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사거리를 끼고있는 그 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그냥 혼자 죽네 사네 하면서 용을 쓰며
별 시덥지 않은 생각들을 널어 놓고 살고 있지 않았을 까 싶다.
어떻게 만난 인연인 데, 그렇게 함부로 절단내고 끝장내자고 덤빈 세월인데
난 세상의 운을 모두 그 집에서 낚아 올린 것을 고백한다.
아이를 낳았으며, 남자를 만나서 사람을 겪어내는 연습을 하던 그 집은
내 인생사에서 배경이 되었고 셋트장이다.
시장이 멀지 않아 참 좋았다.
아직도 삼일장이 있고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다.
막걸리가 질펀하게 익은 냄새에 여편네의 손길에 척척 뒤집어지는 김치 부침게에
꼴딱 넘어가는 숨소리도 마셔 댄 곳.
초라하고 가난하다면 모두 무사통과 시켜주는 곳이라해도 무방하다.
그 땐 망태기에 수탉 모가지를 비틀어 매고 등에 지고 자전거를 멋드러지게 타는 몽골할배가 그렇게 재미있는 애기를 하면 그날은 하루 운터지고 행복하다고 해도 부족했다.
봄이 되면 씨앗장사가 늘 바쁘게 종종 대었다. 열무씨, 상추씨, 고추묘에 호박묘에 너르게 펼쳐 놓으면, 우리는 그곳에서 숲을 이루는 초록을 애기하고 사서 골목길 뙈기밭에 흩뿌렸다. 혹시나 참새떼들이 씨앗 주워 먹을 줄 모른다고 영태할멈은 내내 하루종일 지키고 있는데, 그 그늘에서 앉아있는 그림자가 봄빛에 졸고 있기도 했다.
툭하면 싸움박질에 누가 져서 속상해서 간 곳은 개구멍보다 쬐끔 큰 개미집에서 순도 높은 소주를 마시며 염장질러 대는 소리도 늘 휘청거리는 곳에서 난 살았다. 우습게도 십미터도 못 가 논을 갈아 엎어 텍지 조성한다고 하더니 십오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한 쪽은 아직 육십년대이고 한 쪽은 21세기를 바라본다고 했는데.
그러더니 낼름 소방도로를 내야 한다며 덜컥 그곳을 재개발 한단다. 살던 집을 부수어야 한다는 애긴데, 그래야 쭉쭉 잘빠진 길로 다녀야 불도 빨리 꺼준다는데. 그곳에선 귀퉁이 빠지는 소리를 하고 다닌다고 한 동안 술렁거렸는데, 이내 잠잠 해져 버렸다. 모두 보상을 해준다고 하니 돈이라면 무슨 말을 해결하지 못할까.
그래서 내가 살던 동네는 보기좋게 널찍한 길을 끼고 얖에는 아파트고 뒤로는 멘 모텔이고 여관에 오른쪽엔 아직도 장이 서는 시장이 있다.
내가 살던 집은 이젠 소방도로가 되버렸고, 밤새 웍웍대던 황소개구리도 어디로 가 버렸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목청좋고 힘좋던 떠벌이 아줌마나 늘 맞으면서도 그래도 늘 붙어 다니던 멀대 아주머니, 영태할머니도 이젠 나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그 동네 안부를 묻는다. 아 ! 그 때말여..돼지비게를 비벼서 부쳐먹은 무쇠솥뚜껑을 누가 가져 갔을까... 아니..그게 왜 이제 궁금해요?
그렇게 물으니..말로 해봐야 맛인감? 장마지면 늘 우리는 모여 있었잖어..맨날 홍수를 겪으니 그것도 이력이 붙어가지고 어딜 갈 것 없이 옥상에 올라가서 천막 펼치고 지짐을 부쳐먹으니께 그것도 별미드라고.
나보고 서울 깍두기라고 늘 그랫다. 시골에 살면서도 제대로 시골뜨기를 할려면 이런 고생도 일부러 해보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그게 나에겐 영양제가 되었고, 거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은 그렇게 나를 속터지게 하던 남편도 내옆에 있고. 내 집도 있고, 자식도 잘크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난 자꾸 딴짓을 하는 것이다. 꼭 누구는 누굴 좋아한다고 고발낙서하는 마냥 그냥 주절 주절 글수다를 떨어야 하루 맘이 편안하니 .
공중변소에 담벼락같은 아줌마닷컴에 이렇게 낙서를 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지나고보니 참 꿈결같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