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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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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금이가 아니다.


BY 일상 속에서 2006-06-29

며칠 격조했습니다. 날씨가 많이 무더워졌죠. 사진 속, 풍경 속에서 가만히 쉴 수 있다면... 여러분들 여름들 잘 보내시길 바래요.

 

내 남편의 사고라면 주부는 만능 우먼이어야 한다.

아이들 잘 키우고 남편에게 순종하고 무엇보다 음식을 잘해야 한다......

남편의 사고가 이러하지만 난 그 어느 곳에도 해당하지 않는 부적합한 아내다.

아이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노력하지만 가끔 내 뜻과는 어긋나니 잘 키운다고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진행 중이니 결단 내리기는 이르다 싶다.


남편에게 순종... 내 나름대로 남편의 비위를 맞춘다고는 하지만 같잖을(?) 때가 많아서 목청 높일 때가 많다. 그러니 이마저도 잘 한다고 자부할 수가 없다.


음식... 내게 있어서, 이 3가지 중에서 제일 찔리는 부분이고 아픈(?)부분이다.

하지만, 14년을 한결같이 내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먹이며 굶기지 않았으니 그것에 감사하면 안 될라나?


내게 있어 장점이 있다면,

국어는 못하지만 주제 파악 잘 하고, 수학은 못하지만 분수를 잘 안다는 것이다. 그런 나이기에 내가 한 음식에 대해서 좋은 평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끼니 때마다 가족위해 주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주부로써의 권의(?)를 짓밟으면 문제는 커진다, 이 말씀.


김치를 담은 것이 한 달이 조금 안된 것 같다.

그동안 친정 엄마께서 전담하다시피 해주셨던 문제의 김치.

올해 기필코 그것을 마스터 해보겠다는 각오 하에, 일을 크게 벌였다.

배추 2단과 열무 2단에 얼갈이배추 1단.

14년 동안 10번도 담아 본 적 없는 김치였기에 김치 앞에서 늘 작아지는 나. 이런 나에게 김치는 버거운(?) 과제다.

그래서 자주 하고픈 마음이 없다.

자주 하지 않으려면 많이 해야 하고, 오랫동안 보관해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배추로 겉절이를 만들고 열무와 얼갈이를 섞어서 김치를 만들었다.

오랜 만에 하는 김치다보니 중간중간 빠트린 재료가 있어서 몇 번을 더 시장에 다녀와야 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우여곡절 끝에 계획했던 김치를 만들었다.

만들고 먹어보니 좀 심심하다.

사실, 난 음식을 좀 싱겁게 먹는 편이다.

하지만...두려운 과제, 김치... 그것을 한번 담그려면 무수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러니 한번 김치를 하고 나면 당분간은 그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간이 딱 좋은 그것에 소도 때려잡고도 남을 무기 같은 큼지막한 손으로 굵은 소금 한 주먹을 집어서 넣고 버무렸다.

밥하고 먹는 반찬이니 알아서들 먹겠지...

겉절이는 익히지 않아야 제 맛, 만들자마자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남편이 그날 저녁 상 위에 올라 온 빨갛고 맛깔스럽게 생긴 겉절이를 보며,


“어. 이거 누가 준 거야?” 한다.

새로운 것이 보이면 늘 누가 줬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니...내 죄가 크다...


“내가 한 거지!”

“뭐? 무슨 일 있어?” 하던 남편이 겁 없이 맨입에 큼지막한 그것을 입 속에 집어넣었다.

분명... 이 날의 사고는 남편의 부주의다.

분명 반찬은 밥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남편의 잘못인 것이다.

밥을 푸고 있을 때 벌어진 사건...남편은 잠시 얼어붙고 말았다.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고서.


찔끔 미안함이 밀려 온 나였지만 언제나처럼 안면 몰수하고 따끈따끈한 밥을 건네주며,


“밥하고 먹으면 먹을 만 할 거야.” 라고 했다.

그래도 큰 맘 먹고 해준 김치가 기특했는지... 남편 겉절이 세 쪽으로 밥 한 공기를 비웠다.


김치의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열무얼갈이 김치는 익혀서 김치 냉장고에 넣으려고 이틀을 내 놓았건만 익을 기미가 없었다.

3일을 내놓으니 약간 색깔이 익은 듯 했다.

먹어보니... 턱도 없었다.

김치가 아니라 장아찌가 되려는 듯 했다.

그 김치들은 지금껏 내가 원하던 대로 오래토록 먹을 듯하다.

며칠 전, 식사를 하던 남편이 했던 말은 지금까지 내게도 의문스런 점이다.


“김치가 점점 써.”

“난 쓴 것 넣지 않았어.”

“-_- ......”


내 남편은 내가 불가사의란다.

소금을 무지 사랑하여 하는 음식마다 짜건만... 어찌하여 사먹는 음식들은 싱거워야 맛있다고 한단 말인가... 라며.


