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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일기.


BY 손풍금 2006-05-06

  

 

보리수(슈벨트)/  Der_Lindenbaum - 나나 무스끄리

 

 

 

 

-어느여인의 시- <천경자>


 

 
 
 

 


 

 

 

 

 

 

 

 

 

 

 

 

 

 

 

 

 

 

 

 

 

 

 

 

 

 

 

 

 

 

 

 

 

 

 

 

 

 

 

 

 

<이혼일기>

 

2002년 한해를 접는 마지막 날은 을씨년스러웠고 매우 추웠다.
새해를 한시간 앞둔 밤 술취한 그에게서 조금있다 집에 들어온다고 전화가 왔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TV에서는 2003년을 맞이하는 보신각 타종이 시작되었다.
술이 취해 돌아온 그의 눈빛이 무서웠다.
아이들이 불안해 하고 눈치를 본다.
나는 그를 데리고 집밖으로 나왔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식당에 들어가 그와 함께 술을 마셨다.

한번 술을 마시면 정신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시비를 붙는 버릇이 있는 그는 내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에 간이 콩알만해져 생선회가 입으로 들어가는건지 입밖으로 나가는건지 도저히 맛을 모르겠다.
그와 내 앞에 서있는 주방장이 들고있는 칼마저도 그가 휘두를 흉기로 보인다.
홀안에 있던 사람들은 말끝마다 거칠은 욕설을 내뱉는 그를 바라보다 나를 바라보는 표정에 불쾌함이 역력했다.
그를 다독이면 다독일수록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함부로 내뱉는 말투에 내 귀를 몇번이고 맑은물로 헹구어내고 싶을 만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게 모욕스러웠다.

식당에 들어갈 때 그는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지나간 일은 다 털어버리고 내년부터는 우리 잘 살아보자. 분명히 그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들어갔다.

나는 그에게 큰 죄를 지은사람처럼 아무말도 못하고 그의 마음이 어서빨리 가라앉기를 소원한다.

그는 여전히 내가 자기가 하는 말을 비웃으며 듣고 있다고했다.
홀안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날아오는 눈총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그만 나가자고 했다.

이쯤 되면 그 후에 일어날 일은 보지않아도 그릴 수 있다.

집에 들어가 그가 술이 깨는 밤과 그 다음 아침까지 욕설과 주먹질에 시달릴 일이 남아있다.

그는 분노의 화산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같았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를 이해하려 애쓰다 보니 애쓰면 애쓴만큼 참아낸 날들이 가슴에 고여 출렁거려 넘쳐날 것 같다.

 

음식점을 나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처럼 두려움에 떨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는 노래방으로 나를 끌고갔다.
왜 이렇게 기분이 더럽냐. 이게 아니였는데. 우리 노래 한곡 부르고 기분전환하자, 하면서...
나보고 노래를 부르라고 한다.
노래를 부를 기분은 죽어도 아니였는데 뒷일이 무서워 노래를 했다.
두소절쯤 불렀을까. 뒤에서 날아오는 마이크가 머리를 때렸다.
가사가 기분나쁘다고 다른걸 부르라고 했다.
나는 뒤통수를 만지면서 아프다고 했고, 그는 인상을 쓰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집에서 불안해 하며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의 기분을 풀어줘야 한다는 그 생각하나로
미친여자처럼 다른 노래를 불렀다.
이번엔 더세게 마이크가 등을 쳤다.
\"그 가사가 의미하는게 뭐냐고, 왜 불러도 그런 기분나쁜 노래만 찾아 부르느냐고...네가 말하고 싶은게 뭐야.\"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이미 눈에 광채가 났고 제정신이 아니고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오랜 세월 그의 폭력에 길들여진 나는 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온몸이 분노로 덜덜 떨렸다.
아는노래가 이것 밖에 없어...진정하고 말했다.
마이크를 내려놓고 집으로 가기위해 나왔다.

<네 맘대로 집에 간다 그거지...> 뒤에서 총같은 말이 겨누어졌다.

옥탑방을 향하여 4층계단을 뛰어올라와 초인종을 눌렀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나오는데
\"엄마, 어디갔었어, 얼마나 걱정했는데\"하며 반기는데 금새 울음을 쏟아놓을듯 하다.
미안해, 괜찮아. 엄마 괜찮아. 걱정했지? 하고 들어오는데 뒤따라 올라오는 그의 손이 내 뒷목덜미를 나꿔챘다.
나는 계단을 구르면 끌려갔다.

