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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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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집 가고 싶은 날.


BY 일상 속에서 2006-06-12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바보 같으니?

여러분들...요즘 제가 왜 이런데요?

태양아래 축축 늘어지는 엿가락처럼...늘어지려고 하네요.

 

사람은 장래가 막막하면 한번쯤은 미래를 예언하는 만신(점쟁이)을 찾고픈 생각을 한다고들 하던데...

내가 오늘 딱 그 짝이다.

막막하다. 짜증 지대로다. 비전이 없다.


어제인 일요일 오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랑이 잘잘 흘러넘치는...같은 여자가 듣기에도 이뻐하지 않을 수 없는... 아영이와 2년 동안 같은 반을 하고 있는 친구의 엄마.

나이도 1살 차이라 친구로 지내자고 하지만 아무래도 내 자격지심은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어쨌든 만나면 좋은 친구~ 다.

민영엄마.

37살의 많지 않은 나이에 무슨 복인지 1세대 2주택이던 이 친구는 세금을 걱정해서 집 하나를 정리하고 큰 평수의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서 들어간다고 언젠가 지나가는 말을 했었다.

5월 30일 쯤 이사를 한다고 했었는데 난, 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일 때문에 그 친구에게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런데 전화가 온 것이다.


이사를 했는데 어쩜 전화 한 통화가 없냐나...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 자격 없는 사람이니 아주 나 같은 것 껴주지도 말라고 했다.

‘깔깔깔’ 웃더니 집들이를 연짱으로 벌이느라고 정신이 없었지만 월요일에 나를 비롯한 몇몇 엄마들을 부르기로 했단다.

xx 아파트, 102동 510호.

이사한 주소란다.


아침에 다른 엄마들에게 전화가 왔다.

갈 거냐고.

소주 한 병 마시고 가야되는 것 아니냐고.

다들 나같이 작은 평수의 일반건물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난 우스갯소리로 소주에 빨대를 꽂아서 가자고 했다.


오전 10시 30분까지 오라는 민영엄마의 말.

‘시간이 칼’이란 수식어가 붙는 나였지만 아침부터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까지 보며 늦장을 부리다가 따로 모여 가자고 한 엄마들과 어울려 슈퍼에서 만났다. 난 집들이 선물로 제일 큰 세제를 사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사할 때 가구며 살림살이를 모두 바꿨다는 민영 엄마의 얘기가 생각났다.


“정형아, 민영이네 드럼이냐?”

동네 마당발인 한 엄마에게 물었다.

“몰라, 언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소금 먹은 배춧잎처럼 풀죽어 있던 정형엄마가 더 맥 빠져서 말했다.

“자기야, 우리 그냥 피죤이나 샴프 사갈까?”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결이 엄마가 물었다.


집들이라는 명목 하에 들어오는 것으로 몇 년은 휴지며 세제 걱정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난 기어코 세일해서 14,000원 하는 세제를 사가겠다고 했다. 의리 없단다. 혼자만 따로 한다나... 에휴... 여자들...


민영네 전화를 했다. 드럽세탁기는 안 샀단다. 아무것도 안사와도 된다며 여유있는 웃음을 지었다. 빨리 오라고 왜 이렇게 안 오냐는 꼬리말을 남겼다.

곧 가마했다.

곧 가마...


난, 어쩐 일인지 아파트가 싫다. 그래서 절대로 아파트에 살지 않겠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전원주택이라도 짓고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엄마의 그런 생각에 아빈이는 이의가 없었는데 아영이는 아니다.

꼭 화장실 두 개 있는 커다란 평수의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타며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친구네 집에 다녀오면 아주 병이 나는 가시나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대부분 아파트에서 산다.

덕분에 길치인 나는 처음 찾을 때마다 애를 먹곤 했다.


오늘...

나를 비롯한 두 여자와 함께 아파트 숲을 헤집고 다닌 것을 생각하면...에휴...

몇 번 다녀봤으니 까짓 아파트...하며 당당히 찾아 갔건만.

