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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아의 일기


BY 올리비아 2006-06-15

 

한국과 토고전.

과연 2002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걱정반 우려반 속에 열기 띈 한국민들의 과도한 응원이

오히려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와닿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렇다고 가만 있을 수도 없는 일..


맥주가 동이 났다는 13일 토고전.

그날 하루만큼은 국민 모두가 축제를 즐기는 것 같아

덩달아 흥이 났다.

 

그래.. 스포츠는 소유가 아냐..

즐기는 거지..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응원하는

그 순간만큼은 너와 내가 아닌 분명..우리일테니깐..


저녁 10시.. 드디어 경기가 시작되었다.

붉은 물결이 넘실대는 경기장을 보고는

순간 서울 경기장인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태극전사의 얼굴과 함께 애국가가 끝나자

곧이어 토고선수들의 얼굴과 함께

토고나라의 국가가 울려 퍼진다.

 

“어라..토고 국가가 어째 우리나라 국가하고 비슷하네~”

들으면 들을수록..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다.


“엥 뭐여!”

이거 우리나라 국가아녀?

이런...애국가를 두 번이나 틀어주다니..“


“길조야 길조“

순간 우리들은 기분 좋은 징크스로 받아들이며 좋아라했는데

 

잠시 후 대략난감한 토고선수들의 표정을 보니

좀.. 안 되보이기도 했다.--;


드뎌 경기 시작이다.

초조하게 첫 경기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들.

생각과 달리 선수들의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다.


첫 경기라 긴장이 많이 되어서 그런지

선수들의 연속되는 헛패스에 본능에 가까운 탄성을 지르자


내 외침 소리에 놀란 옆에 앉은 딸...

엄마 때문에 시끄럽다며 쌩 난리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면 속 경기에 집중해 보는데...


어..어..어...라....

토고가 그만.. 한골을 먼저 넣고

골인을 외치는 게 아닌가...


순간 두 손으로 머릴 감싸 안은 채 어이없어하는 내게

옆에 앉은 딸이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듯

엄숙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엄마.. ”

“.....왜..”

 

“엄마.. 축구 끝날때까지 방에 들어가 있으면 안돼?”

“뭬야...”

 

“엄마가 보면 우리나라가 꼭 지더라”

“야~언제 그랬다고 그러니?”


순간 남편이 내 편을 들어준다.

“괜찮아~ 엄마 여기있어!”


역시.. 자식새끼보단 남편밖에 없군..

살짝 감동 먹었다..어흑~ ㅜㅜ


“아냐 아빠~엄마 들어가야 이긴다니깐~ 옛날에도

엄마가 보면 한국이 지고 엄마가 안보면 이겼었어”
“야~나 보고 있을 때 이긴 적 있었어~~”


“어쨌든 엄마 들어가 있어봐 봐~”

“야 내가 무슨 김수로냐? 싫어~”


순간 경기도 못보고 티브 화면을 뒤로하고

앉아있는 김수로의 광고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갈수록 경기가 불안해서 볼 수가 없다.

으흐흐 미치겠네..

정말 내가 보면 질까...에이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계속 보고 있는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혼자 중얼 거려본다.


“이러다..정말.. 지는 거 아냐?”
“그러니깐 엄마 한번 들어가 봐~ 어떻게 되나 보게..응?”


끝까지 괴롭히는 둘째딸이 이젠 애원조다.


“칫~그래~들어간다 들어가!..어떻게 되나 보자~

너 그대신 한국이 지면 그땐 다 너 책임이야~알떠?”


모녀지간 어거지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그래! 꺄~짓거 내 몸 하나 불살라 애국한다면야

안방 아니라 화장실이라도 못 들어가겠니?


독립군마냥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막내딸이 하는 말.


“.....엄..마.... 불.땅.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옆에 앉은 지 언니에게

큰소리로 마구 따지는 게 아닌가..


“언니는 왜 자꾸 엄마보고 뭐라 그러는 거야..#$#@$”


어흑~씩씩하게 보여야 할 내 뒷모습이 그만

막내딸의 말 한마디로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


그렇게 어이없이 거실에서 쫒겨나 안방으로 들어온 나.

