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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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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왜 찾아 왔어요?


BY 정자 2006-06-12

나를 기억해달라고 사정도 안했건 만

그는 나를 물어 뮬어 찾아왔다.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그도 늙어가고 나도  중년에 끼어 들어 갈 무렵이다.

 

남편하나 있고 자식이 있고 가정이 있는 여자가

괜히 남의 남자 엿본다거나  집적거릴 만 한  재주가 나에겐 없다.

거기에 미모나  재력이나 학벌엔 전혀 무관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기억하고

동문회니 동창회니 사람찾기에 일일히 확인하여

결국 나의 사무실에 전화를 한 것이다.

 

무심코 대답하듯이 통화를 하다 갑자기 내 귀가 뻘개지고 수화기를 이쪽 저쪽 번길아가며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던 그 남자의 이름과 같았다.

물론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깊게 가라앉은 앙금같은 소용돌이가 이제 돌아가듯이

천천히 그의 얼굴이 짚어지기 시작했다.

 

잘 있었냐고 그런다. 물론 잘 있으니 전화통화 하죠... 이 말 하고 싶어도  말이 목구멍에서 턱턱 걸렸다. 오랜만이니 만나고 싶은데 마침 나의 사무실 근처에 출장 나와있으니 점심 같이 하자고 한다. 지금도 순대국을 좋아 하냐고 묻는다. 얼결에 그렇다고 대답하니 얼른 나오라고 하는데, 이거 순간 나의 남편 얼굴이 내 생각속에서 스친다.

 

 외간 남자랑 밥 먹다가 만약에 들키면 울 남편 얼굴 어찌 볼까가 아니고, 사실 남편도 결혼전에 이 남자를 우리집 앞에서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 바람에 울 남편 질투심인지, 아니면 날 뺏길까 봐 더욱 울 엄마에게 매달린 계기가 된 것이니. 사실 연적이라면 연적이다.

 그러니 밥을 그것도 십칠년이나 지나서 마주보고 식사를 한다는 게 어째 나에겐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근처에 있는 식당이름을 댄다. 몇 시까지 꼭 나오란다. 안 나오면 나의 사무실에 좆아 올 기세다. 하긴 그 높은 달동네까지 올라 온 남자인데. 여긴 안 올까..

 

 거울을 보았다. 이상하게 오늘은 원피스를 입고 싶었다. 친구네 마네킹에서 붉은 꽃무뉘가 조금은 약간 바래지고, 이렇게 보면 탈색된 분위기의 원피스를 입었는데. 남편이 그런다.

앞은 모르겄는디 뒤는 여전히 이쁘다한 그 원피스다. 오늘 저녁엔 뼈다귀 넣고 묵은 김치넣고 오랫동안 푹 삶은 뼈다귀탕 해준다고 했는데,

 

 얼굴을 보니 나야 맨날 보니 잘 모르겠다. 말이 그렇지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 얼굴이야 안 변하고 그 남자야 못 변할까.

 

 들어서는 식당 입구에 항아리들이 즐비하게 서있다. 항아리 사이에 이름 모를 꽃들이 제 각각  빛난다. 어떤 신사가   정문에서 서 있다. 난 걱정이다. 내가 사람을 못 알아보면 뭐라고 변명을 해야 되나 하는데...

 

 그 신사가 나를보고 손을 흔든다. 난 처음 보는 사람인데..

가까히 보니 그제야 기억이 확 들어온다.

\" 그대로네요... 내 그럴 줄 알았어요. 그 때보다 더 이뻐졌어요 !\"

나도 그 말 하고 싶었다. 그 때는 나보다 더 잘생겨 기죽이냐고 했는데. 지금은 기품이 있어보이니 훨 나보다 더 신상이 좋아 보였다. 다행이다. 나를 먼저 알아 보았으니 난 변명 할 것도 없고.

 

 한식 레스토랑인데 무슨 코스요리인가 나보고 고르란다.

많이 못 먹는 거 안단다.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음식 가리지 않지만 입이 짧아 조금씩 조금씩 나눠먹는다고 했는데. 그 말은 울 남편에게 했지. 이 남자에겐 안했는데.  

 

 자기도 결혼을 해서 서울에서 살고 있고. 아이들이 지금 중학교에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조금있으면 영국에 유학가고 . 이런 말들을 묻지도 않았는데 술술 잘도 한다.

 난 내내 궁금하다. 도대체 날 왜 찾아 왔을까.

시간이  오랫동안 흐른 후에 이렇게 마주보고 앉아 식사하며 집안 대소사를 들으라고 날 불러 낼 이유가 아닐텐데.