102동은 건물 높은 곳에 커다랗게 쓰여 있으니 찾기 쉬웠다.

그런데 510호가 안 보인다.

한 바퀴를 빙글 돌아서 찾았구나 하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를 누르니 505호다.


셋은 얼굴을 마주보고 한바탕 웃어대곤,

“510호니까, 10층인가 보다.”

하며 10층을 누르니 1005호가 나온다.

다시 신나게 웃었다.


그리곤 내려와서 우편함 쪽에 서서 510호를 찾으니 없다. 그런 숫자가...

그때 한 아줌마가 지나 가길래 여쭈니 저쪽 끝에 건물 입구에 10이란 숫자가 쓰여 있는 곳으로 가라나...

아...쪽 팔려.


“언니...우리 소주 한 병 가자고 안 되겠지?”

눈이 동그란 정형이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눈가에 힘이 없다.

웃음조차 어색하다.

결이 엄마도 마찬가지.

내 얼굴도 같았겠지.

하지만 내가 누구냐고...

밟히면 밟힐수록 더 빳빳이 서는 무대뽀 정신의 소유자.


“기죽지 마러. 세상 다 살았어? 이렇게 살다보면 우리한테도 좋은 날 온다. 그런 희망이라도 갖고 살자구”


내 말에 세 여자는 머리 벗겨지게 더운 태양아래,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콘크리트 바닥 위를 터덜터덜 걸어서 드디어 102동 510호를 찾았다.


아...! 들어가 보니,

물소가죽이라나 뭐라나... 소파와 스튤 세트, 죽였다.

원목이라는 드레스장인지 tv다이인지...그 위에 셋팅해 놓은 세련된 디자인의 화병과 조화들, 거실 미니어처, 온갖 것의 리스들, 벽걸이 대형 tv... 아이들의 가구들... 완전 나의 염장에 불을 지를 것들 투성이었다.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그동안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건만...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은 평수의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한 엄마와 다른 동이지만 같은 비슷한 평수의 아파트로 6월 말에 이사를 한다는 엄마들은 신이 났다.


“어머, 이것 못 보던 장식이다.”

“이거 얼마야?”

“이렇게 해놓으니까 좋네. 나도 이렇게 해 놔야겠다.”


신나서 떠들고 있는데 우리 셋은 물소 통가죽 소파에 등도 기대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민영아, 뭐 마실거나 줘봐. 뭐야~! 우린 뭐 꺼다 놓은 보릿자루야?”


집이 커서일까?

우리 집 같으면 내 그 목소리는 건물을 뒤흔들리고도 남았을 텐데...

민영네 집안은 내 목소리를 거뜬하게 받아쳐냈다.

입이 귀에 걸린 집주인은 새로 산 예쁜 컵까지 내오며,


“미안... 난 이따가 식사 많이 먹으라고 그냥 수다만 떨려고 했지 뭐야.”

한다.


“우리의 인연은 이거로 끝이다. 어디 기죽어서 여기 오겠어?”

나의 말에 기죽어 있던 두 여자만 깔깔 거리고 웃었다.


2시간에 걸쳐서 여자들은 제각기 수다를 떨었다.

새로 이사 갈 여자들은 그 여자들대로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나 역시 수다에서 밀리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한 몫을 하긴 했다.

하지만 영,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다.


아이들을 핑계로 한두 명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이 동그랗게 큰 정형이가 말한다.


“언니, 나도 여기로 어서 이주해서 들어 올까봐. 텐트라도 가지고...”

“.....”

정형이 말에 결이 엄마는 입가에 웃음만 머금고 대답도 없다.

“그려, 그렇게라도 해서 살고 잡으면 그리 해봐라. 하지만, 우리 기죽지 말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잖아.”


나는 그 마지막 말을 남기고 급하다며 먼저 집으로 향했다.

아영이가 집에 들렸다가 컴퓨터 수업 받으러 가는 날이라서 빈말이 아니라 급하긴 급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이 울린다. 집 번호다. 받으니 아영이...


“어? 너 어떻게 집에 들어갔어?”

