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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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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BY 동해바다 2006-06-17


      저수령(07:45) ~ 문복대(08:35 운봉산 1,074m) ~ 돌목재(09:28) ~ 벌재(10:10 625m) ~ 점심(11:15) ~ 
      폐백이재(12:10) ~ 치마바위 ~ 황장재(985m) ~ 감투봉 ~ 황장산(1,077m) ~ 묏등바위(14:40) ~ 
      작은차갓재(15:35) ~ 문경시 동노면 생달리(16:00)
      06. 6. 13 / 8시간 15분


      
2시간여 잤을까. 새벽의 부름에 일어나 포르르 떨리며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떼어 놓는다. 월드컵 축구 열기가 서서히 달궈지고 그 열기속에서 세계인이 하나가 되고 있다. 광팬도 아니요 스포츠매니아도 아니건만 게슴츠레한 눈 부릅떠가며 TV를 보다 잠이 들었다. 세 계인의 축제가 시작되면서 시차로 인해 자정을 전후하여 치뤄지는 축구경기때문에 달콤 한 수면을 앗아가고 있었다. 부족한 잠은 차안에서 채워야지 작정하고 산행 준비하여 집을 나섰다. 시내 작은 포장마차엔 아직도 하루를 끝내지 않은 사람들이 허기짐을 달래려는지 오뎅 꼬치를 하나씩 들고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씩씩한 하루의 시작을 여는 내가 그들은 이 상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시선이 꽂히는 느낌을 받으며 걷는 새벽발걸음, 보름동안 주려 있던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발걸음이 더욱 가볍게 느껴진다. 새벽4시에 출발한 미니버스 안에서 전날 보았던 축구경기가 역시 도마 위에 올려졌다. 요즘은 어딜가나 빠지지 않는 화제거리이다. 또 오늘 밤 치뤄질 한국과 토고전의 승리예 고를 점치며 걸팡진 입담을 자랑하는 일행의 얘기에도 귀기울여 아침을 요리해 나갔다. 집 떠나 태백 영월 봉화 영주를 거치며 경북 예천군 저수령(850m)에 도착한 시각이 7시 35분이다. 저수령은 예천군 상미면과 단양군 대강면에 위치한 고갯길, 깔끔하게 포장된 지방도로 옆 커다란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곤 출발에 앞서 손모아 화이팅을 외쳤 다.(7:45) 서리서리 얽힌 전설과 애환이 묻어있는 지명을 스쳐 지나가면서 선조들의 역사속 발자 취를 알게되고 또한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우리말에 들어있는 의미를 해석하곤 한다. 저 수령이라는 지명 또한 이 고개를 넘는 외적들은 모두 목이 잘려죽는다는 유래에서 지어 졌다고 한다. 고갯길을 넘나드는 길손들의 휴식공간으로 손색없이 만들어놓은 저수령을 뒤로하고 대 간길로 접어드는 들머리에 발을 딛었다. 들머리부터 가파르게 올라가는 산길 양옆엔 귀엽고 앙증맞은 은방울꽃이 대롱대롱 매달 려 눈을 맞추자고 달려든다. 풀잎 속에 숨어피는 작은 방울들이 모처럼 찾아든 인기척에 반가워 일제히 환영의 손길을 흔들고 있다. 은방울꽃 군락이다. 폭 파묻혀 지내는 깊은 산중의 야생화처럼 요즘들어 심신이 고달퍼서인지 초가삼간이 그립고 맨발에 흙 밟으며 자연과 벗삼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서 요동을 친다. 가진 者의 끝없는 욕심과 이 를 놓지 않으려는 者의 줄다리기 속에서 나 혼자만이 마음 비우며 살자 빈곤속의 풍요를 찾자 부르짖지만 얽혀 버리고 마는 실타래는 전혀 풀릴 생각을 않는다. 거짓과 참됨이 뒤섞여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단순무지한 난 그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함에 마음의 위안이 되고 치료제가 되어주는 거짓없는 산을 찾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집 베 란다와 마당을 채우고 있는 화초들에게 그리 집착하는 이유 또한 산사랑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어찌보면 현실도피적인 비겁함일 수도 있겠지만... 한시간 정도 산길 걷다보니 1,074m 문복대가 나타났다. 저수령과 벌재 사이에 솟아 있 는 산의 정상이다. 