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쉬운 듯 하기 어려운 말이 \'나는 너를 사랑해.\' 같아요. 쑥스러워서... 하지만 이 말을 뱉어내면 듣는 사람은 행복이 넘치는 것 같더군요. 입만 여문 나...오늘 한번 해봐야 겠어요. 남편에게... 그럼 그러겠지요? \' 당신 아직도 많이 아퍼? \'
내 엄마는 바쁘게 살면서도 나에 관한 모든 일에 일일이 참견하셨다. 학교에서 육성회 어머니 모임에도 가입하셨고 학교에서 곧잘 바닷가 우리 마을로 소풍이라도 갈라치면 커다란 꽃게 찜을 비롯해 낙지회에 매운탕, 모듬회까지 바리바리 사람들까지 대동해서 선생님들을 접대하곤 하셨다.
당연히 선생님들이 내게 참으로 잘하셨다. 그래서 눈감아 주고 넘어가는 것도 많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나...
내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가출로 학교에서 모습을 감출 때.
엄마의 찢어진 빤스, 구멍 난 몸배 바지, 아빠의 허리띠는 그물에 묶어 쓰는 비닐 동아줄, 남들 바닷가에서 자장면 시켜 먹을 때 달랑 짠지 하나 넣고 돌돌 말아 싼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시는 나의 부모님 모습들 때문에 갈등 많이 했었다.
단 한 번도, 내게 ‘이렇게 해’ 하고 강요한 적 없는 나의 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나의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었나 보다.
31살의 노처녀 담임이 규칙을 어기며 학교생활을 하는 내게,
“몸이 불구면 마음이라도 옳게 써야지. 마음까지 그러면 되겠어?” 하고 대놓고 말한 적이 있다.
날을 잡았는지 내게 망발을 늘어놓은 그 선생을 향해서 난 눈 꼬리가 찢어지도록 노려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쫒아나가서 선생의 머리채라고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성이란 것이 남아있었는지 그것만은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입은 굳게 다문 상태였다.
자리에 앉으라는 말에도 난 끝까지 대리석처럼 굳은 자세로 서서, 그 눈길 그대로 담임을 노려보았다. 반성문을 써 오란다. 대꾸하지 않았다.
담임이 더는 어쩌지 못하고 그냥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때서야 자리에 앉은 나는 교실이 떠나가도록 큰소리로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한 번도 밖에서 눈물을 보인 적 없던 나.
시험 못 봤다고 한 힘 하는 선생님에게 당구 큐대로 부러지도록 맞았어도 난 꿈쩍하지 않고 그 매를 그대로 맞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그때 별명은 ‘철면피(피도 눈물도 없다나?)’이기도 했다.
그런 내가 대성통곡을 하고 울었다.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선생을 그냥 두지 않겠다고 난리였지만, 코가 삐뚫어지게 술이나 먹자고 붙잡았지만, 난 멋지게(?) ‘내 일에 상관하면 다들 그냥 안둬.’ 하는 말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엄마가 모르길 바랬는데... 그때 엄마가 내 앞에서 울었다.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나 때문에 험한 세상 버티고 살아가는데 이제 살아갈 힘이 없단다. 그리고 우셨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사실 나와 엄마의 얘기가 아니었다.
내 아들 아빈이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것이 이상하게 설명이 길었다.
아빈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게임 때문에 나를 많이 힘들게 했었다. 억제만 하면 더 하고 싶어 할까봐 난, 일찍 게임기도 사주고 함께 놀아주기도 했었는데 자식은 늘 부모가 바라는 대로 가지 않는가 보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녀석은 길거리에 있는 게임기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게임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집에 있는 게임시디며 게임기도 모두 버려 버렸다.
그런 전쟁이 한창일 때, 녀석이 학원에 있어야 할 시간에 길거리 게임기 앞 땅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게임하는 모습이 여렷 눈에 띄었고 혼내기도 많이 했었다.
