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즈음의 아이들에게 분수가 어려운 공부였던 지
선생님이 유난시리 분수문제에 집착하셨던 듯 하다.
분수문제를 배워본 적이 없는 난 옆 짝꿍 아이에게
부탁을 했다.
이름도 잊어버리지않은 전학왔던 해의 첫 짝꿍.
\"석순아 나 분수문제좀 알려주라 난 배운적이 없어
너무 어려워\"
쌍꺼풀이 없는 얍삽한 눈매를 한 그 아이는
냉기를 풀풀 풍기면서 대꾸도 하지않았다.
두 살 터울위의 언니가 있었지만 언닌 입주 가정교사를 하며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음에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한동안 매를 맞아야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라치면
이리꿰고 저리꿰어 기어코 방법을 찾아내는 스스로의 학습법에
능통한 아이였음에 중학교 입시시험을 지원하던 그 해
선생님은 상급아이들만 원서를 써줬던 일류중 원서를 써주셨다.
하지만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못하고 만화광이되어
육학년을 보낸 아이였으니 결과는 당연한 미역국이었다.
그래서 후기 시험을 다시 치뤘는데 언니가 다니는 중학이었다.
그 학교는 전교 20등까지 장학금을 주는 소위 세 번째로 좋은 학교였다.
합격자 발표가 있던날 그 중학에서 톱을 다투던 언니가 가져온 소식은
아깝게 장학생에서 떨어졌다했다.
형편이 어려운중에도 부모님은 입학금을 마련하려 애를 쓰셨지만
마감날까지 마련하지못해 언니가 학교에 가서 사정을 하여
날짜를 조금 미뤄왔는데 어머니와 언니의 날짜 개념에 착오가 생겨
말일에 입학금을 가지고 찾아간 학교에선 30일까지로 약속했는데
그날이 지나 보결생으로 채워졌노라 했다나.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 언니가 그랬다.
네가 중학교를 가지 못한것이 내 잘못인것만 같아
오랜시간 네게 미안했노라고....
하지만 한번도 난 언니를 원망하거나 내가 중학교를 가지 못한것을
아쉬워한 적이 없다.
지금도이고 이전에도 난 내가 가질수없는 것
혹은 나랑 거리가 먼 삶에대한 동경이 없는 아이였다.
내가 처한 환경을 뛰어넘는
좀 더 높은곳으로의 삶을 동경했더라면
어쩌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가 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읽으며
주인공이 난 너무 일찍 철이 든 것 같습니다 라는 귀절에서
지독한 공감을 느꼈었다.
나 또한 어린나이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아이였다.
내 이야기를 풀어나가자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쉬울테니까.
어머니를 동네아저씨들은 그렇게 표현했었다
치마만 둘렀지 사내대장부감이라고.
칠십하고도 네해를 훌쩍 넘긴,여자보다는 남자들과
말이 잘 통한다시는 어머닌 결혼전에 외과병원에 간호사셨다는데
그시절에 승마를 즐겼다시니 미루어 짐작 가능하리라.
그에 비해 음악선생님이셨다는 아버지를....어찌 표현할까.
엄마를 만나기전에 사귀셨다는 첫사랑의 여자와
육이오 사변통에 헤어졌다는데 그녀를 못잊고
내 아래 네번째 동생을 낳을때까지 가슴에 품고 사셨다니
그걸 알면서도 별달리 갈등하지않고 사신 엄마가
내 상식으로는 때로 이해하기 어렵다.
무던하달까 둔하달까 대범하달까...
내 엄마는 사내대장부라는 말처럼 돈 씀씀이가
엄청시리 커단, 어설픈 남자와는 비교가 어려울 정도인 사람이다.
어떤 사정에 의한건지 몰라도 내가 철들기 전
학교를 그만두신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랜시간 힘없는 가장이었다.
아니 부동산 붐이 일었을 때
부동산 소개업을 하셨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상당한 수입이 있으셨던듯도 하지만
돈이 헤픈 마누라를 데리고 사는 남자의 가정은
미래가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