침대로 멋지게 고공 점프해서 큰대자로 엎어져 있었다.


혼자 침대에 엎어져 외롭게

시체놀이에 집중하고 있는데..

 

순간 거실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다시 살아난 시체처럼 벌떡 일어나

잽싸게 거실로 달려갔더니 딸이 날보고 하는 말...


골 안 넣었으니 다시 들어가란다..ㅡㅡ+

아띠.....다시 안방으로 들어온 나..


침대에서 다시 누워 냉정을 되찾고

책 한권을 펼쳐 드니 온통 신경이 거실 티브에 꽂혀서

 

자꾸만 읽은 줄.. 또 읽고... 또 읽고....

하얀건 백지요... 꺼먼건 먹물이니라....


그러다 또 밖에서 환호성이 들려 올 때면

이젠 나가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서 큰소리로 물어본다.


“야~~왜그래~~골 먹혔냐?”

“아니~~토고선수 한명 퇴장 당했어~~”


퇴장이라고라고라~

후다닥 거실로 나가 토고선수의 퇴장과 함께

이천수의 프리킥을 기쁨에 찬 모습으로 지켜보려는데


순간... 딸아이가 저승사자처럼 날 스윽 올려보더니

거기 서있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가 있으란다.


기집애....티븰 보는 거야.. 날 보는 거야..

두고보자너!칫~


딸아이의 명령?에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는 척 하고 몰래

방문 틈새로 이천수의 프리킥을 빼꼼히 바라보고 있는데..*,*;;


“꺄악~~골인!!!~~~골인이다~~”


거실로 다시 뛰어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소릴소릴 질렀다.


“누가 이천수보고 못생긴 선수 1위라고 한겨!!

을~매나 잘생겼는데!! 남자는 저렿게 생겨야 되느겨~

눈도 쪽 째지고~~알간? 우와~~~이천수 파이팅!!”


흐흐흐~

고백컨대 난 기분 좋으면

미남미녀의 기준이 없다.


이젠 1;1이다.

일단 불씨는 당겼으니...아흐 흐뭇하도다..

“나 이젠 티브 봐도 되지?.^^;;”

 

싸~랑하는 남편이 하는 말

 

“.......들어가!”

“ㅡㅡ;”


세상엔 믿을 넘 아무도 없다더니.

 

딸랑 하나?밖에 없는

믿었던 남편에게까지 배신을 당했다.


그런데 문득... 인터넷 뉴스 한토막이 생각났다.

토고 점쟁이가 자기네 나라가 2;1로 이긴다고 예언했다는...


다시 찜찜한 마음으로

옷고름 부여안고 발길 떨어지지 않은 걸음으로

안방으로 들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 애국자의 길은 멀고도... 너무 험해..--;;”


그리곤 잠시 후..

다시 거실에서 제2의 환호성이 터지길래

본능적으로 안방 문을 박차고 뛰쳐 나갔더니


아~ 드뎌 안정환의 역전골이 터졌다는 게 아닌가..


뒤늦게 남들 다 소리 지르고 난 뒤

그제야 한 박자 느린 환호성을 지르며 거실에서

흥분의 도가니탕을 휘젖고 있는 내가 또 큰소리로 외쳤다..


“안정환!  잰 정말 잘생겼어!!..

간판이 달리 간판이냐..아자아자 파이팅~~~!!^0^“


2;1이라..

아....이젠 안도할만하다...


그래 태극전사들아..

최소한 너희들이 4강 신화가

행운이 아니었음을 널리 알리거라...


잠시 소란한 틈을 타 슬며시 소파에 앉은 난

양 날개 좌우 수비대인 남편과 딸을 번갈아 보며

애써 귀여운 눈웃음으로 구애를 청했다.


“이젠 나 봐도 되지? 히히..^^*”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하였다.

웃는 내 얼굴에 남편과 딸이 외친다.


“...들어가!”

(누구냐!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말한 사람...)


“쳇 내가 명훈이냐? 무슨 말만 꺼내면 들어가라고 해.”


식구들의 웃음을 뒤로하고 방에 다시 들어온 나..

제발 경기가 이대로 끝나야 될텐데..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