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리려고 하는데 \'작가명\'이라는 란이있어
혼자 피식 웃어보았다.
그래,나도 한때는 문학소녀였지..
서정윤님의 홀로서기가 가슴이 저렸고
도종환님의 접시꽃 당신을 너무가슴이 먹먹해서
많은 밤을 잠 못 이루었던 나도 그런 소녀였던 때가
있었지...
각설하고..
우린 너무 사랑 했다.
일년을 꼬박 연애를 했다..
365일을 거의 빼 놓지않고 그사람은 차를 회사 정문에
차를 주차하고 내가 퇴근하길 기다렸으니...
회사 사람들이 이사람 차번호를 다외울 정도였으니
7025 ..나도 아직 생각난다.
그렇게 하루라도 안보면 못살것 같이 열렬히 사랑에
올인 한적이 내게도 있었다.
일년동안 난 친구들도 거의 만날수 없었다.
그사람은 하루라도 날 못보면 무지 속상해했다.
원없이 사랑에 미쳤었다.그래서 난 일생에 가슴이
뜨겁도록 사랑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조금은 안됐다.
(돌 맞을래나......죄송)
나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었지만,난 도도했고 콧대도
높았다.그 누구도 쉽게 만나 주지도 눈길도 안줬다.
난 내가 공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긴다.
결국 노가다(?)하는 신랑을 만나지 않았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사람이 난 대단해 보이고 좋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사람을 성질있게 생겼다고 한다.
내눈엔 이사람처럼 인자하게 생긴 사람이 없었다.
(콩꺼풀이 쌍으로 덮였던게야...)
우린 문제 될게 없었다.돈도, 번듯한 직장도, 근사한
집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근데 그게 살면서 자꾸 필요해져갔다.ㅜㅜ.
남편은 연애할때 늘 나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
고 했었다..지금도 우리\' 이쁜이\'라고 불러서 화가
났다가도 기냥 풀어진다.
난 이사람이 너무 좋아서 내가 먼저 팔짱을 끼었다.
사랑은 그렇게 애써 감추려고 해도 그렇게 나도모르게
표현이 되어졌다..@ @
연애하면서 몇번 다툰적이 있었지만 별로 문제 될게
없었다..그가 늘 화해를 신청해왔으니까...
화 내는것도 너무 예쁘다고 해서 화를 낼수가 없었다.
콩꺼풀이 단단히 씌었었다.^ ^*
우리부모님은 무뚝뚝하셔서 우리들에게 사랑표현
같은건 별로 안하셔서 난 표현에 많이 서툴렀다.
그러나 이사람은 사랑한다는 말도 너무 자주 해주었다.
참 다정하고 뭐든 내가 우선이었다.
근데 지금은 남이 우선이다.ㅜ ㅜ*
시댁에 첨 인사간날 시부모님은 버선발로 사립문까지
나오셔서 날 맞아주셨다.
너무 예뻐 해주시고 잘 해주셨다.
울 신랑 밥에다 생선 살도 발라주고 나름대로 이쁜(?)
아가씨도 데리고온 아들을 너무 대견해 하셨다.
여하튼 아들을 너무 끔찍히도 사랑하시는게 눈에
보였다.그런 부모를 가진 그사람이 부러웠다.
우리부모님은 11명의 자녀를 두셨다.
난 열번째다. 4남 7녀..카아~많기도하다.
우리 친정 형제가 11남매란 소리를 들어시고
울 시아버님께서 날 너무 불쌍해 하셨다.
난 그렇게 궁핍하게 자란 기억은 없는데...
하긴 옛날엔 먹고 사는게 울 부모님의 최고 화두가
아니셨을까 생각해본다.
나를 보면서 그많은 식구들 틈에서 제대로 얻어 먹기나
했냐면서 무조건 많이 먹어라신다.
그후 결혼 하고 나서도 눈만 마주 치면 나더러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날 사랑해주시고 우리 며느리들을 이뻐 하시던
아버님은 2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님 거기서도 잘계시죠?우릴 지켜보고 계신거죠?
나머진 담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