운봉산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다래나무인줄 알고 혼동하고 있었던 미 역줄나무가 줄기를 뻗어가며 문복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물 한모금 들이키며 휴식 을 취하고 다시 출발한다. 대간길 대부분이 길인듯 길이 아닌듯 헷갈리는 경우가 간간이 나타난다. 갈림길 나무에 매어져 있는 리본들이 가끔씩 이정표를 대신하여 주지만 이도 이도저도 아닐땐 막막하지 않을수 없다. 팀을 구성하여 이끌고 가는 책임자가 져야할 몫 이지만 말이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모두 함구해야 한다. 막 힘없이 10명의 대원을 리더하는 노장의 혈기에 박수를 치지 않을수 없다. 애기나리가 꽃을 모두 떨어트리고 엄청난 군락을 만들고 있었다. 또 한시간을 걸어 낙엽 으로 뒤덮혀 있는 고개에 다다르니 그곳이 돌목재라 한다. 두시간가량 몇개의 봉을 넘 어오니 뱃속은 여지없이 신호를 보낸다. 산중에서 뜯은 떡취(일명 수리취)로 떡을 만들 어 온 회원의 솜씨가 일품이다. 봄이면 쑥으로 해먹는 쑥떡처럼 똑같아 보이지만 맛이나 영양 모든 면에서 훨씬 낫다고 한다. 이번에 만난 야생화의 백미는 말 그대로 민백미꽃이었다. 순백의 꽃잎 다섯 장이 만들어 내는 꽃들이 키 큰 나무틈 사이로 스며드는 순수 자연조명을 받으며 그 색의 광채를 빛 내고 있었다. 이제껏 온 길의 하이라이트가 큰앵초였다면 이번 길의 시선집중은 바로 이 꽃이었다. 산속의 이름모를 꽃을 보면 이상야릇한 기분을 느낀다. 이 아이의 이름은 무 엇일까 한참을 집에 돌아와 궁금증으로 찾게 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듯 설레임이 일면서... 널찍한 지방도로가 가로 놓여져 있는 625m의 벌재에 도착하니 10시 10분이다. 문경과 단양을 잇고 있는 포장된 도로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다음 산을 또 올라간다. 황장산 등산안내라는 표지판이 도로가에 우뚝 세워져 있었다. 10분여를 걸어가니 헬기장이 나 타나고 진분홍빛엉겅퀴가 홀로 피어 독무대를 만들고 있다. 다시 숲속을 지나고 올라보 니 어느새 소나무 몇 그루 산아래를 굽어보며 호령하는 듯 우뚝 서있는 바위산이다. 멀리 뾰족한 산 두개가 박쥐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지나쳐 온 산인지 언젠가 가야할 산 인지 궁금해 물어보니 전혀 관련없는 산이라고 한다. 우리가 밟고 온 대간길을 뒤돌아보 면 높게 솟아있는 산을 어찌 넘어왔는지 모를 정도이다. 땀 범벅이 되어 묵묵히 걸어온 높고낮은 산이 곧 우리네 인생길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암능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산세가 우리를 기다리듯 내 삶의 잣대를 저울질 하지 말고 순응하며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자연은 이 렇게 다시한번 제 자신을 정화하며 되돌아볼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곤 한다. 저 산 아 래를 굽어보는 늠름한 소나무처럼, 사시사철 언제나 변함없는 상록의 기운을 두 팔벌려 껴안으며 전해 받았다. 11시 10분경 아직 배는 고프지 않았으나 앞으로 소모할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배를 채 워야 했다. 동그랗게 앉아 점심을 먹고 약 10여분 걸었을까. 폐백이재에 도착하였다(12:10). 어느 산악회에서 써 놓은 \'힘내세요\' 하는 문구가 앞으로 가야할 암산의 험악함이 예견 되었다. 치마바위 허리춤 정도일까 로프가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절벽 옆을 조심스럽게 타고 넘어갔다. 모두들 수준급이다. \'황장산 30분\'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황장재이다. 천지도 모르고 따라나선 겁없는 아줌 마들의 기세가 조금 꺾이려나. 황장재를 지나자마자 바위산이 바로 앞에 우뚝 막혀있다. 매달려 대롱거리는 밧줄을 타고 발 디딜곳을 찾으며 올라가야 한다. 벌써부터 겁먹고 있 는 회원이 있어 모두들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어 준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화이팅, 힘내....