아이들이 울면서 따라붙었지만 그의 힘을 당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마. 제발. 내가 당신 마음에 안드는 노래를 불러서 미안해. 나 좀 일어나게 해줘. 내발로 걸어내려갈께\"

그제서야 그는 내목덜미를 놓았다.
울며 따라내려오던 아이들에게
\"들어가, 괜찮아, 엄마 괜찮으니까, 들어가. 아빠가 할말이 있는 모양이야.
엄마가 아빠 화나게 해서 그래.\"하고 아이들을 달래 보냈다.

그는 나를 동네에 있는 계족산으로 끌어다 묻는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데\"

\"기분좋게 술먹고 들어온 나를 기분 나쁘게 해서\"그게 그의 대답이였다.

나는 그가 잡아끄는데로 끌려갔다.
계족산 입구까지 왔다.
아무리 몸을 비틀어 잡아 빼내려고 해도 그 엄청난 힘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산 입구가 눈앞에 보이자 무서웠다. 정말이지 그에 의해 내 목숨이 끝날것 같았다. 
산 입구에서 더 이상 안끌려갈려고 버티며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는 내가 꼭 붙들고 매달린 공원울타리 철책의 내 손가락 마디마디를 펴고 있었다.
얼마를 실갱이 했을까. 그는 내게 폭력을 행사하며 나를 끌고 가려했다.
먼 발치에서 한참을 서있던 봉고차가 불을 켜며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를 때리던 그가 손을 놓았다.
그때 매스컴에서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연일 보도될때였다.
봉고차가 조금 더 앞으로 온다면 나는 봉고차안으로 뛰어들 생각였다.
봉고차가 옆에 서자 그가 갑자기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너 경찰에 신고했니?\" 하고 묻는다.
그런건 아니였지만 나는 그렇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가만히 있더니 집에가자고 했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흐른것일까. 온 몸이 두드려 맞은 듯 쇠사슬을 몸에 감아놓은 것 처럼 무겁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새로운 한해의 첫날

오늘이 새해구나...


나는 기진맥진되어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여니 아이들이 나에게 달려드는데 온몸이 찬것을 보니 아마도 나를 찾아 밖으로 몇시간이고 헤메고 다닌 모양이다.
술기운이 퍼진 그는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쓰러져 코를 골았다.

시계는 새벽 세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엄마, 우리가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엄마 맞았어? 엄마. 다친데 없어? \"

엄마 괜찮아... 그만 자. 나만큼이나 기운이 빠진 아이들이 잠들었다.

도대체 불행은 어디까지가 끝인가.
더이상 참고 견딘다는것은 커가는 아이들에게 간접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아니 이제 이 아픔을 방치했다가는 우리 모두 다시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모든것은 내책임이다.
아이들의 상처도 내책임이다.
모든것은 나로 부터 수반되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가겠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
내가 나를 내팽개친다는것은 너무도 슬픈일이다..
내가 왜 한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불행해야 하는것일까.
이 착하고 예쁜아이들이, 보아서는 안되는 것들... 절대 기억해서는 안되는 이 나쁜것들...

내아이들이 평생을 가지고 갈지 모르는 이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날 밤 그런 기가막힌 일을 당하고도 다음날 따진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래서, 어떻게 할건데...따져서 어떻게 할건데... 다시 시작하자는거야?.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어.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하고 더한 폭력이 찾아오기때문이다.

그는 십오년이 넘도록 반복되는 폭력을\'잘못했어\'가 아니고 \'실수했다\'고 했다.

우리에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는 아침밥을 해야하고
웃으면서 말을 해야하고 웃으면서 일상을 맞이해야한다.
늘 그렇게 해왔다.

하루종일 끙끙 앓았고 다음날,
그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을 하고 장터로 향하던 나는 동네 파출소로 차를 돌렸다.
생명에 위협을 느껴 접근금지를 신청하려고 한다고 했을때 4주 이하의 진단서 가지고는 안되고 현장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맞는사람이 어떻게 신고를 하며 때리는 사람이 신고를 하도록 가만히 두겠느냐고 하자, 그래도 법이 그러니 어쩔수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 여성의집으로 가서 상담을 하니 파출소와 같은 내용의 말이였고 정 힘들면 변호사를 통해서 그간 상황의 증거를 대고 서류를 준비해 제출하라고 했다.

