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창업박람회 65세 이상 관람객 단독 입장 제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65

추억은 강원도에 다 있단다(2)


BY 개망초꽃 2006-06-19

“종미야? 단 호박 먹어봐라 달고 맛있다. 회는 요 부분이 고소한거야. 팥빙수 시원하네, 많이 먹어. 더  달라고 하면 되니까.”

작은 아버지는 내 쪽으로 음식을 밀며 음식 맛까지 알려 주셨다.

“형수님? 회는 된장을 찍어 먹어야 제 맛이나요. 여기 음식 잘하지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

작은 아버지는 형수 옆에 앉아서 조근조근 말을 하면서 옛날에 아버지가 자신을 챙겨주듯이 나의 어머니를 챙겨주셨다.

“형수님? 저의 집에 가서 놀다 가세요. 종미야, 우리 집에 가자?”

술로 불콰해진 얼굴빛으로 애들처럼 우리 집에서 놀다 가자고 하신다.

환갑을 간단하게 회집에서 저녁만 먹기로 했다. 가까운 친척들만 연락을 해서 작은 아버지 처갓집 식구 몇몇이랑 친가 쪽은 큰집인 우리식구, 나와 큰 동생, 막냇동생 내외. 둘째 작은집 식구중에 사촌남동생 내외가 모였지만 그게 전부다. 아무도 없다.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집안이다. 둘째 작은 아버지는 뇌혈관 질환으로 온몸이 마비가 와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사람을 못 알아봐서 오실 수가 없었다. 당연히 둘째 작은어머니는 병간 인을 하느라 오시고 싶어도 못 오셨다. 외로움에 뼛속까지 시린 집안이다.


작은 아버지 처갓집 식구들과 단양에서 올라온 둘째작은집 사촌동생 식구들은 먼저들 가시고, 우리 식구는 작은 아버지 집으로 시린 외로움을 같이 달래러 갔다. 작은 아버지 집엔 길동이라는 푸들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길에서 주어서 이름을 길동이라고 지었단다. 모여든 식구들이 동물을 좋아해서 한번씩 안아보고 쓰다듬어 보고 개한마리 때문에 대화가 열리고 웃음이 전달된다. 작은아버지는 자신의 옆에 나를 앉으라고 하셨다. 작은 어머니는 바닥에 앉으셔서 나를 쳐다보시며 재혼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직 젊은 것이 그렇게 살아서 어쩐다냐, 하시니 작은아버지는 애들 아빠 타박을 하셨다. 이혼하기 전엔 어쨌든지 네가 참고 살아라, 그래도 잘해라. 하시더니 이혼하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처음으로 애들 아빠 욕을 하셨다.

“애 하나 낳았을 때 이혼을 시키는 건데, 남자 구실도 못하는 놈, 천하에 나쁘고 무능력한 놈.”

애들 아빠는 도박과 술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가장을 포기한 불구자가 되었다. 이 사실을 내가 이모한테 털어놓고 이모가 엄마한테 일러바치고 엄마가 작은어머니한테로 전달이 되고 작은어머니가 작은아버지한테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온 집안이 다 알게 되었다. 종미신랑은 무능력한데다 불구자래, 그래서 별거중이래, 그래서 빚더미에 앉아 이혼을 했다는구먼, 고르다 고르다 그런 남자를 골랐을까. 작은 어머니는 내가 이혼을 하고 난 뒤 그러셨다. 팔자려니 해라, 그럼 네 맘이 편해질 거다. 애들 아빠 미워해봤자 너만 괴롭다.


내 쪽으로 화제가 자꾸 번지는 걸 막기 위해 재혼할 생각이 없고, 지금이 난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내 팔자에 애들 아빠의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거기서 끝냈고, 사십이 넘으면 남자가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게 또 다른 인연이라면 따라가야겠다. 그 남자랑 평생 잘 산다고 하니 마지막 하나 남은 팔자가 맞기를 바라며 오늘도 남자가 떨어지는 꿈을 접지 않고 있다.


작은 아버지는 조카들, 그러니까 내 동생 근황을 일일이 묻고, 막내 동생 이야기로 신나하셨다.어릴적에 천덕꾸러기로 자란 막냇동생이 제일 잘 살고 있으니 신날 수밖에 없다. 나도 막내 동생만 쳐다봐도 대견하고 고맙다. 2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떨어져 큰이모밑에서 자랐던 막내 동생. 큰이모도 과부였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나무를 해서 팔고, 남의 집 농사를 져가며 입에 보리밥 칠이나 하며 근근이 살았는데, 거기에 여동생 아들까지 맡아서 키우셨으니…….막내 동생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은 친정집안에서 가장 활기찬 칡넝쿨 같다. 생각하는 뿌리가 튼튼하고 뻗어 올라가는 가지가 쭉쭉쭉 힘이 있다.


올 여름, 아버지 벌초할 때, 그때 다시 작은아버지랑 뭉치기로 하고 늦은 밤 작은집을 나왔다. 내가 살기 복잡하고 고달프다고 작은아버지를 찾지 않았다. 내 생활이 부족하고 보여줄게 없다고 친척들 앞에 나타나지를 않았고, 일이 있어도 장사해야한다는 구실로 가게 문은 열었지만 마음의 문을 닫아 놓고 있었다. 그런 줄 다 아시고 작은아버지는 내게 섭섭하다는 한마디 없이 고향이 그립다, 고향 꽃이 보고 싶다, 하시며 눈물을 그렁그렁 달아 날 쳐다보셨다. 이렇게 건강하게 만났으니 그것만으로 고맙다 하셨다. 추억이 살아 있어서 그 고향 강원도를 찾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하셨다.


“ 종미야? 내 추억은 강원도에 다 있단다. 냇가에 패랭이꽃이 팔랑팔랑 팔랑개비 같았어. 진달래가 온 산 가득이었다. 아~~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