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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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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아니면 악연? 1


BY 일상 속에서 2006-06-05

 

가만히 보는 물은 잔잔합니다. 그 잔잔함을 건들여보세요. 여러가지의 반응을 보이곤 하죠.

이 물보라는 어떤 가요? 예술이죠...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희안타.

지구에 있는 200여 나라에는 60억의 인구가 산다고 한다.

그 많고 많은 나라 중, 대한민국 한국에서도 남한에 태어난 나.

5천만 인구들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를 채팅 사이트에서 알게 되어 지금껏 깊은 인연을 맺은 것도 그렇고, 아컴에서 글을 올리며 달린 댓글 때문에 마음이 맞아 친구가 된 인연도, 그렇게 어느 순간 생판 남과의 연줄이 닿기도 했다. 내겐 이래서 저래서 알게 된 인연들이 참으로 많다.


주변의 많은 사람 중에 유독 나와 잘 맞는 인연들이 있다. 겉으로 잘 어울리며 노는 사람이야 부지기수지만, 정작 마음을 나누며 치부처럼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얘기를 쏟아놓고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런 특별한 인연...


정작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놓지 못하고 사설만 길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하는 사람이 내게 딱 두 사람이 있다.

내 친 혈육도 아니요, 뚝뚝 떨어지는 내 성격에 그 두 사람에게만 살갑게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한 결 같이 나를 챙기려 든다.

언젠가 글에 썼던 ‘딸기 셋’과 건달과 사촌 동생 ‘필성’, 이 둘이 그 장본인 들이다.


이중, 필성이란 사촌 동생은 내게 있어서 아주 고마운 녀석이면서도 골치 아픈 녀석이다. 이 녀석이 나이 31살에 두 아이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에 아이까지, 그리고 나만치나 무뚝뚝한 제 아내와 함께 산지가 벌써 8년째인데,

6월 4일인 어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그 동안 이 결혼식을 가지고 몇 년을 갈피를 잡지 못하던 녀석.

몇 해 전,

하루 일과 중, 중요한 한 부분인양 변함없이 내게 전화를 해설랑,


“누나, 결혼식 할까봐.” 한다.

“왜? 올케가 뭐라고 그러니?”

“그게 뭐라고 하기나 해? 내가 걸려서 그렇지.”

“결혼식 제법 돈 많이 들어간다. 면사포 못 입은 것, 여자들 마음속에 상처로 남으니까 하긴 해야지. 하지만 살다가 하는 결혼식이라도 신경 쓸 것 많아.”

“그건 축의금 가지고 보충하면 되잖아.”

“생각 잘해. 하지만 누나 생각에는 그냥 너희 둘이 사진관에서 웨딩드레스 입고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그렇게 결혼을 주제로 몇 달 동안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하고... 지겨울 정도로 되풀이 했었다.


녀석의 삶이 일반적인 보통의 삶이었다면, 커다란 굴곡이 없었더라다면 녀석이나 나나 굳이 그런 실갱이를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모의 아들 필성이,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녀석은 갓난쟁이 때부터 외할머니의 손에서 컸다. 이모와 이모부가 이혼을 하고 두 사람 모두 각자 다른 사람들과 재혼을 하고...

이 물보라는 어떤가요? 비슷한 자극에도 모양은 제각각 인듯합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녀석은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막 살았고 그러다가 이모와 앙숙이 되었고 이모부와도 만나면 아웅다웅 조용히 넘어가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뿐만 아니라 녀석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다.

한동안 외할머니의 손에서 필성이와 함께 자랐던 나와 내 친 혈육인 남동생 둘과는 어린 시절 피터지게 싸워대며 살았던 정이 있어선지 우리와는 그런대로 연을 잇고 살아간다.


또, 녀석은 나의 부모님 (녀석에겐 작은 이모와 이모부)께 만큼은 예의를 깍듯하게 갖춘다.

나머지 사람, 그러니까 큰 이모, 이모부부터 외삼촌과 외숙모, 그들의 자녀인 사촌들과는 몸싸움도 일삼고 쌍소리는 기본, 그렇게 막무가내로 대했던 덕분에 주변에선 녀석을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런 상태...


녀석은 부모가 있어도 고아와 같이 살았고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친 혈육도 없다. 아버지가 다른, 동생이 하나 있긴 하지만 이모와도 앙숙인데 그 동생과 잘 지내긴 만무하다.


결혼 같은 큰일은 집안 어른들이 나서서 해줘도 본인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여간 큰 것이 아니다.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로운 녀석...결혼식을 해본 경험자로써 그 모든 고충을 잘 알기에 결혼식을 두고 고민하는 녀석에서 그래서 “그래 결혼식은 해야지.” 하고 말해주지 못하는 나는 오죽 답답했을까?


그런 녀석이 한 달 전쯤, 결혼 날짜를 잡았고 예식장도 예약을 했다고 통보를 해왔다. 신혼여행은 가지 않기로 하고, 뱃속에 있는 3째 태어나기 전에 지 마누라 머리에 면사포를 씌어주고 싶단다. 올케를 생각해선지, 아니면 제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만천하에 고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지, 어찌됐건 녀석은 끝내 마음속에 가시처럼 걸려있던 그 일을 마무리 짓고자 했다.


