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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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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이와 \'모모\'의 차이점?


BY 일상 속에서 2006-05-31

 

며칠 잠잠했습니다. 다들 무고하시죠?

 

제 나이도 모르는 아이가 있다.

너무나 마른 몸에 제 몸보다 훨씬 큰 누더기 겉옷은 팔이 길어서 몇 번을 접어 입었다. 입고 있는 치마역시 잔뜩 헤진 상태. 보통 맨발로 다니지만 겨울처럼 추운 계절에는 잔뜩 헤진 커다란 신발을 신을 때도 있다.


8살에서 어쩜 12살로도 보이는 여자아이는 언제부턴가 버려진, 폐허와 같은 극장에서 혼자 살았다. 그 아이가 걱정된 마을의 어른들이 아이를 찾아왔다.


“몇 살이니?” 하고 묻는 어른의 물음에 태어나서 한 번도 빗은 적 없고, 가위질도 한 적 없는 고수머리가 마구 뒤엉킨 머리의 소녀는,


“백 살이요.” 하고 대답했다. 아이의 대답에 귀를 의심한 어른은 또다시 나이를 물었다.


“백두 살이요.”

“....”


아이는 제 나이도 몰랐다. 어디서 왔냐는 말에 방향 한쪽을 가리킬 뿐.

이름이 뭐냐니, “모모...” 한다.

누가 지어 주었냐는 질문에 자신이 지었단다.

혼자 지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시설에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물음에 아이는 당당하게 자신은 자신을 잘 돌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시설은 감옥과 같이 창살이 쳐진 곳에 갇혀서 매도 맞는다며 그곳에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절한 눈동자로 어른들을 바라보았다.


놀라울 정도의 예쁜 동그란 눈을 가진 아이는 검은 머리와 같이 눈동자도 검은 색이다.


중산층도 못되는 고달픈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인정만큼은 풍부한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챙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모모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모모를 위해서 마을 사람들과 동네 아이들은 일부러 먹을 것을 남겨서 모모에게 갖다 줬다.


모모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남의 말에 귀 기우려 줄 수 있다는 것.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 쉬운 얘기 같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닌 일이다.


해결을 못하는 고민이 있는 마을 어른들은 모모를 찾는 일이 많았다. 찾아왔던 사람들은 모두 답을 찾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누군가 힘들어 하면 사람들의 입에선 의례 “모모에게 가봐.” 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모모... 

우연찮게 드라마를 통해서 접하게 된 [모모]란 책을 읽고 있다. 아직 몇 장 읽지 못했지만 난 벌써 그 아이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모모를 설명한 내용을 보면 내 딸 아영이와 비슷한 또래가 아닐까 싶다.

책 속에 주인공이니 보통의 사람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라야겠지만, 우리 집에 주인공 중에 한명인 딸을 지켜볼작시면...


워낙 과일을 좋아하는 아영이.

요즘 과일 가격은 쉽사리 접하기도 어려울 정도니 매일 대놓고 사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제, 아끼다 똥 된 일들이 화가 나서(마음의 상처는 분명 좀 더 오래 갈듯 싶다.) 미친 척하고 슈퍼를 찾았다. 통조림 과일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거리들까지 들고 오지 못해서 배달까지 시켜야 할 정도로 바리바리 식료품을 사왔다.


3만원이 훌쩍 넘어 버린 영수증의 금액을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해보니 어떤 과일인지 4천 8백원짜리가 있었다.

그렇게 비싼 것을 산 것 같지 않은데...5개 들이 키위 1팩의 가격을 난 분명 2천원으로 보고 샀는데 하며 다시 목록과 금액을 비교해 보았다.


헉... 키위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세일해서 2천원하는 그린 키위만 사줬던 나는 골드 키위의 가격도 같은 줄 알고 짚어 왔건만 그것이 그리 비쌀 줄이다.


어쨌든 제정신이 아닌 생태에서 샀지만 물루고 싶진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친 식구들 앞에 그 비싼 골드 키위를 두 동강 내서 티 수픈과 함께 갖고 들어갔다.


남편은 안 먹겠단다. 과일을 먹으면 배가 아프다나? 늦은 저녁에도 사과를 몇 개씩 먹어도 끄떡없던 사람이... 그 속을 누가 모를까.

