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였지 아마 ...
무단히 낮 동안 잘 놀다가도
창 밖에 저녁 그림자가 안개처럼 부옇게 비쳐질라 치면
도대체 왜 그리 맘을 못 잡겠던지 말야
울적하고 허하고 슬퍼지고 외롭고 괴롭고 죽고싶고
누구든
아무나 붙잡고 말하고 사랑하며 관심 받고 싶어 환장하겠던지 ..
견딜 수 없더라
왜 그럴까
왜 해만 지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까?
뭐 딱히
연구 분석할 엄두 조차 내보지 못한 채
괜히 동네 근처를 어정거리기도 하고
평소 맘 맞지 않던 사람들 치사하게 불러내
고역스런 술자리도 만들어서는 억지로라도
자정까지 헛웃음과 썰렁한 농담으로 그 시간을 넘기기도 여러 번,
하루는 무슨 책을 들여다보던 중 이런 글이 눈에 띄더라
폐경기 여성을 우울하게 하는 시간대가 딱!
해지고 어둑한 저녁나절이라는 구절
괜히 우울하고 가라앉고 맘 갈피 갈피가 찬 서리 내리는 늦가을바람에
호르르 호르르 날아가고 뒹구는 낙엽 같은 맘이라나
우울증의 시초가 될 확률 높고 등등 ..
아! 그래서 그랬구나
주변이 너무 조용하고 챙겨줄 아이도 받들어 모실 남편도
치우고 닦을 많은 살림도 없는 네게는 당연히 찾아들 병이 아닌가
주변에 뭐든 움직일 것을 찾아 봤다
몸이 예전만 못한 고로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그리고 반드시 오후 시간대여야 하고
귀가 시간은 열시까지
이곳은 인구도 적고 잘사는 사람도 적고
당연히 소비도 인색하고 쓰질 않으니 떨어질 고물도 없고
그래서 도시처럼 소소한 잡일도 귀한 곳이다
일거리가 없다
그래도 어느 도시 어느 동네나 먹어야 되는 거야
인간의 기본 생존 수단이니 식당은 많다
특히 여름엔 바닷가를 찾는 관광객들이 밀고 당기며
동해로 동해로 내려와 주니 그나마 ..
집에서 멀지 않는 식당을 저녁 시간만 나가기로 했다
처음 나가보니
다 내 나이 와 비슷한 중년 아줌마들 다섯이서 오전반 오후반 나눠서
일을 하고 있더라
하도 오래 놀아서 옛날 실력이 나오겠나 하는 걱정도 잠시
난 힘차고 즐겁게 그리고 일할 수 있게 해준 건강에 감사까지 하며
다섯시간을 아주 쉽게 넘기고 보니
자신도 생기고 오히려 그 동안 흐느적 거리며 보낸 시간들이
되려 아까워 죽겠던걸 뭐 흐흐 ~
또 나와 같은 시간대에 일하는 아줌마들도
좋은 직장에 다니는 남편과 아들 뒷바라지해가며
저녁시간에 잠시 나와
힘차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 동안의 나를 반성케 하게도 만들며 ..
이젠 넘어가는 저녁 해를 보며
자괴감과 상실감과 내 존재자체를
부정하고 하찮게 봐지던 지독한 우울증은 말끔히 사라졌는 것 같다
단지
다섯시간의 주방 일이 몸을 곤하게 하여
휴식시간이 전에 없이 길어지느라
내 좋아하는 글 쓰기나 책읽기에 쬐끔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
어쩌겠나
어둑어둑해오는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무 기척도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고요한
집구석에서 자꾸 가라앉아 만 가는 마음 추스르랴
더 이상 내가 아무에게도
소중하지 않고 잊혀지고 버려진다는 비관적 사고 땜에
혼란스러웠던
그 숱한 저녁시간은
이제 지긋지긋한걸 뭐
어디든 좋다!
땀흘리고 일할 곳과 또 사람소리 요란스레 나는 곳
한 쪽에선 맛있게 먹느라 즐거운 사람들과
그 사람들 입에 맛있는 음식들이
행복하게 삼켜져서 식도락의 몽롱함에 빠지게 하느라
우리 중년의 아줌마들은
왈그락 달그락,우당탕 퉁탕, 지지 직, 빠지직
뽀글뽀글
정신 없이 요리되는 장소 주방이라는 곳
그 곳에서 우리는 요리하고
차리고 내가고 들여오고 씻고 닦고 정신 없다
식도락을 즐기던 그 많은 손님 무리가 다 빠져나간 늦은 시간
잘 정돈되고 말끔히 청소된 식당 홀에서
퇴근시간이 된 우리들에게
장사꾼치곤 인격이 완벽?하게 갖춰진
주인 사장님 배려로 차가운 맥주 한잔씩 마시는
느긋함도 얻으니 ...
아!
마음에 고통 없이 자신감 잃을 일 없던 하루를 번 건만도 어딘데 말야
달콤한 노동 끝에 오는 휴식에 차가운 맥주 한잔까지라니 ..
모든 것에 감사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