난, ‘그래, 잘 했다.’ 하며 일을 잘 진행 시키라고 격려를 해줬다.

그리고 결혼식이 일주일 쯤 남았을 때...

나에게 불미스런(도둑이야기) 일이 터져 버렸다.

만사가 귀찮아서 집 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겨우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있을 때 녀석에게 전화가 또 왔다.


녀석은 다짜고짜,

“누나, 기분이 어때?” 하고 안부를 묻는다.

“여적 드럽지.”

“나도 드러워. 씨팔~ 어제 그 아버지란 인간 내 손에 무기 있었으면 죽였을 거야.”

“......”


주변에 사람만 없었다면 평상시처럼 욕이나 된통 해줬을 텐데, 다른 사람들의 눈도 있고 - 만약 그곳에서 습관처럼 욕이 나왔다면 다들 ‘뜨악’ 했을 것이다. - 끓어오르는 분을 삭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누나 전화통화 할 수 없는 상황이야. 나중에 문자 보낼게. 그리고 네 나이 생각해서 할 말, 못 할 말 가려서 얘기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어.”

“정말 미치겠다고~ 내가 처자식만 아니었다면.....(중간생략)....”

“끊으라고 했지!”


녀석의 말을 중간에 매몰차게 끊어 버렸다. 난 아무리 못된 부모라도 자식 된 도리를 운운하며 망말 만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는 것 밖에 안 된다고 누차 얘기 해준 터였다.


결혼을 앞두고 제 엄마와 화해를 하고 싶어서 딸의 손을 잡고 찾아 갔더니 손녀딸이 보는 앞에서 아들의 멱살을 잡으며 이모는,


“이 새끼야. 너, 나 죽이러 왔냐? 난 너를 자식으로 생각한 적 없으니까 다신 찾아오지 마!!!” 하고 발악을 하는 바람에 제 딸의 귀를 막고 제 엄마와 싸웠다는 말을 듣고도 나 역시 이모에게 크게 실망했지만 ‘그래도 네 엄마야.’ 하고 말았었다.


왜 그렇게 그 녀석의 인생은 모두 뒤엉켜버린 실타래 같은지, 안타까웠지만 내 상처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에 녀석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있을 수가 없어서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 일이 있은 몇 시간 후, 올케(필성이 처)에게 문자가 왔다.


(형님, 매일 보냈어요.)


고정적이지 않은 제 남편의 수입 때문에 올케 역시 나만치나 알뜰함을 그림자처럼 달고 산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못하는 올케의 성격에 문자나 메일을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있어서 작은 것은 아니리라...


복잡한 심정이지만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 내가 도둑맞은 것, 그래서 걱정 된다는 말은 딱 두 줄. 나머지는 모두 올케의 하소연이었다.

결혼이고 뭐고 다 싫단다. 시아버지도 싫고 남편도 싫고, 그래서 도망가고 싶단다. 간밤에는 난리도 아니었단다.


난 메일을 보자마자 장문의 답장을 써줬다.

삶이란 그런 거라고. 그래도 전에 비하면 녀석이 얼마나 사람이 됐냐고.

좋은 일을 앞에 두고 마(魔)가 끼는 법이니 슬기롭게 잘 넘기라고. 그렇게 며칠 견디다보면 결혼식장 들어가는 순간, 걱정했던 모든 일은 해결되고 말거라고...


답장을 보내고 올케가 썼던 메일 문구 중, 녀석이 새벽 3시까지 술 먹고 들어와서 자는 애들 깨우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말이며 육탄전을 벌였다는 말이 떠올라서 필성이에게 전화를 했다. (난 통화가 되자마자 ‘전화해.’ 하고 끊어버리니 녀석이 전화했다는 표현이 맞다.)


난 녹음기마냥 그동안 했던 말들을 되짚어가며 잔소리를 해댔다. 올케에게 손찌검을 했는지 알았는데 그건 아니란다.


녀석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제 아빠를 헐뜯었다. 아주 악만 남은 녀석처럼.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모부(법적으론 남이지만 녀석의 아버지기에 내겐 아직도 이모부시다.)는 청첩장을 한 장도 돌리지 않았다니 녀석이 난리가 무리도 아니다.


녀석의 피 끊는 분을 들으며, 그 못지않게 나 역시 핏발을 세웠다.


“네 아버지랑 엄마가 못마땅한 녀석이 왜 그들의 거울처럼, 아니 한술 더 떠서 지랄이야?! 네 아버지의 입어 더럽다며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어떻고~!”


잔소리를 하며 난 생각했다.


‘이 놈과 난 뭐야? 그냥 대충 얘기해주고 들어주기만 하고 되지 왜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거냐고... 이놈의 오지랖... 이걸 인연이라고 해야 해, 악연이라 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