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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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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패의 첫사랑.(1)-깡패라고 불리는 소녀.


BY 일상 속에서 2006-06-17

 

여러분 즐거운 주말들 되시어요.

 

1983년 11월 말의 어느 날.

13살의 꼬마 숙녀가 있었다.

소녀는 초등학교와 채 50m도 떨어지지 않은 연두 빛 양철지붕의 예쁜 집에서 외할머니와 3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소녀는 곧 있을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두려움과 불안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마음으로 편치 않았다.

정든 친구들과의 이별과 생소한 곳에서 생소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슬프고 두려웠다.


11월의 하늘은 바다만큼이나 짙푸르다.

뭉게구름은 또 어떻고...

꼭 바다 한 가운데 솜사탕을 띄어 놓은 듯하다.

대문을 나서면 오른쪽으로 1m도 되지 않는 좁은 길이 나온다.


-소녀의 집과 가까이에 이웃집이 하나 있다. 그곳에는 구두쇠에 심보 사나운 할아버지가 홀로 계신다. 집과 집 사이에는 텃밭이 하나 있는데 욕심쟁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텃밭을 넓히느라고 소녀가 살고 있는 집 쪽의 길을 조금씩 갈아내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래서 한 성격하는 소녀의 할머니와 그에 뒤지지 않는 할아버지는 늘 대치 상태 중.-


그 길을 따라서 조금만 들어가면 문이 엉성한 푸세식 화장실이 나온다.

집과 화장실의 사이로 들어가면 야무지게 가꿔진 텃밭이 하나 있다.

텃밭의 한쪽으로 동산을 오르는 빨간 흙길.

그 길을 타고 오르면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이 나온다.

이곳은 소녀가 우울하면 즐겨 찾는 곳이다.

상쾌한 공기와 풋풋한 풀내음이 좋아서.


탐스런 긴 머리를 자랑하는 그 소녀는 치마를 즐겨 입었다.

빨강 구두와 함께.

청순가련형의 외모를 가진 소녀가 나무에 기대어 바람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야! 깡패~ 너 거기서 뭐하냐?”

“-_- 이 새끼가. 너 죽고 싶어?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잖아?”


심오한 마음으로 나무와 풀과 바람과 교류를 하던 신성한 시간을,

길 아래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던 또래의 남학생이 방해를 했으니 천상 여자일 수밖에 없는 외모의 소녀는 언바런스 한 언어를 구사할 수밖에.

정말 조용히 살고 싶었건만...주변에서 영,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소녀는 늘 한스럽다.


“봐봐, 니가 그러니까 깡패 소리 듣는 거야. 치마를 벗던지. 메롱~”

“헉...너~! 월요일에 학교에서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소녀가 반쯤 죽인 남학생이 꽤 된다.

빠듯한 휴식시간을 짬내어 체력증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마음 맞는 몇몇 계집아이들과 목숨 걸고 하는 고무줄놀이에 겁 없이 칼질하고 달아난 녀석과,

고상한 분위기로 차가운 마룻바닥에 살포시 앉아서 즐기는 공기놀이에,

죽을 각오하고 끼어들어 훼방 놓은 녀석과,

순번 정해놓고 보는 만화책, 쪼들리는 시간을 아끼고자 수업시간 틈을 내서 한 집중 하며 몰래보는 것을 꼬나 받친 녀석과,

소녀의 신성한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녀석과,

세상을 하직하고 싶어 안달 난 녀석이 감히 소녀의 의복에 손을 댄 것도 모자라서 ‘아이스 케키’ 하는 상스런 만행을 일삼은 녀석들...

다들 뼈저리게 후회하고 눈물을 질질 짜며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고,

소녀에게도 약점이 있었으니 달리기를 못한다는 것.

100m 달리기의 기록이 23초.

약아 빠진 몇몇 녀석들은 그런 소녀의 약점을 거머쥐고 잔뜩 약을 올리며 도망치곤 했다.

하지만 열 제대로 받은 소녀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수업 종 ‘땡’과 동시에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들어 온 녀석의 곁으로 다가가서 맨주먹의 무서운 힘을 여지없이 들어내곤 했다.

