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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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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세탁기


BY 선물 2006-05-11

 

팔이 아파 병원에 가니 목디스크 증상이라고 합니다.

많이 불편하고 힘들어서 병원과 한의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는데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갑니다.

읽고 싶은 책도, 하고 싶은 컴퓨터도 최대한 자제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덜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 올릴 엄두를 내어보는 것이지요.

그래도 조금씩 뒷목이 뻐근해옵니다.

오랜만에 들러 힘들게 올리는 글이 무슨 내용일지 아주 조금은 궁금하시지요?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조금 황당한 일입니다.


전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돌봐주는 부업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중학1학년인 아이가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혹시 얼마 전에 가수 신정환으로부터 전화 받지 않으셨어요?”

“... 그래,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네가 어떻게 알고 있니? 혹시 네가 장난친 거 아냐? 맞구나.”

얼마 전 그런 전화를 받긴 했는데 사실 신정환인지 누군지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그냥 방송국이라고 하면서 다짜고짜 끊지 말고 자기 노래를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별다른 안내도 없고 남학생 음성 같이 들리는데다 주변에서 킥킥하는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이 딱 장난전화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난치지 마시라고 말하면서 망설이다가 전화를 그냥 끊었습니다.

사실은 예전에 시청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선물도 주고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기에 아주 잠시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생각이었고 몸도 아파 뒤숭숭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가 우선은 좀 뜨악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그 말을 하자 전 바로 그 아이거나 아니면 그 친구들이 장난을 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배를 잡고 웃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어떡해요? 드럼세탁기 놓치셨어요. 남행열차 한 구절만 불렀으면 드럼세탁기를 타셨을 건데... . 어쩐지 선생님 댁 전화번호 앞자리가 뜨고 선생님 음성과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우와, 정말 아깝다. 우리 집에 그런 전화 오면 내가 제대로 받을 건데...”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드럼세탁기가 하늘로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며 혀를 쏙 내미는 영상이 어른거리면서 약이 바짝 오릅니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습니다.

하지만, 머리 속에선 계속 날개 달린 세탁기가 떠오르고 수업이 제대로 되지를 못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프로그램 보면서 그냥 무턱대고 전화 끊는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한 경험이 있었고 만일 제게 그런 행운이 오면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얼떨결에 걸려온 전화에서 자기 노래를 들어달란 남자의 전화를 받으며 <예 노래해보세요. 들어볼게요.>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신기한 일은 제게 해당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제게도 그런 일이 생기긴 했습니다. 다만 그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을 뿐...

혹시 저처럼 그런 전화를 받게 되시면 만약 장난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끊지 마시고 응대해주세요.

장난이면 그만이고 아니면 행운을 잡게 되잖아요.


그나저나 우리 집 세탁기 오래 된 세탁긴데...

신정환씨 부디 한번만 더 전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