무슨 돈으로 게임을 했냐는 질문에 길바닥에서 주었네, 친구가 줬네... 하고 둘러 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이 빈 적이 있었다. 설마 하는 엄마의 심정은 아들을 의심할 수 없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겠지...
그런 나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녀석의 몸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우르르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창피해서 누구에게 말도 못하겠고 세상 끝나는 것이 이런 거구나...
그 옛날 내 엄마의 기분이 이랬겠구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녀석과 참 많이도 신경전을 벌였다. 반성하는 듯 했다가도 다시 그 유혹에 빠져 들고...반복적인 그 일에 난 녀석의 손을 잡고 파출소를 찾기도 했다.
그리고 혼 좀 내주라고 부탁드리기도 했다. (분명 그때까지도 난 극성 엄마가 틀림없다. 특이한 케이스의 극성엄마.)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상담도 했다.
의사선생님 말씀이 아이들 한때 있는 호기심이란다. 용돈을 정해놓고 줘보라는 조언을 들었다.
녀석의 도벽은 그렇게 해서 사라졌다. 일부러 지갑을 아들이 보는 곳에 놓아 두기도 했었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그러지 말란다. (이 설명은 혹여 지금 내가 경험한 일을 겪고 있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그건 오히려 아이의 유혹을 부채질 하는 거라나?
후부터 우리 집에는 동전과 지폐가 굴러 다녀도 손대는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그런 쪽의 걱정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들과 딸은 어떻게 사춘기를 보내게 될지 감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시집살이 당해본 며느리의 시집살이가 고되다는 말처럼, 난 내가 경험했던 그 빠삭한 일들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앞서서 걱정하고 잔소리 해대는 나쁜 성향이 있다. (알면서도 고치기가 쉽지 않으니 애들에게 ‘넌 왜 못 고쳐?’하고 묻기가 어느 때는 낯 뜨겁다.)
가끔 내 아이들은 엄마 인 나 몰래 지들끼리의 비밀을 만들어 놓고 들킬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 사먹지 말라는 말을 어긴 것, 사지 말라는 장난감 나부랭이 사놓고 숨겨놓은 것...
가끔은 내 어릴 적을 떠올리며 그냥 흘려보내고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금요일인 어제 아침이었다. 학교 갈 시간이 지났건만,
날도 더운데 아빈이가 갑자기 청 조끼 타령을 하는 것이다. 세탁기에 빨지 않고 넣어 두었다는 말에도 좌불안석이다. 낌새가 이상하길래,
“정말 조끼가 필요해서 그러는 거야?.” 했더니,
우물쭈물 아니라며 그냥 학교를 갔다. 금요일은 특기적성 수업으로 학교에서 받는 컴퓨터 수업이 있기 때문에 집에 들렸다가 학원에 가면 늦기 때문에 곧장 학원으로 가라고 했었다.
그날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서 세탁기를 늦게 돌려서 널었다. 오후 4시 쯤?
남편의 윗도리 하나와 주머니 없는 내 바지 두 개 외에 아빈이와 아영이 옷이 대부분인 빨래를 널고 있는데 지폐가 우수수 떨어진다.
천 원짜리 3장과 오천 원짜리 1장...
빨래를 다 널고 아무리 관찰해도 지폐가 나 올수 없는 빨래들이었다. 설마...
남편은 조끼나 바지의 주머니 외에 돈을 잘 넣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안다.
내 옷에는 주머니가 없는 바지뿐이었으니 당연히 아니다.
녀석이 왜 조끼를 그렇게 안절부절 찾았을까...하는 의문점이 들자 하늘이 다시 새까매지는 것이다.
사람은 죄를 지으면 어떻게든 죄 값을 치른다더니,
그 옛날 내 엄마 몰래 훔쳤던 25원과 88년 당시 500원 하던 별이 달랑달랑 하는 반지 두 개 훔친 것을 이제서 달게 받는 구나, 하는 한스러움까지...