뒷감당은...당연히 교실 밖에서 무릎 끓고 앉아서 손들고 서있기.

하루 이틀 서 본 벌이 아니다보니 이제 이골이 난 터다.

집이 코앞이지만 길바닥에 버리게 될 시간이 아까워서 소녀는 도시락을 챙겨 다녔다.

6총사를 자랑하는 6명의 마음 맞는 계집들과 학교 뒷산의 숲속에 들어가서 본부를 만들고 그곳에서 놀기도 했다.

잘잘한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에스키모의 이글루처럼 둥근 돔을 만들고 짚을 주워서 카펫을 깔고 장장 이틀에 걸쳐 만든 본부는 세상에 지들 외에 아무도 모르길 바랬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머지않아 방해꾼이 나타났다.

남자 중에서도 제법 인기 좀 있다 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알고 그곳을 찾아 온 것이다.

비밀 보장을 약속 받고 녀석들도 6총사의 놀이에 끼워주었다.

다음날...

학교 가는 것도 좋고 오는 것도 다 좋은데 수업시간, 딱 그것만 싫은 소녀는 그 날 하루는 어떻게 놀며 하루를 보낼지 계획을 세우며 기대에 차서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먼저 와 있던 친구들의 눈덩이가 다들 퉁퉁.

이어서 소녀의 눈 안으로 들어온 칠판의 난잡한 그림들.

여섯 명의 계집이 그려진 그림에는 세심하게도 화살표까지 긋고 하나하나 이름까지 덧붙어있었다. 그리고 함께 어울렸던 녀석들의 이름도.

다들 끌어안고 뽀뽀하고 난리도 아닌 작품이었다.

유난히 크게 보이는 ‘영미’란 단어.


즐겁게 보낼 하루는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영미야~! 어떤 놈이 저렇게 했을까?”

6명 중 제일 키가 큰 영애가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어떤 새끼야!!! 어떤 놈이 저랬어?!”


소녀는 점심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운동장에서 빤히 보이는 산의 묘지 앞에서 친구들과 귀신놀이(당연히 소품까지 갖춘 긴 머리의 소녀가 귀신 역할)을 하다가 붙들려 내려와서 치마 입고 토끼 뜀 뛰어도 망신스럽지 않았다.

그뿐인가.

달리기 하다가 치마입고 벌러덩 넘어져도 발딱 일어나서 몇 번 털고 일어나던 당찬(?) 소녀였다.

그렇게 얼굴에 철판을 깔고 버티던 소녀가 칠판 앞에서 얼굴이 벌개져서 서 있었다.


소녀는 어떤 녀석과 뽀뽀하는 자신의 그림에 화가 났다. 자신의 얼굴이 제일 못생겼다는 것이...

“어떤 놈이 나를 이렇게 못 그렸어? 누군지 걸렸다가는 죽을 줄 알아.”

소녀는 또래의 친구들처럼 같은 반에 누가 멋지다는 둥, 몇 반에 누구의 미소가 심장 떨린다고 떠드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래의 아이들은 다들 젖비린내 나는 꼬맹이 같았기에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른 아이들처럼 유치한 아이들을 상대로 난잡하게 그림을 그려진 것에 속상하다고 눈물 흘리는 바보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단지 화가 나는 거를 꼽자면 험상궂게 표현된 자신의 얼굴이며 함부로 그려진 자신의 그림. 그래서 녀석을 잡고 싶었다.

셜록홈즈를 존경하던 소녀는 잠시 그가 되어 탐정놀이를 펼쳤다.

함께 어울렸던 녀석들을 하나하나 족쳤지만 순순히 부는 녀석이 없었다.

심증도 물증도 없었으니 사건은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런 불미스런 일로 인해 본부는 폐쇄가 되었다.

곧 헤어질 교실, 운동장, 뒷산, 반 친구들... 아쉬운 시간들에 오점이 생기는 것이 소녀는 속상했다.

여러 복잡한 심정으로 뒷동산에 올라있던 소녀의 마음은 ‘깡패’라고 부르고 도망간 녀석의 망언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이년아, 밥 먹어. 청승 그만 떨고!”

