장에 내려앉기도 하고, 여름이면 말갛게 익는 열매가 비바람에 토독토독 바구니 속으로 굴러 들어온다. 부드러운 솜눈도 덮어 쓰다가 먼지가 내려앉으면 비샤워도 하는 이 자전거는 친정엄마처럼 한갑이 지나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네가 되어 있다.



이번에 선물 받은 자전거는 몸값이 백만 원이 홀딱 넘어간다고 한다. 쥐색 빛이 촌스럽게 반짝이지 않는 고급스런 무광이었다. 이것은 엄마네 현관입구를 지나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거실에 놓여 있었다. 자전거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건방지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다 쳐다보지도 않고 비스듬히 누워서 네가 이 집 맏딸이냐?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자전거는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할 수 있는 다리가 없다. 비싼 자전거 일수록  몸뚱이 바치는 것이 달려 있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 이것들을 세워두려면 나무에게 기대든지 땅바닥에 누이던지 해야 한다. 나약하고 이기적인 자전거다.


며칠 전 오후, 자전거 타러 가자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 자전거는 아들이 타고 나가 잊어버려서 나는 네발 달린 자가용도 없고, 두 발 달린 자전거도 없다. 엄마는 두 번째 자전거를 내게 맡기면서 상처 나지 않게 조심하라고 일으며 앵두나무에 걸어 논 첫 번째 자전거를 가지고 오셨다.


엄마는 두 번째 자전거를 타고, 나는 첫 번째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으로 달려갔다. 브레이크가 시원찮은 자전거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안장에서 내려 걸어가는 겁쟁이라서 느려 터졌지만 사고 날 일은 없다. 호수공원 느티나무 밑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내 자전거는 생기다가 말은 듯한 다리라도 내려 세워 두었지만, 엄마는 자전거를 바닥에 조심스레 누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자꾸 쳐다보더라, 예쁘게 생기고 좋은 자전거라는 걸 아는 거지, 하신다.


자전거 두 대가 호수공원을 거닐었다. 잔디밭 보라색 벌개미취가 환장하게 매력적이고, 비비추꽃망울이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두리둥실 호수가로 날아다닐 것 같다. 부처 꽃이 목을 길게 빼고 물에 비친 자신에게 반해있다. 연꽃이 부부거위와 함께 같은 물을 마시며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엄마와 난 딱 스무 살 나이 차이가 난다. 자식들 나이를 물어보면 학년만 생각나지 몇 살인지 헷갈리는데, 내 나이를 잊어버리지 않은 한 누가 친정엄마 나이를 물어보면 내 나이에 이십을 더하면 되니까 금방 대답을 할 수 있다. 친정엄마는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옷도 나이보다 젊게 입고, 꽃무늬 옷을 좋아하신다. 어느 날은 가슴과 등에 장미 꽃다발이 매혹적이고, 어느 날은 꽃잎이 바람 곁에 하느적 춤을 추고, 어느 날은 나선형으로 각가지 꽃이 만발한다. 꽃이 좋아 온 몸에 꽃을 감고 다니는 꽃할머니다.


길거리 꽃을 좋아하셔서 꽃이름도 잘 아시고, 개망초꽃을 보더니 요즘은 들꽃을 무조건 뽑지 않고 자연스럽게 놔둔다고 어디에서 들으셨단다. 그러시면서 잘하는 거라 하셨다. 이번에 외할머니 생신때 춘천 가다가 길가에 무더기로 펴 있는 개망초꽃이 정말 예뻤다고 두 팔 짓을 하시며 얼마나 탐스럽고 예뻤는지 실감나게 말씀하셨다. 분수가 보이는 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동안 꽃이야기며 집안이야기를 했다. 자판기 음료는 몸에 좋지도 않고 비싸다며 너나 목마르면 마시라고 하는 걸 녹차켄을 뽑아다 주니 금방 비워버리셨다. 화장실에 가시며 비스듬히 누워 있는 자전거를 내려다보며 걱정이 앞선다. 잘 모시고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더니 한 번 더 쳐다보더니 뛰다시피 화장실로 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소낙비가 퍼 부었다. 내가 타던 자전거는 누가 집어가던지, 비에 떠내려가던지 말든지 엄마가 타던 자전거를 끌고  파라솔 같은 나무 밑에 기대어 놓았다. 자전거는 뭐가 서럽고 섭섭한지 눈물이 떨어진다. 나무 밑엔 비를 피해 모여든 사람들 떠드는 소리와 빗소리가 합창이 되었다. 지나가는 빈가? 아니야 그치지 않을 것 같은데…….여보? 비가 와서 못 가겠어.우산 가지고 와? 나는 우산가지고 나오라고 할 남자가 없다? 없구나. 나는 엄마 자전거를 모시고 엄마를 기다린다. 빗줄기가 예상보다 약해지고 빨간 추리닝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뛰어오신다. 나무 파라솔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제각각 목적을 향해 떠나가고, 엄마는 장갑을 꺼내서 자전거의 눈물을 훔쳐주고, 나는 비온 뒤의 풍경 속에 흠뻑 젖어버렸다. 머리카락이 달라붙도록 비를 맞은 적이 언제였던가? 단발머리 소녀 적에? 긴 생머리 어른이 된 뒤에? 비요일의 풍경처럼 기억은 흐려져 있다. 나무 밑에 서서 여름비를 보며 나도 자전거처럼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눈물을 툭툭 떨구고 싶다. 흙냄새와 여름공기와 나뭇잎과 오래된 호수냄새와 하늘과 땅사이의 공간과 원예종과 야생화가 뒤섞인 향기가 콧속으로 깊게 허락 없이 들어온다.


“기스난 거 아닐까? 녹나겠다.”

“스텐이라 녹 안날 것 같은데..가벼운 거 보니 양은인가? 찌그러지긴 하겠다, 엄마.히히힛”

자전거는 고고하고 도도해진 것 같다.

나이든 노인네가 닦아주고 쓰다듬어 주는데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척도 안한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몸종이 되고, 집의 몸종이 되고, 엄마는 자전거의 몸종이 되었다.


내가 타고 온 나이든 자전거는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을까 걱정을 했나보다. 나를 찾아 두리번거려 앞바퀴가 돌아가 있었다. 앞바퀴에 달려있는 바구니에 첫 번째 자전거를 닦은 장갑을 실고서 비온 뒤의 말끔한 풍경 속을 달렸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 그쳤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비를 맞은 적이 언제였지? 어디서 누구랑 맞았었나?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나? 그리움으로 비가 내린 적이 있었나? 비에 싸여 과거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 그립다, 눈물이 나도록 그립다.


앵두나무에 자전거를 묶었다. 작은 나뭇잎에 머물러 있던 빗물이 바구니로 한꺼번에 담긴다. 엄마는 쥐색 자전거를 데리고 들어갔다.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에 기대고 있을 자전거를 생각하니, 마른 수건으로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구석구석 닦고 계실 엄마를 생각하니, 찌그러지거나 상처가 났을까봐 걱정을 사서 하시는 엄마를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런 엄마가 우리 엄마답다. 우리 엄마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