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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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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0일 토요일 날씨 맑음. 제목; 김밥


BY 일상 속에서 2006-05-20

 

곧 청포도도 탐스럽게 열매를 살찌우고 우리들 곁으로 오겠죠? 좋은 주말들 되시길 바래요.

 

 

 

어제 시장에서 작은 애와 일 학년때 한 반이었던 엄마를 만났다.

나와 인연이 깊은 한 엄마와 또 다른 친분이 있는 그 엄마는 사교성이 너무 좋아서 아무나 보고 ‘언니~’하고 잘도 부른다.


나와 1살 터울 지는데 꼭 언니라고 부르니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많이 익숙해진 상태다. 나의 모난 성격은 사교성 강한 사람도 적대감을 갖게 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래서 난 모순 덩어리란 거다.


한없이 자상할 것 같다가도 삐딱할 때 세상만사가 뒤틀려 보니...


아무튼 그 지환엄마는 나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언니, 내일 아침에 뭐해?”

지환엄마가 친근감 있게 묻는 말에 나는...


“글세...약속은 없어. 왜?”

“김밥 먹으러 와. 내일 작은 딸 유치원에서 아빠들이랑 나들이 가는 활동수업이 있거든. 그래서 김밥을 싸려고.”

“몇 시까지 갈까?”

“10시까지 와. 나도 집안을 치워야 하니까.”


어쨌든 가겠다는 말을 했다. 5번 나오라는 말에 3번이상은 빼는 나다보니 미안한 마음이 크다.


저녁에 이상하게 목구멍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감기 증상인가보다... 생각했다.

에취... 여지없이 재채기가 나왔다. 밤에 잠이 들었는데...어라? 목의 통증이 심상치가 않다. 가래를 뱉어내니 샛노랗다.


5~6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며칠 전에 감기 걸린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댔는데... 내가 개만도 못한 인간이 되고 말았다. 에휴...


새벽녘에 남편을 깨워 이른 아침을 차려줬다.


“병원에 댕겨와.”


밥숟가락 들은 남편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웬수니 뭐니 해도 남편밖에 없구나. 아픈 마누라 걱정해서 병원 다녀오라고 말도 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다가 따라주었다.


“괜찮아. 감기 갖고 무슨 병원을 가? 이겨낼 수 있어.”


목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행복한 얼굴이 되어서 남편에게 말했다.


“누가 당신 걱정되서 그러냐? 아이들한테 옮길까봐 그러지.”

“...!!!... ” <-그럼 그렇지... 실망하는 것을 굳이 표현하지 않고 싶다.


나의 눈은 여지없이 가자미눈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당신이 애야? 국물 좀 흘리지 말고 먹어. 추잡스럽게 매일 뚝뚝뚝뚝... 상이 장난이 아니야.”


하고 톡 쏘아 붙였다.


남편이 출근을 하고 두 번째 아침을 차려서 아이들을 먹였다. 남편 말대로 멀쩡한 아이들이 개만도 못한 나 때문에 감기에 옮을까봐 반찬에 젓가락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어쨌든 남편의 말대로 병원에 갔다. 아이들이 다니는 소아과 병원으로.


“감기로 병원 다니는 내가 아니건만, 애들 옮길까봐 어쩔 수 없이 병원 왔어요.”


의사선생님께 진찰을 마치고 나와서 간호사에게 말했다.

벌써 8년 넘게 다닌 병원이다 보니 간호사와의 친분이 두텁다. 잠깐씩 서로에게 속엣말도 하며 지낸다.


“나도 애 시험기간이면 감기에 걸려서 아이 옮기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되는데...”


간호사가 공감한다며 맞장구 쳐주었다.


“뭐야, 엄마는 사람도 아닌가봐. 자기가 아파서 오는 게 아니고 아이들 옮길까봐 병원을 다녀야 하니...”

“엄마는 사람이 아니야, 그냥 엄마지...”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정말 엄마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엄마다.

10시까지 가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자전거의 페달을 부리나케 밟아 달렸다.


시간 맞춰 지환네 당도하니,

상위에 썰지 않은 김밥이 놓여있었다. 지환엄마가 떡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떡집에 일부러 들려서 예쁘게 생긴 떡을 두 팩을 샀는데 그것을 상위에 올려놓았다.


“나만 온 거야? 뭐 도와줄까?”


급하게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는 지환이 엄마에게 말했다.


“영아 언니는 아직 집을 덜 치웠대. 다른 사람은 안 불렀어. 집도 안치우고 해서...도와줄 것 없으니까 언니 그냥 앉아.” 피곤한 모습으로 지환 엄마가 말했다.


집안을 안치우고도 불러줬다니 내가 편한 상대인가보다.

싱크대에 서서 움직이는 지환엄마에게 하던 일 마저 하라고 하고 내가 김밥을 썰었다. 썰면서 꽁다리를 먹으니 맛이 괜찮다.


“야, 너 김밥 장사해도 되겠다. 맛있네. 아침 먹고 와서 별 생각 없었는데 정말 맛있다.”

빈 말이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괜찮다는데 극구 김치와 과일까지 내어 놓고 술 좋아하는 내게 복분자까지 따라 준다.


1학년에 이어 2학년까지 반대표직을 맡아서 하는 것이 대견하다 싶다. 살림도 넉넉지 않은데 티나지 않게, 밉지 않게 학교일에, 아이들 일에 언제나 열성적이다.


머지않아서 영아 엄마가 왔다. 먹다가 지친 우리들은 거실 바닥에 팔을 베고 누워서 살아가면서 속상한 얘기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1시간만 앉아 있기로 마음먹고 갔는데 2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우리 신랑 올해 일을 못해서 돈 천만원 까먹었잖아. 속상해.”


지환엄마가 말했다.


“아들 치과에서 돈 꽤 까먹었지, 남편 병원 다니면서 까먹었지... 돈 백만원 그냥 나갔잖아. 짜증나...”


영아 엄마가 말했다.


“아휴~ 세상 사는 게 돈이 전부냐 하는데, 그 놈의 돈, 무시 못 하겠더라. 그래도 우리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수두룩해.”


내가 말했다. 맞아 맞아~ 이야기는 끊어짐 없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왔다.


서로 기대면서 다독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힘이 된다는 것을 요즘 많이 느낀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끊어진지 3일이 넘은 것 같다. 문자로 ‘친구야 잘 있쟈? 뭐햐?’ 하고 왔건만 집에 손님이 있어서 답장하는 것을 깜빡 잊고 보내지 못했다.


뒤늦게 ‘난 잘 있다. ’ 보냈건만 답장이 없다. 못 받았나?


전화를 걸까 했지만 참았다. 그것이 시간되면 하겠지...


정신도 몽롱하고 목은 아직도 아프고 코도 맹맹하고 귀도 간질간질하다.

그래도 배부르게 먹을 것 다 먹고 떠들 것 다 떠들고 집에 들어왔다.


토요일이니 아이들이 일찍 올 테니, 밥을 차려줘야 했기에....


엄마는 [밥순이]이기도 하다. 에효~~ 복 많은 팔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