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고무주머니를 등뒤에 깔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근육 풀어주는 약이 독한지 계속 졸립다.
요즈음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그녀석을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힘들다는 핑계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난 그렇게 잠시 내 가슴에 묻은 그녀석을 잊었었는지도 모른다.
열한해의 기다림 끝에 선택한 인공수정.....
힘든 5번의 시도 끝에 나에게 찾아왔던 녀석......
내 몸속에서 여덟달을 머물다 어이없이 떠나버린 녀석.....
오늘 문득 그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아마도 내가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했었나보다.
여전히 정확하지 않은 흐릿한 모습으로 나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녀석.....
난 녀석을 잊은게 아니라 그저 내 가슴속에 묻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시간은 사람을 망각의 늪으로 인도하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을 그렇게 보내고 한때는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다 그 죽음을 생각 밖으로 끌어내보기도 했었다.
나를 죽였다는 생각과 함께 희미해져갔던 기억의 시간들......
그러나 다시 눈을 뜬 내게 중환자실의 흐릿한 불빛은 너무나도
낯설고 서글프다는 생각을 들게했었는데......
난 세살의 나이를 더 먹은 지금도 이렇게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녀석을 가슴을 묻고.......
나 혼자가 되어.......
선잠에서 문득 깬 오늘 너무도 가슴이 아려온다.
녀석이 그리워서.......
혼자라는게 서글퍼서.......
새삼 지나온 내 아팠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난 녀석의 육아일기를 펼쳐들었다.
내가 녀석을 기억할 수 있는 하나 남은 흔적들을
한장씩 되돌아 보았다.
그곳에 녀석의 모든것이 있다.
녀석의 심장소리가 그려진 그래프가...
녀석의 흐릿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녀석의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든것이 그곳에 있다.
그리고 내가 녀석에게 보냈던 수많은 사연들이....
이렇게 난 오늘 또 다시 녀석을 생각하며 마르지도 않는
눈물을 흘려본다.
녀석의 베넷저고리를 가슴에 품어본다.
후~욱
가슴이 미어지는 이 슬픔.....
오늘 나는 다시 잠들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