얼토당토않은 그 생각에 언제나 난 발끈한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아껴먹어야지~! 그러려면 소금을 많이 넣어야 조금씩 먹고 오래토록 상하지 않아.” 하고 해명을 하지만 영, 먹혀들지 않는다.


어제 누군가 칼국수 면발을 밀었다며 갖고 왔다.

남편은 남의 집 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있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겠다며 우리들만 맛있게 해서 먹으라고 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나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 증명해 볼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며 시장에서 바지락까지 사와서 육수를 냈다.

냉장고에 있는 호박이며 양파며 김 가루까지 내놓고 지대로 만들려 했건만...


차려 놓은 저녁 밥상,

남편은 밥, 아이들은 한 대접씩 뜨끈뜨끈한 칼국수를 올려놔 주었다.

항상 그렇듯 음식의 데코레이션은 지대로다.

TV에서 나오는 맛깔스런 음식 저리가라 식의 모양새...


- 육수를 만들 때... 난 분명 간을 봤다. 소금 양이 많았는지 좀 짰다. 그래서 물을 더 넣었다. 제법 그럴싸한 간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칼국수를 넣고 보니 어째 갑자기 짜지는 지.

끓이면서 난 직감했다.

‘아...이거 어째 오늘도 심상찮어.’

칼국수의 심각성을 직감한 나는 최악의 발악을 하듯, 식구들 눈치 못 채게 요령을 피워야 했다. 오래 끓이면 불어버릴까 면발을 건져내고 국물에 물을 넣고 다시 끓였다. 그렇게 남몰래 마음 졸이며 완성한 칼국수는 헛수고가 되어 지금까지 만든 어떠한 음식보다 꽝...이었다. 맛나게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해놓았는데 갑자기 밥으로 먹자고 할 수도 없는 일... -


난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으로 아이들 앞에 칼국수를 올려놓았던 것이다.


아이들... 한 젓가락씩 뜨더니...물을 찾는다.

나의 눈치를 살피던 아들이 뜨거워서 그런다고 궁색한 변명을 붙였다.

반면 언제나 솔직무쌍한 딸,

“엄마, 여기 소금 넣지?” 한다.

“음식에 소금 안 들어가는 게 있냐?”

하고 무식하게 용감한 난 그래도 굴하지 않고 딸 말에 대꾸를 했다.


심각한 밥상 분위기... 남편은 안 먹어봐도 맛을 알겠다는 눈치로 아이들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내가 먹어봐도 심각한 그 음식... 가족들의 몸을 생각해야 하는 주부의 위치를 생각하며 난 나의 잘못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얘들아... 밥 먹어라. 엄마가 먹어도 짜다. 칼국수 면발에 간이 좀 쌨나보다.(조금이라도 내 잘못을 낮추고 싶어서 뱉어낸 말이었지만 궁색하기 이를 때 없었다.)”


풀죽은 제 엄마가 밥을 떠서 주니 아들은 안됐다 싶었는지 문제의 음식에서 손을 떼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해 냈는지...

밥 위에 칼국수를 올려놓고 먹었다.

그렇게 희한하게 먹더니 엄청 맛있다고 호들갑까지 떨어댔다.

나...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칼국수를 반찬으로 먹는 집이 우리 집 말고 또 있을라나?

상심이 컸던 나였다.


그날 저녁 TV를 틀던 남편이 채널을 바꾸다가 멈춘 것이 홈쇼핑이었다.

때깔 좋은 김치 광고였다. 그리고 무심결에 뱉어내듯,


“저것이 정말 김치인데...” 한다.

“뭐?! 그럼, 내가 한 김치는 김치가 아니고 뭐야?! 그러니까 김치 안한단 말이야. 당장 홈쇼핑에 전화해서 저 김치 주문해. 나도 사 먹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주부로써의 자질에 대해서 혼자 스스로 반성하고 있었건만 괴로운 마누라의 심정은 모르고 뱉어낸 남편 말이 어찌나 얄미운지 내 입에서 곱지 않은 말이 나왔다.


병 주고 약주는 것이 전문인 남편은 딸에게 위험한 적지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듯,


“엄마가 해주는 김치 정말 맛있지?” 한다. 그렇게 말하려면 웃지나 말든가.

키득키득 웃는 것이 더 얄밉다.

“그~럼! 울 엄마가 만드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데. 히히히”

제 아빠 말에 동조하는 딸.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딸도 얄밉다. 에휴...

그런 두 사람을 향해서 내가 뱉어낸 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지. 능력되면 애들 잘 키우고 남편에 순종하고 음식 잘 만드는 여자 데려다가 살어!”이었다.

“그거 당신이네. 애들 쥐 잡듯 잘 잡지. 순종하는 남편 만들고 음식 떼깔 하나는 제대로 만드는 당신...”


아... 남편의 비아냥에 난 눈 흘김을 끝으로 말꼬리를 잡지 못했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금이란 드라마를 열성적으로 즐겨보며 대리만족에도 행복해 했던 내 남편과 아이들...

난 장금이가 아니다.

하지만 장금이가 되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