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휴유증이다.
툭하면 뭘 잘 잃어버리고, 그러고도 모르고 막상 찾으면
왜 없냐고 따지고.
매차없이 얘들이 갖고 놀다 혹시 버린 겨 ?
하고 다그치면 남편과 얘들은 모두 내 얼굴을 멀뚱히 본다.
상태가 영 시원치 않다는 표정이다.
가면 갈 수록 태산이라고 하더니 까먹는 거랑 기억이랑은 거의 고단수로
발전한다고 어쩌면 그렇게 천연스럽게 사냐?
찔리는 게 없냐고 도로 묻는데
그제야 난 고백한다.
그려서 원하는 답이 뭔디?
우이씨 남자도 하나만 애 낳아봐라...
나보다 더 마누라 잃어버리고 집도 못찾아오고 그럴 거다!
큰 소리는 쳤는데.히죽 히죽 옆으로 앞으로 쳐다보고 내 머리를 각도를 사십오도로, 아니면 백팔십도로 고개를 돌려보더니 아직은 그런데로 쓸만 한데.
꼭 비올 때면 도지냐는데.
그려 이맘 때 감꽃이 마구 피고 비바람 불면 바닥에 노란 치자꽃 처럼 바닥에 흩어져서
그걸 주워먹고, 목걸이 해서 목에 걸고 논두렁을 헤집고 다니던 외갓집이 스쳐갔다.
난 푸른단감이 애기주먹만 해지면 떪지 않아 그냥 올라가서 뚝 뚝 끊어 먹다
수분이 많은 감나무 가지는 내 몸무게를 감당 못해 우지끈 부러져 난 곤두받치며 추락했는데
그 사건 이후 난 멍청해지고, 말도 징그럽게 안 듣고, 머리에 뿔난 모양으로 엉덩이 제대로 진드감치 앉아 있지 못하는 내내 불안하게 크는 망아지였다고 울 엄마는 사위에게 소상히 나의 과거지사를 꽂아 이른것이다. 이걸 안 남편은 나에게 감나무에서 떨어지지 만 않았어도 성질도 좀 온순하고 착한 색시가 되어 있을텐데, 기껏 일러준 남편의 생일은 그렇다치고 자기생일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슬쩍 잊고, 얘들 생일은 , 집안 행사는 몽땅 남편이 안 챙기면 그날은 그냥 무사통과이니 나보고 해도 너무한다고 성질 내면 나도 한 소리 더 한다.
\" 그니께 왜 나랑 결혼하자고 맨날 우리집에 누가 쫒아 오랬냐구요?\"
울 엄마는 이거 말고도 소시적에 일어났던 사소로운 사건도 메주알 고쥬알 잘도 알렸다.
\" 니 남자얘들하고 권투게임도 하고 레슬링도 했었다며?\"
\" 그려! 했다!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냐고?\"
말이 네남매인데. 사실은 사형제라고 했단다. 내 참 기막히다. 그런데 듣고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권투선수 홍수환이 느닷없이 나 참피언 먹었어 하며 귀국을 하는 통에 동네 남자애 여자애 구분 할 것 없이 글러브 대신 수건을 주먹에 둘러메고 그 좁은 골목길에서 링이 되어 치고박는 통에 내 얼굴이나 다른 얘들 얼굴이나 눈텡이가 다 보라색으로 치장한 시대를 겪었는데. 이게 유행이었으니 난들 뭘 안다고 피해 갈 재주가 있으랴.
조금 있으면 동시다발로 김일이 나타나 노란머리 외국선수들 상대로 박치기 하는 흉내를 남동생하고 했는데, 그 날 이후 울엄마 만화가게만 가면 다리몽둥이가 아니라 내 머리털을 다 아 밀어버린다고 하는바람에 일시중단하는 레슬링이었다.
놀기는 잘 노는데 툭하면 잔병치레는 겪을 것 다 겪어서, 지금은 항생제 안맞고 감기 낫는 거 그저 시간만 지나면 된다식으로 버티고, 그러다 죽으면 어쩌냐고 남편의 성화에 난 한마디 한다. 죽으면 팔자려니 생각 혀...
누가 보험을 하면 갖가지 보험을 다 들어놓았을테니 노후 걱정을 안하겠다고 묻는데, 이게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보험과 내 건강은 아무 상관이 없다. 부적처럼 잘 보관하면 암도 안걸리더라는 말도 무시하지 않지만 그저 옛날에 나 어렸을 적 실컷 놀고, 실컷 잠자고 내 하고 싶은데로 살았다면 그게 면역제가 된다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지론에 절대적인 공감을 한다.
그런데 요즘 한가지 켕기는 과거지사가 내 마음에 불 지른다.
공부를 하도 안해서다.
도무지 내 앞날은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고 다시 학교에 돌아갈 수도 없고, 공부는 징그럽게 하기 싫고...
점치는 집에 괜히 가는게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