 

 서빙하는 웨이터가 나를 보고 그 남자를 보고 무슨 불륜인가  싶은 눈치도 보인다.

중요한 건 남자는 괜찮은대, 여자가 너무 입이 툭 튀어나온 오리같이 못생긴 여자라는 거.

어울리지 않은 커피셋트잔 보는 것같은 눈 빛이다.

 

 그래 울 엄마 말이 맞긴 맞나보다. 여러 여자 번 갈아가며 헷갈리게 한다고 하더니 꼭 그런 상테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이렇게 밥을 먹을 줄 누가 알았나. 그래도 난 묻긴 물어야 겠는데

툭 튀어나온 입이라 그런가 도무지 말이 더 튀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 남자가 말이 뚝 끓겼다. 식탁위엔 조용한 모짜르트의 소나타만 들리고 그제야 난 말을 해야 되는데 식탁 밑에 내 손바닥만 땀이 난다.

나중에 묻지 뭐..급한 건 없는데.

 

저기..지금도 글 안써요?

매차 없이 웬 글 애기냐? 십칠년전에도 무작정 찾아와서 글 안쓰냐고 하더니  잊을 만하면 또 와서 쑤셕거릴려고 그러나. 내 참 내가 쓰던 말던 상관하지말라고 툭 쏘아주고 싶은데. 이것도 목구멍에서 턱 걸려 물만 연신 마셨다.

 

혹시 글 써놓은 원고있으면 볼 수 있을까요?

이거 어디 출판사에서 온 것도 아닐테고, 나 또한 조사받는 기분도 떨더름해서

그제야 한 마디했다.

\" 지는 글에 관심이 없는데유..\"

 

 열일곱에 내가 대필 해준 그 연애편지 중 다 나에게 도로 보내지 않았단다.

몇 장은 지금도 보관하고 있단다. 그게 잘 못 보낸 연애편지란다. 자기한 테 올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편지인데. 그게 모두 詩란다. 놀랐단다. 도저히 고등학생이 그런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되어 일부러 만나자고 했는데, 진짜 이름을 대준 사람을 보니 아니더란다.

그래서 모두 편지를 돌려보내게 된 것이란다. 그래도 그 잘 못 온 편지는 보내고 싶지 않았단다.

 

 난 그 편지들을 옥상에서 다 태웠는데. 그래서 뭐라고 썼는 줄 하나도 기억이 없는데.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해본 이유라면 그런 사건들 때문인데.

글 한 번 잘못 써서 누구가슴에 상처가 된 다는게 그게 무서워서 일절 앞으론 연애편지질 안한다고 했는데. 이제야 이 남자가 그 사건의 전말을 알려 주러 왔나 보다.

그런들 이제 와서 뭐할까. 다 지나가 버린 사실들인데.

 

어디 공모라도 한 번도 안했어요?

남자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전 원고지 쓸 줄도 모르는데요. 지금도 그러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어디 원고료 바라고 글 내는 것도 체질상 안맞고, 문학지인지..뭔지에서 등단하면 거기에 매일 수도 있고, 그냥 이렇게 소일 하듯이 사는게 젤입니다.

그 편지때문에 저에게 연락을 하신 거예요?

 

슬 슬 웃는다. 우리집 앞에서 만난 울 남편을 묻는다.

그 때 정면으로 마주쳤는데. 우선 피해줘야 될 것 같기에 자릴 피했는데. 나중에 집에 전화를 하니 울 엄마가  정자 인자 시집 갔으니 전화 하지 말라고 그러시더란다. 그 때 자리를 피하지 말고 정면 대결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 것 같냐고 하는데.

 

내 등에서 진땀이 다 난다.

 이 남자 저남자에 채이는 게 아닌 내가 고르냐 마냐의 선택에 기로에 선 그 때가 아득하다.

 

이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어쩌긴 어째요? 나한테 박 박 긁히고 바가지소리를 실컷 듣고 있을테지요?

지가 곰퉁이라네요... 살림도 못 해, 비위도 못 맞춰져. 그렇다고 시집에 잘 하냐? 나쁜 며느리에 고집만 디게 드세가지고  볼 걸 하나도 없다고 그러는디..괜히 결혼은 하자고 했다고 도로 무르자고 한적도 수 십번인디... 에휴 데려 갈 사람이 없으니 그냥 봐주고 델고 산다고 하더만요.

 

그 남자가 너털 너털 웃는다. 그럴 줄 알았단다. 그렇게 살 줄 알았단다.

그 말끝에 난 그제야 눈 더 크게 뜨고 대놓고 물었다.

근데. 왜 날 찾아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