“응, 아빠가 열어 줬어. 엄마 어디야?”


아영이는 또 심통이 났다. 저만 쏙 빼놓고 다니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데...

집에 도착해 보니...내가 살던 집구석이 유난히 작아 보인다.

거실이라고 민영네 작은 아이 방보다 더 작다.

식탁 위에 쟁반이 놓여있었다. 남편이 먹고 난 빈 그릇도 싱크대에 넣지 않고 그대로 밥그릇을 말려놓았다.


안방에 작업복차림으로 철퍼덕 누워서 두 팔을 이마 위에 올려놓고 있는 남편. 일을 간다고 늦게 나가더니...

사실, 나의 빌빌 꼬인 심보를 남편에게 투정으로 풀어 버리려고 했건만,

남편의 심기가 어째 더 불편해 보인다.


“내가 안 들어왔으면 아영이 문 앞에서 울고 있었을 거 아냐?”

남편이 나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돌아온 시간이 12시 40분이니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다. 아영이가 보통 1시쯤 돌아 왔으니, 계산이 틀리지 않는다면 학교가 일찍 파한 것을.


“일찍 온다고 온 거야.”

“.....”


남편이 대꾸가 없다.

아영이가 내 곁으로 오더니 귓 말을 한다.

“엄마, 아빠 왜 저래?”

“뭐가?”

“기운 없어.”

“엄마도 없어.”


배에 땅에 닿도록 실컷 먹고 와서인지 아니면 뒤틀린 심정 때문인지 속이 덥수룩하다.

예비올케며 막내 동생에게 차례대로 전화가 왔지만 반갑게 받지 못했다.


팔자 좋게 이마빡(?)에 팔을 얹고 누워있는 남편이 왜 그렇게 무능력해 보이는지... 어떤 신랑은 사업한답시고 그렇게 잘나가는데, 어떤 인간은 죽상을 하고 벌건 대낮에 누워있는 꼴을 보고 살아야 한다니...


콱!!! 따져 물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그놈의 연민이란 놈이 머리 한쪽으로 ‘톡’하고 튀어 나온다.


“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색 않고 물으려 했지만 밝지 않은 내 목소리.

“없어. 그냥 짜증나서 일 못하겠다.”

“뭐가 짜증나는데?”

“모든 것이 다...”


말과 함께 벌떡 일어나던 남편이 아빈이의 컴퓨터를 켜고 견적서란 서류함으로 들어간다. 그리곤 나보고 세금계산서 하나를 써 달란다.

돈도 안 받고 무슨 영수증이냐니 그렇게 해야 한다나...

물고 늘어졌지만 만사 귀찮은 듯한 표정에 그만 두기로 하고 써서 내밀었다.


“자기가 기운 없으면 어떡하냐? 금방 뭐가 될 것같이 큰소리 친지가 며칠이나 지났다고. 우리 여기서 더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된다. 알지?”

여기 향기 죽이는 커피 한 잔들 하고 가시어여~

내 말에 남편이 제대로 된 대답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 늦은 시간에 뭣하러 나가냐니 내일 자제 준비해야 한단다.

두 달 사이 남편이 내게 갖다 준 돈이 550만원이었다.

그동안 못 막은 이것저것을 막고 나니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냔 말이지. 남편이 곧 더 많은 돈을 갔다주마 했는데...

그래서 희망이 잠깐 비췄드랬는데...

오늘은 이곳저곳을 둘러봐도 막막하다.


잠시잠깐 점집이라도 댕겨오고픈 생각이 들었지만,

그 몇 만원으로 차라리 갈비 몇 근을 사다가 양념을 재서 가족들을 먹이는 것이 남겠다는 실속 차리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친정엄마...

남이 속가 버린 배춧잎을 늦은 밤 주워다가 김치를 해서 먹고 산적이 있다고 하셨다.

휴가철이면 옛날에 그렇게 거지같이 살던 내 고향으로 가서 지금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옛일이 생각났다.


나도 그럴 날이 오겠지.

그럴 날이 안 오면 되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