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올라오니 뻐근하다. 고사목 두 그루가 세상을 하직하였지만 하늘 향해 솟아 있고 옆으로는 뾰족한 칼바위가 능선을 타고 이어져 있다. 생과 사의 한판승, 정신차려야 했다. 한순간의 실수가 대형사고를 일으킬수도 있는 구간이었다. 조심스레 걷다가 긴 행렬의 등산객을 만난다. 서로 양보해 주며 기다려주는 잠시의 정지시간, 밑 을 보니 아찔하다. 외나무다리처럼 꼼짝달싹 할 수 없지만 용기내어 한발짝 옮겨 안전한 지점에 착지하였다. 휴... 드디어 황장산 1,077m에 도착, 인솔자가 먼저 폼잡고 표지석 앞에 서 있다. 무사히 10명 의 대원이 연이어 도착했다. 정상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 오르내리는 한 기점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황장산, 황장목(黃腸木)이 많이 나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는데, 황장목이란 속 이 노란 소나무를 말한다. 옛날 궁궐에서만 쓰선 소나무로 귀한 목재라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여느 나무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나무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삼라만상 온 우주만물 이 변해가는 기껏 백년도 못사는 사람팔자 뒤바뀌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일수도 있 을 것이다. 저만치 아래 헛딛으면 낭떠러지이다. 홈이 파여진 바위에 안전하게 발을 딛으며 두어개 씩 엮어 매듭지어진 밧줄을 꼭 부여잡고 몸을 의지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암릉구간이 다. 눈 앞에 놓여진 커다란 암석이 가야할 길인가 보다 점치면 옆길로 돌아가고, 돌아가 겠지 생각하면 암벽을 타고 올라간다. 한치 앞을 알수가 없다. 따라가는 입장이기에... 수직선상의 절벽에 밧줄 두개가 나란히 동여매여 있는 내림길,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먼 저 내려가 한명한명 용기를 북돋어주며 도와주는 리더, 그 속이 어떨까. 혹시나 잘못될 까 한명의 낙오자와 부상자가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끌어 왔을터 무거운 배낭을 매 고 천지도 모르고 따라오는 연약한 여인네 하나하나 어찌 신경쓰지 않을수 있을까. 잔뜩 겁먹고 내려오지 못하는 회원에게 요령을 알려주며 고개를 쳐 들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렇게 열명이 무사히 내려오기까지 옆에서 보고있는 우리도 안스럽기까지 하다. 목이 아프다며 물을 찾으시는 리더, 누가 시켜서 이 일을 할까. 그 험한 절벽을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제 거의 하산길에 접어들면서 작은차갓 재까지 침엽수림 지대가 이어진다. 시원스레 뚫린 나무밭은 낙엽들로 가득했다. 낙엽에 서 내뿜는 물질이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해서인지 전혀 풀을 볼수가 없었다. 상부 상조할 수 있는 풀과 나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인들 풀과 함께 공생하고 싶지 않았을까. 차갓재로 가는 구간을 다음으로 미루고 마을쪽으로 하산하였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풀 숲길 옆에 골무꽃이 줄지어 매달려있다. 산딸기가 지천인 날머리 쯤에서 모두들 붉은열 매를 하나씩 따 먹느라 정신이 없다. 마을이 보이면서 8시간여의 산행을 마쳤다. 황장산 1시간50분이라는 이정표가 한 팔만 벌린채 산을 향해 뻗어있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리이다. 무사히 오늘도 한 구간을 이렇게 마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땀과 수고의 대가는 자부심과 승리감이다. 누군가 \'대한민국\'을 외친다. 자연스레 나오는 \'짝짝짝 짝짝\' 승리 했다는 뿌듯함이 아마 한국과 토고전에서 승리를 안겨 줄거라는 예감을 하며 집으로 집 으로 향했다. 자정무렵 독일 푸랑크푸르트에서의 승전보.. 2:1 첫승리의 축포를 터트렸다. 산앵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