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소리가 오간 아침,
아빠가 자리를 뜬 후에 둘째 아들
\"엄마, 아빠 안 좋아해요??\" 눈을 똥그랗게 하고 묻는다.
\"아니.\"
\"근데 왜 싸워요?\"
\"응, 좋아는 하는데 서로 얘기한 거야.\"
\"그럼, 안 싸운 거에요?\"
\"아니, 싸운 거야.\"
나나 남편이나 아침잠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아침시간은 항상 촉박하다.
명색이 주부인 내가 더 바빠야 하니까 내 마음도 따라서 여유가 없다.
남편 역시 가장의 체면도 있고 속으로 내 눈치를 보는 것도 있어서인지
내 말 한마디, 약간의 어투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나로서는 그냥 대충 밥하고 김치식으로 먹고 여유작작하게 나긋나긋
말대답까지 잘 해주면 좋은 소리 들을지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뭐 한가지라도 더하려구 바쁜데
거기에 중간에 말까지 이쁘고 애교 넘치게 해달라 하니 참내...
가정의 평화는 아침 기상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 보다.
나라도 이제부텀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해야겠다.
센스빠른 우리 둘째아들,
엄마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아주는 것 같다.
몇일째 아빠가 없는 저녁 식사를 마칠 때마다 부득부득
자기에게 설겆이를 시켜달란다. 의자 위에서 무릎 꿇고 한다나.
첫째두 행여 엄마의 애정이 둘째에게 더 쏠릴까 염려하여 자기도 한단다.
갑자기 왠지 또다른 우려가 든 내 대답은 이랬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가사일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란다.\"
이쁜짓이 전공인 둘째아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효도상품권을 여러장 만들어서 내게 주었다.
1주일치 설겆이,
2주일치 안마,
1주일치 동화책읽기,
3일치 집청소,
1년치 심부름,
무기한 불편한 일 도와주기.
이것들은 정기권이 아니고 횟수를 채우는 정회권이라고 설명도 곁들여준다.
\"필요할 때 얘기하세요.\"
설겆이를 제가 하겠다고 내게 진심으로 간청하는 우리 둘째아들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이담에 중학교 들어가서 엄마가 부탁하면 그 때 도와주라고 한다.
얘야, 너 그때 가서 마음 바뀌면 안돼. 꼭 해줘야 해. 꼭꼭꼭.
날이 꽤 더워졌나보다.
저녁을 먹다가 아들들이 기겁을 한다.
내 팔에 붙어 있다가 하얀 천장에 가서 사뿐 앉는 모기 한마리를 보고서.
지들도 요즘 뇌염주의보가 내렸다는 얘기를 들은 모양이다.
나더러 빨리 잡으란다.
밥먹는데 먼지 나서 못잡아. 그리구 모기라구 다 무는 것두 아니야.
아! 그러면 그건 식물의 즙을 빨아 먹나봐요. 한다.
근데 엄마 뇌염 걸리면 어떻게 돼요? 무서워요? 묻는다.
그래, 뇌염 걸리면 몹시 아프고 죽을 수도 있단다. 혹여 나아도 후유증이 생길 수 있어.
무슨 후유증요?
응, 지능이 떨어지거나 생활능력이 없어질 수 있어.
맨발의 기봉이도 뇌염 걸렸었어요?
그래.
그럼 나두 모기 물려서 뇌염 걸리면 마라톤하게 돼요?
흐흐흐, 그래 너두.
티비를 보는데
희귀난치병 환자어린이 돕기 성금모금에 대한 얘기를 보면서
우리 큰 아들 내게 묻는다.
엄마, 엄마두 성금 냈어요?
아니, 대신 엄마는 딴 봉사를 하고 있어.
칫, 난치병에 비하면 시시해.
너, 엄마 무시하냐? 니가 봉사해라. 공부 열씨미 해서 어서 돈많이 벌어서 기부를 하든가,
아니면 난치병 치료해 줘라. 그러니까 빨리 가서 공부햇!!
에휴, 엄마두우. 못말려.
아이들의 맑고 티없는 언어를
저의 메마르고 혼탁하고 무대뽀인 언어로
오염시키지 말아야겠읍니다.
<나>를 비우고 또 비우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