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나가는 아들에게
긴 팔 윗도리를 내 준다
바람이 차니 감기 든다고
젊디 젊은 몸에 초여름 바람쯤 맥을 추겠냐마는
아들은 말없이 입고 간다
매년 여름 장마 때 되면
혹 일하는데 오슬오슬 할까봐 (에미가 그러 하니 )
또 긴 팔 옷을 준다
말없이 입고 가는 아들
오후쯤 되어서 비 그치고 구름 걷혀 불볕 더위가 쏟아지면
집에 있는 난 안절부절이다
\"에구, 긴 옷을 왜 입혔던고 \"에구, 이 더위에 우짤꼬
친구들은 매년 이렇게 오두방정을 떠는 날더러
입으라고 주는 에미나
더울 줄 뻔히 알면서 입고 가는 아들이나 모자의 정이 눈물겹네 하며
놀린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열기가 느껴진다
긴 팔의 아들이 땀흘릴까 또 맘이 편치 않아진다
놔두렴! 저가 더우면 벗겠지 뭐 나도 참!
짝사랑 얘기나 마저 하자
떼리에의 집
모파상 단편 중 하나다
단편 비계덩이 다음으로 오래 기억나는 작품이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을 떼리에의 집이라 이름 붙이자
밥, 국 보다 술과 여자를 더 많이 팔던 그 집을
소설 속 노르망디 풍경과 함께 ..........
작부 다섯을 거느리고 낮 밤을
가래 긁어 올리듯
돈을 긁어모으는 멸치 할매
사십이 넘은 두 작부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세 작부들 그네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양으로 통한다
김 양, 이양, 주 양, 나 양, 안 양
멸치할매는 떼리에집 건강한 마담이고
김양 이양 주 양 등등은
떼리에의 집 대표 미인들 페르낭드니 라파엘 루이스 로오자 로 보면 된다
소설 속에서 그네들은 단지 여자라는 하나의 상징이지
천박하고 볼품 없기는 객주 집 하녀인 나와 다를게 없듯이
이곳 양 양 들도 교육적인 면이나
타고난 천성이나 사생활이나 나보다 나은 건
눈곱만큼도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네들 다섯 모두는 부엌데기 나에게
이상한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행동하는데
그건 저희들이 뭔가 조금은 잘난 것이 있어서 색시 짓이라도 한다는 거다
어찌 보면 틀린 생각도 아니다
타고난 끼며 자식새끼 팽개치고 나온 용기며 넘쳐나는 정열로
많은 남자들을 즐겁고 유쾌하게 돈 쓰고 가게 하는 수완이며..
여자라고 다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때론 그네들의 삶이 부러 울 때가 많았다
최 사장
그를 마음에 두고 반년을 지냈던가
하루는 비도 오고 저녁 손님이라곤 최 사장 패 밖에 없고
안주 장만도 뜸하기에
가게 문 앞에 기대서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심란한 눈길로 바라보는데 방에서 주 양이 부른다
\"이모야, 최 사장님이 니 보고 들오라칸다
사실 그 때 내 심정이 내리는 비를 보며
두고 온 아이들 걱정하기 앞서
건넌방에 있는 최 사장 생각으로 가슴이 미어지던 참이었는데 들어오라니
날 더러 그 입술 빨갛게 칠한 여자들 속으로 들어오라니 ..
그날 따라 손님이 없어 늙은 색시 젊은 색시 그 방으로 집합한 상태인데
그 숲으로 나를 ..
무슨 용기로 내가 거길 들어갔지
멸치 할매는 날 절대 술 방에 기웃거리지 못하게 하는데
(괜히 드나들다 못된 송아지 뿔나면 새끼도 못 키운다면서 )
그날 따라 초저녁 잠에 빠져 있었다 비도 오고 손님도 없으니 .
그는 날 자기 옆에 앉게 했다
그리고 여태 색시들한테 큰소리로 마구 지껄여대던 상소리와
상관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 춥제? 바깥이 ..여 앉아서 안주나 먹고
쉬어라 하며 손을 끌어 앉히고는
앞에 앉아 제 손님과 속삭이는 주 양을 향해
\"문디 가스나야! \" 니 나가서 야 좋아하는 안주 하나 장만해라 ! 퍼뜩!
아니!
주 양이라면 떼리에의 집에서
젤 인기 있고 그 인기를 믿고
성질 부려댈 땐 멸치할매도 나도 짤짤매는데 말이야
그런 애한테 안주를 해오라니
의외로 시원하게 일어선 주 양이 안주 장만하러 부엌으로 나가고
난 그날 최 사장의 넘치는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음은 ...
사랑이라고 믿었었다
날 달리 본거야
저들 색시 보담 내가 깨끗하고 정직하고 온순하며 여자 답고 또, 또 ,,
아이 버리고 온 저것들 보다
아이를 먹여 살리는 나의 모습에 감동했을 거야 그래서 그래서 ..
나 혼자 그의 마음을 다 읽었으니 홀로 그를 향해 걸어가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가 술에 취해 문을 나서면 먼발치서 그를 따라 갔던 적도 있었다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까
아님 색시 중 누가 꼬아 바쳤을까 내 절절한 마음을 최 사장이 알아버린 것이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일행들 몰래 문을 나서는 그를 따라 나도 나섰다
한참을 소리 없이 뒤를 따르는데
비틀거리며 걷던 그가 홱 돌아서며
\"들어가거라 \"퍼뜩, 안 들어가나 하는 게 아닌가
무안하고 챙피하고 비참한 맘에 오도가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서 있는 네게
또 한마디한다 \"내 따라 오면 안 된다 오지 마라 ! 알았제!
여우같은 주양이 고 빨간 주둥이로 이렇게 자발자발 타일러주더라
최 사장은 니가 불쌍하고 가여워 보여서 잘 대해줬다더라
니를 여자로 보지도 않는다 카더라
맥지 니 혼자 좋아 했드나?
그 날부터 내 눈에는 예전 흘리던 눈물과는 성질이 다른 눈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아이들 땜에 흘린 눈물
철면피 남편과 그 여자 땜에 흘리던 눈물이 아닌
내 사랑이 가여워서 울고
그 남자에게 여자로 비치지도 않았다는 자괴감에 빠져 울고
그 이후 내게 냉담해지던 그의 눈길에 절망해서 울고
다섯 색시들보다 내가 좀
낫다는 자신감이 무너져 울고 울고울고 울었다
남 몰래 부엌에서 울고
술상 치우다 남은 술 쫄쫄 따라 마시며 (색시들이 자주 그러는 걸 봤음 )
울고 ...
홀로 된 젊은 내가 바깥 세상 남자에게 상처받은 첫 번째 사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