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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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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BY 동해바다 2006-05-07





      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다.
      내일까지 온다는 봄비는 이 한밤 조용히 물러나 있다.
      물러난 봄비처럼 그이도 조용히 없어졌다.
      
      근 한달가까이 자신을 학대하며 내게 포악을 떨더니
      기가 많이 죽어버렀다. 아니 힘이 딸리나보다.
      그랬을때 항상 나는 그를 용서해 주었다. 
      보기 싫고 다신 살기 싫었지만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그냥 살았다.

      용서...
      오랜만에 여러 님들의 글을 읽으며 \'용서\'라는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술에 취해 제정신인 날이 별로 없었다.
      정신이 들면 용서해 달라고 빌기까지 한다. 그러기를 몇해던가.
      헌데 이번에는 용서가 되질 않는다. 
      서류까지 떼어 와 준비를 했다. 
      그이에게 내밀었더니 다시 화를 내며 또 술이다. 
      그렇게 내게 용서를 구했는데도 받아주질 않는다고 독하다고 했다.
      전형적인 알콜중독자의 변이다.

      그에게 있어 용서란....
      단 한번의 잠자리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이부자리에서 대부분 해결된다.
      그런데 어찌 우리 싸움이 칼로 물베기에 비교할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는데...

      혼자 열이 나서 그 화를 참지못해
      혼자 술마시고
      혼자 발악을 하고 욕하고 ...
      하루 아침에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그...
      중병이다.
  
      내 자신을 위해 그를 용서한다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으로 환자인 그를 치료해야 할텐데...
      우리 식구 모두를 위하여 그이 병을 치유 해야 하건만
      나는 그를 방치하고 있다.
      죽어가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서
      술에 빠져있는 남편 죽어버리라고 술까지 사다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땐 그건 너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나 역시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

      시누의 전화를 받았다.
      너무  미안하고, 뭐라 할말이 없다고...
      하느님을 믿어보면 어떻겠냐고 넌즈시 얘기를 꺼낸다.
      종교에 의지해 조금은 그 무게를 덜어보면 어떻겠냐고...
      모든게 다 허망하고 믿을수가 없다. 자신이 없다.
      내게 희망이라고는 잘 자라고 있는 내 뜨락의 꽃들과 푸르름 뿐...
      미래가 막막하다. 
      아이들의 삶은 제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시험기간 내내 딸아인 우리 둘사이에서 힘겨운 날을 보내고 
      나는 그런 딸이 안스러워 미안하다는 메시지만 겨우 띄울 뿐이었다.
      괜찮다고 답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아들이 내려와 딸과 함께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계속 취해있는 아비를 자식들은 소 닭보듯 한다.
      어찌 아이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아빠에게 애원도 해 보고 대화를 통해 뭔가 해결책을 내보려 했지만 
      취중인 상태에서도, 하물며 깨어난 상태에서도 대화가 되질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은 느꼈다.
      내 책임도 크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폭력과 폭언에 아이들도 시달릴만큼 시달렸다.
      
      밥을 먹으며 아들과 딸 그리고 나는 3시간을 앉아 이야기했다.
      집에 돌아와보니 그이가 없다.
      슬리퍼도 치솔치약도 없는걸 보니 챙겨서 병원에 들어간 모양이다.
      곪아터진 상처부위를 임시방편으로 거즈만 부치고 나올것 같다. 

      어쨋든 편안해진 집...
      딸아이가 모처럼 깊은 잠에 빠져든 모양이다. 
      깨어나지 않을 수면 속으로 나도 깊이 빠져들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