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똥풀꽃이 지천이다.
어딜 가나 샛노란 물결이다.
얘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춰 버린다.
그 사람은 꽃을 보면 나처럼 가던 길을 멈추곤 했었다.
같이 봤던 수많은 꽃들 중에 애기똥풀꽃이 유독 기억나는 건,
꽃 색의 선명함과 애잔한 감정을 억지로 흐려지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가 오월이었고, 어딜 가나 애기똥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애기똥풀꽃이 사방에 범벅이던 오월 한달을 눈물범벅으로 지내야 했던 그 때.
야생화를 좋아하던 그 사람을 만나 한창 느낌 좋게 진행 중이던 그 해 초 봄,
둘이 들판에서 수많은 싹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떤 싹보다 잎이 크고 초록이 싱그럽던 애기똥풀을 발견하고
내가 집에 데려다 키우고 싶다고 했더니,
그 사람이 제일 예쁘고 싱싱한 놈 셋을 케서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가방에 넣어 집으로 데리고 오던 그 기분은
잔치 집에서 먹을 걸 잔뜩 싸가지고 오던 어린시절보다 더 신나고 뿌듯했었다.
베란다 화분에 세 녀석을 한뺨 가격으로 심어 놓고
매일 물을 주고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저물었었다.
꽃이 좋아서도 그랬지만
출발선에 선 우리의 만남을 보는 것 같아서 그랬다.
꽃은 자기 터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강제 이동되어 심하게 앓아 잎이 노랗게 병이 들어갔다.
그 사람은 낯선 나를 만나 처음부터 몸살을 앓고 있었다.
해서는 안 될 만남,
그 사람은 나를 만나자는 말을 하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문자를 하고 전화를 매일 하면서도 만나자는 말을 하지 못했단다.
자기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생각과 나의 앞길을 막을까봐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은 내 마음 먹은 대로 조절이 힘들다.
양념을 알맞게 조절을 해서 입에 딱 붙는 반찬을 만들기도 힘들지만
감정을 알맞게 섞어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만나
상처 나지 않게 헤어지는 일은 정신과 박사도 심리학을 전공했어도 안 되는 일이다.
노랗게 병이 들어가던 애기똥풀꽃이 새순이 돋고 꽃대가 올라오더니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약하게 꽃이 피었다.
세 녀석 다 비슷한 시기에 자신의 할 일을 순리대로 해 냈다.
꽃이 피던 날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꽃이 피어났어요. 나 닮아 빌빌하지만 꽃은 꽃이죠? 히힛~~“
화분에 심은 꽃이 피어나고 어딜 가나 애기똥풀꽃이 지천이던 날,
그 사람을 내 스스로 보내야 했다.
오월초 애기똥풀꽃이 길 가장자리로 한 아름이던 장소에서
그 사람 부인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괴로워했다.
나보고 잠시만 참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내가 그를 보냈다.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만 보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게요. 안녕~~”
오월 한 달 내내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지만
그럴 때마다 눈물로 문자를 지워야 했다.
오늘 얘들 아빠와 아들과 꽃순이를 데리고,
냇물이라 하기도 애매하고 개천이라 하기엔 냄새가 나지 않은 곳으로 피라미 낚시를 갔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애기똥풀꽃이 언덕으로 빈틈을 주지 않았다.
샛노랗게 꽃잎이 흔들리면서 숨겨둔 추억이 찰랑거렸다.
그 사람이 꽃처럼 살아 움직였다.
그 해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게 보낸 문자도 숨을 쉬고 있었다.
“애기똥풀꽃을 보면 그리울 겁니다. 행복하세요. 꼭 행복해야 합니다.”
아들은 연실 고기를 낚으며 기분도 신나게 낚았다.
꽃순이는 들떠서 사방으로 달리고, 온갖 냄새가 엉긴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다.
애들 아빠는 올 해 들어 처음으로 흩어진 가족과 나와서 그런지 편안해 보였다.
나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밉지도 좋지도 그렇다고 힘들지도 즐겁지도 않다.
밖에 나와 자연을 접하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찾으려 애썼다.
무엇보다 아들과 아빠를 만나게 해 줘야 옳기에 이런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또 한번 애기똥풀꽃을 보았다.
아들아이가 우와 진짜 노랗다. 이게 뭔꽃이예요? 한다.
꽃 이름을 말해줬더니, 아! 아! 줄기에서 노란액이 나오는 거....
꽃에 관심이 없는 애들아빠는 헬끔보더니 엄청많네, 하고
꽃순이는 지 이름이 꽃순이면서 먹는 게 아님 쳐다보지도 않는다.
가슴속에 노란 점으로 남아 있던 그 사람.
오월이면 샛노랗게 움직였다가 다시 선명한 점으로 남는다.
그 사람도 나처럼 샛노란 그리움으로 흔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