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계절이 막 시작 될 무렵
비도 올지 말지 지 맘데로 흩뿌리던 날.
우리동네에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에
일톤트럭이 섰다.
자세히 보니 포장이사도 아니고 얼기설기 꺼먼 끈으로 질끈 묶은 짐을 보니
살림보아 짐작가는 게 어디서 야반도주 했나 했다.
우리동네는 친절하다.
사실 친절하고 상냥한 여자들만 산다고 소문이 난 동네의 그 반대다.
대충 이렇게 알고 산 사람들이 모두 이 골목에
게딱지 같은 낮은 지붕을 맞대고 있는데.
냉장고는 제법 크다. 그래서 여기저기 네명이 달려들어 집안으로 들어가니
오랫동안 비워둔 집이라 습기먹는 곰팡이가 푸르게 한 쪽 방벽에서 잘 살고 있다.
눅눅한 분위기에 이사온 부부는 더욱 얼굴이 지쳐 보였다.
남자인데도 머리를 길러 여자들 머리끈으로 질끈 묶여진 머리를 보더니
멀대아줌니가 대뜸 묻는다.
어디서 오신 도사예유?
그러나 대답 대신 피식 웃었다. 그 머리를 묶은 남자 옆에 키작은 여자가 부인이었는지
낯설은 동네에서 낯선 아줌마들의 눈빛에 기죽은 표정이다.
이사오고 난 후에 이사왔으니 떡도 국물도 돌리지 않았으니
우리 상냥한 아줌니들 시선이 곱지 않다.
뭐여,,괜히 냉장고 들어 줬네...
그런데 느닷없이 쿵쾅거리는 소리에 우리도 놀라 뛰어나가보니
그 도사네집에서 담넘어 후라이팬이 날아서 길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지고 접시가 깨지는 소리에 아구구...사람 살려요..나 죽겄네... 이러는 여자의 비명에 난 저절로 그집 대문을 밀쳤다. 당연히 잠궈져 있고 이거 우리가 담넘어 가 . 말아 하는 동안 남자의 육두문자가 마이크 시험 중보다 더 크게 틀어지고 있었다.
그 때 떠벌이 아줌마가 지나가는데. 자기도 한다면 하는 내노라하는 욕쟁인데, 움찔거리며 내 옆에 바짝 붙었다. 야야..이것이 뭔 소리다냐?
니 년이 지랄를 해서 일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거니께 어디 너 죽으면 모든게 끝장이니... 느닷없이 창문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난 할 수없이 멀대 아줌니의 사다리를 들고 와 담을 넘어섰다. 매 맞는 여자는 도저히 두고 볼수없는 정의의 기사가 된 것이다. 대문을 따주니 동네 여자들이 몽땅 몰려들어 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자의 울음소리는 끝치지 않고 남자는 깨진 유리창으로 밖에서 보니 홀딱 벗은 누드였다. 기 찬 것은 여자도 홀딱 벗은 몸이니 나오라고 해도 걱정이다. 순간 떠벌이 아줌마가 대문을 쾅쾅 두둘겨 대니 남자가 우리쪽으로 몸을 틀었는데 창문에 다행히 아랫도리는 가려졌다.
뭐여. 뭔 여자들이 우리집에 이렇게 몰려 왔어?
쪼금 씨끄럽네요. 그래서..
아! 이 여자하고 나하고 일이니께... 뭔 구경하러 왔어... 빨리 안나가요?
그런데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 부리나케 우리들 쪽으로 달려 나온다.
너 어디가... 너 일루 안와.. 이 씨발년 너땜에 손해본 게 얼마나 되는 줄 알어? 이 개같은 년아? 아 빨리 비켜유..
하필이면 떠벌이 아줌마 뒤애서 치마를 잡고 안 놔준다.
여섯명의 여자가 모두 그 도사같은 남자를 째려 보고 있으니. 당장 머리채라도 잡고 싶은데 홀딱 벗었으니 금방 튀어 나오지 못한다.
난 그제야 웃옷을 벗어 맞은 여자의 어깨에 걸쳐주고 얼른 뒤로 나가라고 했다.
떠벌이 아줌마가 떠밀어 골목을 벗어 난 거를 보고 난 전화로 일일이를 눌렀다.
이분만에 삐웅삐웅하며 백차가 도착했다.
순경이 대문밖이며, 안에 굴러다니는 그릇에 깨진 창문에 몰려 있는 아줌마들때문에도
이거 예삿일이 아닌가 싶었나 보다.
누가 신고했어오?
내가 했어요.
맞은 부인은 지금 어디에 있어요?
피신했어요. 때린 아저씨가 옷을 홀딱 벗기고 때리는 걸 여기 아줌마들이 다 봤어요.
집안에 있는 남자가 조용하다. 순경이 옷 입고 나오라고 한다. 그래도 대답이 없다.
한 참후에 반바지에 런닝을 입고 머리를 묶지 못했나 긴머리를 산발하고 나온다.남자 얼굴은 아까와는 전혀 다르게 잔뜩 겁먹은 표정이다.
조사를 해야 하니 파출소에 같이 가자고 하며, 피해자 부인도 같이 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멀대 아줌마가 그런다.
그럴 것 없이 그냥 도사만 데려가유. 원 시상에 저렇게 지 마누라 죽일듯이 때렸으니께
어디 그 만큼 혼자 맞아야징... 징하네, 그 도사님 성질말여..
그제야 도사님 혼자 백차에 탄다.
부웅웅 떠나는 백차를 보고 멀대아줌니 그런다.
아이구..도사님 오늘은 못 들어 오시겄네~~
덧) 1998년 칠월 어느날에 ..막 태풍이 온다고 일기예보도 심상치 않은 날 있었던 일입니다.
지나간 일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을 하니 나도 참 이런 낙서를 여기다 풀어 놓아야 할 일을 한 것 같습니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