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때 일이다.
우리학교는 내가 살던 집하고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버스를 2번타야 학교를
갈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애들은 6-8명 모여서 승합차를 타고
다니곤 했다. 우리 동네는 대체로 잘 사는 동네였다. 대부분의 애들은
그당시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애들이었고, 나는 영구임대주택에 살았다.
아니 나만 영구 임대주택에 살았다. 그래도 걔들과 그럭저럭 얘기도 주고받고
지내며 애들과 별로 친하지는 않았지만 그동네 사는 친구 한명과 친해서 같은
승합차로 등하교를 하곤 했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그 친구들은 영화나 쇼핑이다 신나게 나가서 놀았다. 우리집은 너무나 가난해서 영화를 볼 돈도 없었고
어서 가서 엄마일이나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승합차 아저씨가 \"너는 왜 같이 안가니?\" 하는 말에 눈물나게 마음이 아팠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보통은 내가 제일 늦게 내리는데 그날따라 아저씨가 나를 제일
먼저 내려주고 싶었나 노선을 바꿔 우리집으로 향하는 거다.
그때 차안에 있던 한 애가 하는말....
얘들아. 어떻게 이런데서 사람이 사니? 6층 까지 있네... 엘리베이터도 없잖아
몇평이니? 진짜 답답하겠다.
순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챙피했고,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막 화내고 싶었는데 챙피하고 부끄럽고
더더군다나 그럴 용기가 내게는 너무나도 없었다는 거지... 이런 젠장.
차 안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나는 말 없이 내렸다.
우리 영구 임대주택을 가려면 큰 고층 아파트를 지나서 가야했다.
그 고층 아파트 울타리에는 항상 덩쿨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화려하리 만큼 화려하게,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게, 빼곡하리 만큼 속 안이
안보이도록 무성하게, 내가 들어갈수 없는 저 울타리 안의 세상
나무도 많고 잔디도 깔려 있었다.
우리 영구 임대주택은 앙상한 은행나무 몇 그루 정말 들어가기 싫은 집이었다.
제발 이집을 벗어 날 수 만 있다면....
버스를 타려고 나오면서, 늦은시간 귀가하면서 그 울타리 안의 덩쿨장미는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쳐다보기 싫은 풍경이었다.
내가 저런거 보면서 부러워 할 줄 알아?
하지만 난 저 경비실을 지나 저안의 집에서 덩쿨장미를 내다보며 살고 싶었다.
시간이 가고 시간이 가고 내나이 33
이제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의 엄마고 나름대로 전문직에 일하는 어엿한
직장여성이다.
고등학교 그당시 그렇게 바라던 고층아파트에 덩쿨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아파트
를 소유하고 살고 있지만 나는 고등학교때 바라던 행복의 집에서는 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이 부끄럽지 않고 아이가 부끄럽지 않고 내 직장이 부끄럽지 않는데도 나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지난달 시아버지 생신때는 덩쿨장미를 집 울타리에 뺑 둘러 칠 만큼을 사들고 방문을했다.
아버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그거 심으시면서도 힘든기색없이 부랴부랴 심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아무욕심없이 그저 그저 소박하게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
이런글 쓰면서 내가 나를 반성하게 든다. 그 당시 어려운 환경을 왜 그다지 챙피해 하며
살았는지. 그리고 지금은 나는 왜 행복해 하지 않으며 사는지. 지금 창밖에는 화사한
햇살이 비치고 조금 있으면 장미가 너무나도 예쁘게 필 것이다. 그 때쯤이면 이제는 철이
들어 아름다운 장미를 보게 될 것 같다. 마치 루이 14세의 정원같은.
베르사이유의 장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