어찌됐던 자식의 미래를 봐서라도 난 녀석의 나쁜 싹을 애저녁에 싹뚝 잘라내야 했다. 그래도 비싼 돈을 주고 보내는 학원...수업은 다 마치게 해야지... 하며 30여분을 혼자 아빈이 방에서 괴로워했다.
때도 잘 맞춰서 멀쩡하던 하늘이 어두컴컴해 지더니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둥번개까지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늘이 내 마음을 대신해서 저리도 표현하는 구나.’ 속으로 뇌까렸다.
여러분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이 집에 있었다. 전날의 과음으로 남편 역시 몸져 누워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약을 사 나르고 그 비싼 전복죽까지 사서 내밀며 남편의 도리를 다 하려고 했지만... 전 날 분명 나는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몸이 안 좋으니 일찍 들어오라고 부탁을 했었다. 알았다던 남편은 내 염장을 지르는지 새벽 2시가 넘어서 술에 떡이 돼서 들어왔었다. 화낼 힘도 없어서 아침이 되도록 남편에게 별말이 없던 나... 토하는 남편에게 밥도 차려주지 않았다.
심기가 잔뜩 불편해서 있던 마누라가 아들 방에 처박혀 있는 것이 자신 때문인 줄 알고, 알아서 자신이 먹은 설거지까지 깨끗하게 해 놓더니 시키지 않아도 아빈이 올 시간 되면 우산 가지고 나가야겠다는 호들갑까지 떨어댔다.
아빈이가 학원 파하는 시간은 오후 6시 30분.
5시쯤 되니 꾹꾹 참아내던 내 속이 용량 초과 상태가 되어 폭발하기 직전이 되었다.
‘그런 녀석 공부만 가르치면 사람이 되겠어?’
학원으로 전화를 했다. 당장 집으로 달려오라는 말을 했다.
아빈이가 ‘엄마, 왜 그러세요?’ 하지만 난 그냥 오라는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15분 쯤 지나서 아빈이가 들어왔다.
방문을 잠그라고 했다.
“엄마, 무슨 일 있으세요?”
걱정 어린 표정이 되어 아빈이가 물었다.
“엄마에게 숨기는 것 있으면 얘기해봐. 기회를 주는 거야.”
옛날에 내게 엄마가 했던 말을 살짝 응용했다.
“종영이가 떡볶이 사줘서 먹었어요.”
“ -_- 그리고?”
“딱지치기 하지 말라고 했는데 했지만 모두 돌려줬어요.”
“ -_-; 그리고?”
“인형 뽑기 구경했어요.”
“ -_-;; 또?”
녀석은 생각지도 않았던 말들만 늘어놓고 돈에 대한 얘기를 끝내 불지 않았다.
“없는데요...”
“너 청 조끼에서 뭘 찾았니?”
“지우개요. 특이하게 생긴 지우개인데... 엄마가 지우개 많은데 사는 것 싫어하셔서 몰래 샀어요.”
“ -_-;;; 더 할 말 없는 거야? 돈!!!”
“!!! 그거요?”
“그래!”
“저는 그냥...원장 선생님께 사주지 말고 돈으로 달라고 해서 모은 것으로...”
이건 또 무슨 말인지...학원 원장선생님께 그 많은 돈을 무슨 명목으로 받았다는 건지 환장할 지경이었다.
“원장 선생님이 돈을 줬어?”
“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떡볶기 사주시는데 저는 그냥 돈으로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먹지 않고 모았구요... 갖고 싶은 것 사려구...”
“그래서?”
‘그리고’ 와 ‘그래서’ 외에는 모르는 사람처럼 내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천 원 정도 사먹고...조금 남았어요.”
“조금? 네 신분에 그 돈이 조금이야?”
“.....”
“팔천 원이 조금이냐고?”