“-_-^...”


뒷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미신 할머니가 부르셨다.

소녀의 이름은 ‘이년’이 아니건만... 좀체 집에서 이름을 듣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

‘도대체 왜 이름을 지어 놓은 거냐구. 차라리 호적에 ’이년‘이라고 올리던지’

심기 사나워진 소녀가 궁시렁 거리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윤기 잘잘 흐르는 마루 위에 밥상.

메인 요리는 큼지막한 무와 함께 지진 동태찌개. 그 외 짠지를 비롯한 밑반찬.

어른의 두 주먹만한 밥공기.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소녀의 식욕은 작다.

그래서 수북한 다른 그릇과 달리 소녀의 밥은 그릇의 바닥면이 가깝다.

식성 좋은 식구들이 허벌나게 숟가락질을 해댔다.

3동생 중, 1명은 이종사촌. 필성.

녀석의 숟가락이 냄비 속으로 들어가더니 낚시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월척... 또 월척...또...

녀석의 밥그릇에 몇 개의 동태토막이 올라갔다.

소녀의 눈 꼬리가 올라갔다.

“존말로 할 때 다시 담 궈.”


정의파 소녀... 욕심 사나운 놈에게 순순히 동태 토막을 있던 자리에 양심껏 갖다 놓으면 용서를 해주겠다는 뜻을 실어 간단하게 말했다.


“이년이, 또 지랄이네. 몇 토막 더 있으니까 그놈 처먹게 놔둬.”

아...할머니의 녀석을 향한 과잉보호의 벽... 참으로 벅찬 벽이다.

녀석은 언제나처럼 기세가 등등하다.

몇 알 뱃속으로 들어간 밥알이 서는 듯한 느낌.


‘참자... 오늘 집에 가는 날인데.’


주말에 한 번씩 들려서 자고 오는 집. 보고 싶은 내 엄마를 볼 수 있는 날이니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며 넘어가고 싶은 소녀는 분을 삭이며 밥숟가락을 떴다.


“처먹는 꼴하고는... 밥알을 세냐? 복이 왔다가도 돌아가게 생겼구만.”

“씨이~! 할머니는 왜 자꾸만 말을 그렇게 해? 신경질 나게. 그리고 내가 몇 번 말했어? 나 치마 입기 싫단 말이야. 바지 사줘. 머리도 자를 거야.”


며칠 잠잠했던 전쟁의 기미...

몇 번 참으면 끝내 터지고 마는 불끈한 성격의 소녀는 불편한 심기를 억제하지 못하고 애꿎은 것까지 불거져 나왔다.

그런 살벌한 분위기에서도 녀석들은 그만큼이나 살벌하게 먹어댔다.

소녀는 정말 바지가 입고 싶었다.

머리도 단발로 자르고 싶었다.

그런데 식구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다.

어릴 때 다친 허리의 후유증으로 등이 살짝 굽은 소녀의 외모를 식구들은 긴 머리와 치마가 카버 해준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자존심 강한 소녀는 남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외모콤플렉스를. 그냥 모든 것에 맞서고만 싶었다.


살벌한 점심 식사가 끝나고,

된통 할머니의 욕을 듣고 밖으로 나선 소녀는 자신의 두 동생을 데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논둑 한가운데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서.

추수가 끝난 빈 논을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노는 꼬맹이들이 보였다. 쌓아놓은 짚단 위로 기어 올라가서 뛰어 내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좋을 때다.”

걱정 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이 부러운 소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두 동생도 그 아이들 틈에서 함께 끼어 놀고 싶은 부러움을 떼지 못했다.

“누나! 있지. 나 새로 사귄 친구 있다. 전학 온 애야.”

한 학년 아래인 동생 진영이가 말했다.

5살짜리 막내의 손을 잡고 가던 소녀는 그게 뭐 어쨌다고, 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래서?”하고 물었다.


소녀는 근간에 들어서 어린 애들을 상대하는 유치한 자신이 되지 말자고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얼마 전, 자신은 어른이 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