변호사요? 그럴 돈이 있으면 여기와서 이런얘기 하지도 않지요. 알겠어요.

아무런 도움도 얻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나는 이제 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르고 자정이 넘은 시간 그는 다시 술이 취해 들어왔다.
다짜고짜 2년동안 벌어다 준 돈 어쨌느냐는 것이다.

그는 살아오면서 가족에 대한 부양의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아 모두가 내 몫이였다.

그러던  최근 2년간 내게 얼마간의 월급을 갖다주었다.
나는 머리가 급하게 돌아갔다.
내가 벌은 돈으로 빚정리 하고 있다고 하면 돈번다고 생색내느냐고 트집잡을것이 뻔하다.
당신이 벌은 돈으로는 빚갚았고 내가 벌은 돈으로 생활비하고 지금 통장에 얼마 남아있다고 하자
네가 벌은 돈으로 생활비한다고 생색내느냐고 트집을 잡았다.

빚갚은곳을 말하라고 해서 말을 하자, 다시 말하라고 한다.
다시 말하자 못들었다며 또 다시 말을 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말을 할때마다 그의 손이 내 얼굴로 머리를 함부로 잡아 흔들었다.
같은말을 다시하라고 한것이 벌써 두시간, 아니 세시간째다.
곧 쓰러질 것만 같다. 현기증이 난다. 멀미가 나 토할것만 같다. 노란별이 무수히 떠다닌다. 변이 마렵다.

자꾸만 꾸역꾸역 속에서 무언가 올라온다. 정신이 점점 흐려진다.
아이들이 뒤에서 울부짖는다. \'
아빠, 제발 그만해요. 아빠, 화내지마요.
제발 좀 그만해요.
아빠, 우리가 잘못했어요.

아이들도 나 처럼 그의 화를 잠재우기위해 우리가 잘.못.했.어.요...라고 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와 헤어지기로 작정한다. 꼭...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기도 어려운데 왜 빚을 갚으려 하냐고 너처럼 등신같은것은 죽어야 한다고 한다.
문을 열면 옥상이다.
떨어져 죽인다고 지붕쪽으로 끌고간다.
차라리 이렇게 살바에는 죽어버리는게 낫다고 뛰어내려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못한다.
너무 무서워서 제발 살려달라고 빈다.
안끌려 갈려고 갖은 발버둥을 다 친다.
그러다보면 옷이 찢기고 몸이 멍들고, 머리채가 뽑히고,
나는 왜 이렇게라도 꼭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할까.

너무 힘들고 아픈데 그냥 미는데로 떠밀리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발버둥을 칠까.

그의 심중이 얼핏잡힌다. 알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받아보기 시작한 월급이 빚갚는데 쓰는게 싫은것이다.

살아오면서 그를 이해해보기로 죽을만큼 애썼다.

하지만 이제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는......

절대로......


\"그럼 앞으로 나한테 월급 주지마, 줘도 안받을께. 제발 이제 그만해.
미안해, 당신이 힘들여 벌은 돈으로 빚갚아서. 안그럴께. 제발, 이제 제발 그만해. 아파 힘들어...\"
내 머리채와 팔목을 꼭 움켜지고 있던 그가 그 한마디에 손을 풀었다.
<들어가 자.>
금새 아무일 없었다는 듯 방으로 들어간다.
옥상 바닥에 뽑혀져 있는 머리한줌을 쥐고 나는 죽지못함을 서러워 하고 있다.
그 다음날 아래층 주인여자가 올라왔다.
\"아줌마, 어젯밤 밤새도록 고무줄 했어요? 왜 이렇게 쿵쾅거려요?
한숨도 못잤잖아요.\"

\"미안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아줌마 얘예요?
아저씨는 아줌마 남편이예요?\"한다.

나이 어린 주인여자를 보내고 나는 수돗물을 틀어놓고 소리내어 울었다.
엉.엉.엉
울고 세수하고, 울고 세수하고,
엄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