“팔천 원이요? 무슨 팔천 원이요? 저는 백 원짜리 동전, 천원 조금 넘는 돈을 말하는 건데...”
“? 너 빨래 속에서 나온 돈 팔천 원, 네가 갖고 있던 것 아냐?”
“으아아아앙앙........”
이상하다.
내 주특기가 헛 다리 잡긴가? 녀석이 내 물음에 대답도 않고 닭 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해댔다. 무릎까지 꿇고 앉던 녀석이 철퍼덕 자세까지 바꿔 앉으면서 말이다.
“엄마는....아직도 저를 못 믿으세요? 저를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앙앙앙....”
콧물에 눈물범벅까지...그림 지대로다.
녀석의 반응을 보니 확실하게 모르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녀석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 순간, 그 모습에 내 마음은 안정을 되찾았다.
그럼 그 돈의 출처는...?
어쨌든 난 다시 뻘쭘해진 상태를 정리해야 했다.
“너의 그 말이 사실이길 바란다. 오히려 그러면 엄마는 감사하고... 어쨌든 너는 그동안 엄마를 잠깐씩 실망 시켰잖아. 엄마의 마음에 상처가 있던 거야. 아침에 너의 행동이 솔직하지 못했잖아. 봐봐. 사람은 때론 선의의 거짓말도 하며 살기도 하지만 넌 엄마와 약속했던 것을 그동안도 어기고 있었던 거잖아.”
“훌쩍....훌쩍....”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계속 눈물을 쥐어 짜냈다. 이런 썩을 놈의 급한 성질... 나쁜 싹을 자른 다고 벌인 일이, 혹 마음의 상처로 남아서 이상하게 빠지는 것 아냐...? 아...내 엄마는 도대체 나를 어떻게 키워낸 거야...
“아빈아...”
“훌쩍...네...”
“미안하다.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로... 엄마가 끝까지 아들을 믿었어야 하는데... 그런 돈이 나와도 절대로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말았어. 이제부터 우리 서로 더 조심하자.”
아빈이는 나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남이었으면 분명 의절을 하고도 남았을 일인데,
돈의 출처는 남편의 윗도리였다. 남편의 말이 자신의 윗도리에 얼마인지는 모르진만 지폐를 넣어 두었다고 했다.
“이 사람이! 당신은 빨래 빨 때 주머니도 안 뒤져?”
기회도 찬스라고...남편은 덕분에 내게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래도 할 말은 없었다. 내 잘못이 확실 했으니까.
남편은 아들 덕분에 그 시간 이후에 먹은 설거지를 당당하게 담궈 놓았다.
비벼 먹은 냄비 하나, 짜파게티 끓어 먹은 냄비 하나... -_- 내 남편은 분명 웬수다.
컨디션도 좋지 않은 나였지만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미안해서 어둑한 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줄넘기를 가지고서.
그리고 누가 많이 넘나 시합을 했다.
내가 뛸 때, 울리는 쿵쿵쿵... 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간담이 서늘했을 지도 모른다. 지진이라도 났는지 알고... 혹시 피신할 준비를 하느라고 보따리라도 싸고 있었을 지도....
아빈이가 쌩쌩이(두번 넘기)를 시도하는데 힘겹게 두 번, 성공했다.
땀을 잔뜩 흘린 아이들과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 들어왔다.
아빈이가 잠든 방으로 들어갔다.
내의 깊지 못한 생각으로 아들에게 상처를 줬을까봐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빈이의 싱글침대...이제 녀석이 커서 비대한 나의 몸과 둘이 눕기에는 좀 벅차려고 한다.
손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속으로 ‘미안해’를 연발했다.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렵다던데,
내 부모는 나를 사람 만든(?) 것 보면 지대로 성공리에 자식 농사를 마쳤건만...
난 어째 이렇게 오차를 밥 먹듯이 벌이는지...
나의 수많은 실수 중에 길이길이 남을 한 가지 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