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이른 새벽부터 새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이곳은 물이 터무니 없이 모자란 상태인지라 기다리고
기다린 단비였다.
수요일 새벽까지도 엷게 흩뿌리던 비가
9시 학교에 모여 떠날 즈음엔 멈추고 있어 여간 다행이였다.
1시간 남짓 버스로 달려 선착창에 내려 다시 배 가운데 모든 짐들을 모아놓고
또 한 30분을 나즈막한 섬사이로 연결된 강으로 깊숙히 들어가 켐프장소인
“밀슨 아일랜드”라는 섬에 도달할수 있었다.
나중에 안것이지만 한쪽 아래에 아주 낡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오래전에 감옥소로 사용하던 곳이기도 하고 나중에는 정신병원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정부에서 이곳에 투자하여 해마다 조금씩 더 개선되어 지내기에 편리하고 아름다운 장소였다.
우리 딸아이가 이곳에 왔을때 마침 생일이였는데 한 선생의 배려로 준비한 커다란 케?揚?많은 학생들의 축하를 받으며 나누기도 한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으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는 켐프장소였다.
개인은 사용할수 없다하여 이런 기회가 아니면 와볼수 없을것 같아
한번은 와 보고 싶었다.
또한 교회 주일학교 수련회에는 여러번 다른 장소를 가보았지만 이곳 호주의 학교의 켐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건물로는 섬의 가장놓은 곳에 커다랗게 천막을 친 넓은 모임장소를 중심으로 둥근 모양으로 색다른 몇개의 숙소와 쉴수있는 라운지와 커다란 다닝룸과 사무실이 있었고 섬 아래쪽 수풀사이로 활동 장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훈련받은 교관들이 조를 나누어 “카누”,“높은 줄타기”, 암벽 타고 내려오기”,“바위 올라가기”, 활쏘기”, 부메랑 던지기”,등 돌아가면서 안전하게
장비를 착용하게 하고 잘 할수있게 도와주었다.
저녁에도 프로그램을 맡아 게임을 진행하여 주었다.
그래도 책임은 우리에게 있어 말안듣는 몇몇 학생들 때문에 간혹 가슴 섬찍한적이 있기도 하였고 계속 잔소리 하여야 하였지만 별다르게 할일은 없었다.
문화가 다른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였다.
성격이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나, 유난히 튀는 아이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사춘기로 접어 든 아이들의 특성은 누구나 별다를바 없었다.
밤에는 비가 쏟기우기도 하였지만 맑고 좋은 날아래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누구나 다 골고루
받을수 있는 좋은 시간이였다.
나 또한 처음이라 동서양의 다른점을 배울것들이 더러 있기도 하였다.
금요일, 점심후 다시 선창장에 나와 배를 기다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다.
버스로 옮겨 탈때는 제법 쏟기우기 시작하더니 돌아오는 길에는 엄청
무겁게 비가 쏟기웠다.
3개의 버스에 나누어 탄 학생들과 짐들이 비가 계속내리면 영 불편할것 같았는데 학교 가까이 와서는 다행히 비가 멈추어 주어 다들 짐 ?아 돌아들 보내고 몇몇의 선생들은 다시 학교안으로 들어갔지만 난 그냥 집으로 왔다. 피곤했다.
주일학교 떠난 한동안은 잊고 살다가 오랫만에 종일토록 아이들 좇아다니려니
힘도 들었고 재미도 있었지만, 전기담요를 갖고 가라는 충고를 무시하고 그냥
간탓에 추위와 함께 보낸 밤, 보이는 이불을 몽땅 겹겹히 말고 잤어도 감기에
걸려버린 다음날, 그래도 머리속은 아무 생각없이 편하였던 날.
이곳 사람들이 여행을 자주 나가는 이유를 이제는 알것 같다.
잠깐씩은 쉼이 필요한 우리 나이라는 것도 알것 같다.
비가 쉬지않고 부실부실 내리고 있다. 빨래는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9시 부터 필드에 나간다던 남편은 잘하고 있는것일까?
정상대로 하면 2시경이면 온다고 하였는데 그곳에 혹시 비가 더 많이와
늦게 나가든지 혹은 중간에 쉬어야 하지는 않을까?
전에 아이들 어렸을때는 혼자만 골프가는 남편이 못마땅해
“비나 작작와라”한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만큼은 쉼의 시간이
될수도 있을것이니 좋은 시간 갖기를 바램하여 진다.
내가 쉬고 싶듯이 그도 역시 쉬고 싶기도 하겠지.
쉬는 방법이 나와 다를뿐, 틀린것이 아니고 오직 다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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