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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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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하나.


BY 진주담치 2006-06-04

혜진엄니의 기억속 서랍장이란 글을 읽고 생각해 봤다.

내 기억속 서랍장에  들어 있는 내용들을.

그곳엔 환희에 젖었던 기억이나 찬란했던 기억보단 상처투성이, 아님 피투성이의

기억들만 웅크리고 있었다.

 

인간은 태양이 서서히 지고 있는 황혼의 뒤만 돌아보며 간댄다.

앞에는 구름가득, 혹은 안개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데.

앞을 잘보지 않으면 넘어져 다칠지 아님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미련스럽게 뒤만 돌아보며 갈까?

 

 

내 뒤에 아물지 않은채 웅크리고 있는 고름잡혀 있는 기억을 하나 꺼낸다.

 

 

고등학교시절. 난 시골에서 유학온  자취생이었다.

시골수재.   그러나 형제많은 가난한 집 다섯째.

누구 하나 나에게 신경쓰는 사람없었지.  부모는 무식하고 먹고 살기 바빴으므로.

어릴때부터 투쟁하지 않으면 옷하나, 참고서 하나 제대로 얻을수 없었다.

 

자식들 모두 객지로 차례차례 보낸 부모의 경제생활이 어떠했을까는 짐작이 갈거다.

 

연소득으로 쳐서  상위 몇퍼센트에 든다는 우리도 지금  아이들 뒷감당에 가랭이가 찢어질 지경인데, 그때는  오죽했을까?(이제사 이해된다.)

 

연탄불 갈아가며, 밥해먹으며, 그 외로움과 설움을 이기려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왜 그리도 연탄불은 잘 꺼졌는지. 학교에서 돌아와 꺼진 연탄불 피우느라 고생한것

생각하니 지금도,  휴우.

난 그때의 외로움이 한(恨)이 되어 우리딸 절대 떼어놓지 않았다.

1시간씩 통학하고 내가 데려다 주는 한이 있어도 그냥 끼고 살았지.대신 아이들 아빠와

가끔씩 떨어져 살았지.

공부하기도 힘든데 외롭기까지 하면 요즘 아이들은 더 견디지 못할것 같아서.

 

나,  고 3때.  반장선거.  누군가 나를 추천했다. 다른 아이2명과.    손들기를 했다.

근데 내가 반장으로 당선된  것이다. 처음엔.

당황한 담임 선생님.  아니 아니, 잘못했다고, 눈 감고 해야 하는데 그냥 했다고.

다시 눈감고 손들기 했다.  물론 다른 아이가 당선되었지.

이쁘고 집안 유복하고.   공부는 중간 보다 약간 잘하는.  아이들도 으아해했지. 매우.

 

왜 모르겠는가? 어린 나이에도 .

내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걸.

부모가 여유있어 찾아올것도 아니고,  내 성격 역시 고집센 시골 유학생에다,

이쁘지도 않지,  그렇다고 성격좋고 활달한것도 아니지.

자격지심에   주눅 약간 든 그런 아이.(속으로만)    

그리고 우리반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 놓은 특수반이었거든.  8개 학급중에서  오직

두반   특수반.

난 상처입은 영혼이었다.  그래서 모든걸 닫아 버렸다.  달리 내가 어찌해 볼수도 없었다.

그냥 참고 견딜수밖에.   

 

 

고3 일년을 말없이 입 악 다물고 선생님과는 될수있는한 눈 마주치지 않으려했다.

아니, 내가 쳐다보지 않았다고 해야 옳다.    그렇게 일년을 보냈다.

 

 

그런데 대학 원서를 썼을때,  그땐 학교에서 직접 대학으로 원서를 보낸게 아니고

학생편에 밀봉해서 원서와 생활기록부를  주었다.  그러면 우리가 직접 갖다 냈다.

나 . 역시.   그런데 호기심이 나더라. 생활기록부라는 것에.  밀봉도 안했더라.

그래서  살짝 꺼내봤더니,  고3때  \"성적은 우수하나 고집이 아주 셈.\" 이라고 담임 의견이

적혀 있더라.         고 3때 성적이 전교  등수 안에 들었더군.

 

대학에 합격해 면접볼때, 교수님 왈,   \" 공부는 잘했군.  근데 고집이 센가부지?\"

하더라.    

난 졸업후 동창 모임에도 안갔다.    물론 은사에게 편지쓰기. 이런것도 안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우린 누구나 의도적,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줄수도 있다. 

그 교사도 자기의 행동이 이렇게 30년이 지나서도     어느 누구의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금쯤 60대 후반이나 70대쯤 되셨겠지.

내인생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꼬일때,   내가 남에게 잘 인정받지 못햇을땐    항상 그때 생각이난다    이 나이에 내가 볼때도   젊고 표정 맑은 이들을 보면 사랑스럽고 정이 더 가는데  그때의 난  남에게( 선생님이나 어른에게) 호감을 주는  그런 타잎이 아니었나부다 라고.

그러나  머리로는 이해는 되는데 가슴에 난  상처는 영 아물지 않더라.

 

나  이젠 기도한다.  늘.   마음속으로.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가 있다면 그들이 나를 잊고 살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를 용서해 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