아이들이 맛있다며 먹었다. 그린 키위보다 대따 맛있다며 껍질이 뚫어져라 긁어 먹었다. 키위 먹는 법이 아직 서툰 아영이를 대신해서 내가 떠 먹여 주었다.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내 입에서도 군침이 돌았다. 다른 때는 잘도 “엄마, 드세요.” 하던 것들이 그 말도 잊을 정도로 정신을 빼 놓고 먹었다.

그 모습이 왜 그렇게 안쓰럽고 미안하던지,


“아영아, 맛있어?” 하고 물었다.

“응, 엄청 맛있어. 엄마, 녹색보다 더 맛있어.”

“무슨 맛이야?”

“엄마, 귤 맛이나. 나 다음에도 이것 또 사줄 거지?”

“알았어. 다음에...”


아빈이는 제 할 일이 있다면 제 몫을 다 먹고 나간 뒤였다. 아영이와 주고받는 얘기를 곁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이 놈의 계집애! 엄마 좀 드세요, 하고 먹어야지. 너만 먹어?!”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아차 싶었던지 아영이가 그때서야,

“엄마도 드세요.” 한다.

“싫어. 엄마 아까 밥 많이 먹었더니 배불러.”

남편과 같은 심정으로 나 역시 속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봐봐, 엄마 안 드신다잖아.”

아영이가 제 아빠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여튼, 새끼들이 저만 알고... 그렇게 키워서 뭐하냐? 당신도 좀 먹어.”

툴툴 거리며 남편이 말했다.

“됐어. 그러는 자기는 왜 안 먹어? 잘 먹고 있는 애들한테 뭐라고 하지마. 혼자서 앉은 자리에서 10개씩은 먹을 애들이구만 그래도 미친척하고 산 것이 5개밖에 안 돼.”

내 말에 남편은 더 이상 대꾸가 없었다.


다음 날, 여전히 마음이 심란했다. 심란한 정도가 아니라 미치기 직전이 되어 있었다. 없어진 나의 것들...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됐다. 그마저도 귀찮았다. 밥 사준다고 나오라는 전화해도 ‘다음에...’ 하며 사양했다.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다. 이 번 기회에 다이어트 제대로 하는구나했다. 아영이가 학교에서 학원까지 들렸다가 오후 3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안도 치우지 않고 어수선한 방안을 보니 마음이 더욱 심란했다. 귀찮아도 대충대충 정리를 하고 걸레질을 했다. 움직였더니 좀 시장기가 돌았다.

며칠 전, 3째 형님이 가래떡과 쌀을 튀긴 뻥튀기를 한 봉지 갖고 왔던 것이 생각났다. 떡 튀긴 것은 아이들이 모두 집어 먹고 쌀 뻥튀기만 남아 있었다.


한주먹씩 집어 먹는 것이 왜 그렇게 귀찮던지... 그래서 어릴 적 먹던 것처럼 뻥튀기 속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혀를 낼름거리며 먹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아영이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한다는 말,


“엄마, 개 같어.” 한다.

“켁!!! 케엑~~~~”


밥 튀가 목으로 넘어가다 걸려 버렸다. 살다살다 이제 딸한테 ‘개’ 같다는 소리까지 듣고 사는 만만한 엄마가 되어 버린 순간....


생각지도 못한 그 한마디에 놀라서 사래까지 걸린 나는 물까지 마셔서 겨우 안정(?)을 찾고 배꼽이 빠져라 웃어 대고 말았다.


“야이~ 기집애야. 이렇게 먹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데. 너도 한번 먹어봐.”

웃음을 겨우 멈추고 아영이에게 말했다.


말 잘 듣는(?) 딸은 엄마의 말대로 고개를 처박고(?) 혀를 낼름 거렸다.


“아영아.”

“음,,,냠냠냠....”

“너, 개 같어.”

“엄~마~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먹으라고 했잖아.”

“그래. 그랬어. 그런데 정말 네 말처럼 그렇게 먹으니까 개 같네. 그래도 그렇게 먹으니까 맛있지?”

“응.”


엄마와 딸은 함께 뻥튀기를 사이에 두고 고개를 박고 혀를 낼름거리며 누가 더 잘 먹나 내기라도 하듯 먹어댔다.


그래... 내 딸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거야.

아니... 내 아들도...

그리고 내 남편도...


서로 충돌도 있고 대립도 벌이며 살아가지만 분명 모모가 갖고 있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대단한 능력인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처럼, 우리 가족은 서로를 향한 끈끈한 사랑과 정이 있기에 남들은 공감하지 못할 일들 앞에서도 배꼽이 빠져라 웃을 수도 있는 걸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