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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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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


BY 손풍금 2006-05-05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에 들어왔는데도 낯설지 않은것은 꾸준한 에세이방의 독자였기 때문일겁니다.

새록새록 지난 시간이 그리워 슬쩍 들어와 앉아봅니다.

 

저기 반갑고 낯익은 $%^&*((&^ 님들.

저 잊지 않으셨지요?

흐드러진 봄 날. 이야기 보따리 풀러 왔습니다.

<안반가워도 반가운 척 하기요.^^>

 

 

<그 여자네 집.>

 

어제는 종일 비가 내리더니 오늘 햇빛이 아주 길게 반짝거리며 길 위로 쏟아집니다.

식목일이라 그런지 삼양리 교각 묘목파는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흙과 함께 뿌리를 꽁꽁 묶은 어린 감나무를 할아버지가 들고 갑니다.

자전거에 실린 모과나무도 뒤 따라갑니다.

넝쿨장미의 가시가 신문지에 쌓인 채 아저씨의 손에 들려갑니다.

몇년 후면  그 나무가 훌쩍 커서 담을 치거나 담장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하얀등불을 눈부시게 켜고 피어나있겠지요.

상자에 담겨 고개만 삐죽 내민 강아지도 아주머니의 손에 들려 따라갑니다.

팔려가는 강아지는 어미가 그리운지 끼깅~거리며 속앓는 소리를 내면 사정없이 강아지 머리위로

손바닥이 날라가는 매정한 아줌마...

다행히 아주머니가 내 전앞에 강아지를 내려놓고 영양크림을 하나 달라고 하십니다.

 

아줌마. 강아지가 물먹고 싶은가봐요. 때리지마요. 하고 최대한 가급적 상냥하게 아주머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말하면 짐승은 패대야 가만히 있어. 하고 기죽어 있는 강아지 머리를 한대 더 때립니다.

탁~! (읔, 내 머리가 더 아프다.)

 

팔려가는_강아지[1].jpg

 

 

장거리의 한 낮에 졸음이 몰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멀리 산허리에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아마 그 아지랑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할미꽃이 피어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소란스러워져 바라 본 장거리엔 선거 입후보자들이 줄지어  인사를 다닙니다.

\"부탁드립니다. 잘해보겠습니다.\"

작은 읍내이다 보니 입후보자들을 알아보는 노인분들은 집안 내력에 족보까지 다 나옵니다.

\"그려, 너 아버지하고 똑같이 생겼구나. 내가 니아부지하고 아주 절친했지.

어머니 피눈물나게 고생한거 잊어버리면 안된다. 너 , 아주 잘 컸구나, 대견하다.\" 하고 머리를 쓰다듬으시기도 합니다.

어떤이는 \"네 아버지 병시중은 누가하고... 에고, 지팡이를 탁.탁.거리며.  한숨을 놓고 갑니다.

 

한 집 건너 누가 사는줄 다 알고 그 집에 숫가락이 몇개인지도 다 알고

몇집 건너면 사돈에 팔촌이 되고 마는 동네. 작고 아름다운 옥천읍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명륜당서점 사장님도 나왔는데 처음에는 서점홍보하러 나왔나 했더니 선거에 출마하신다네요.

나는 살짝 웃으며 손가락 두개로 브이자를 만들어 누구도 보지 않게 보냅니다.

바른생활인이신 사장님께 힘을 보태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드릴게 없어 내가 서 있는 황금요새를 조금 양보했지요.

명륜당서점은 읍내에서 제일 큰 서점입니다.

밖에서 보면 넓은 홀안에 책이 가득 차 있습니다.

처음에는 유리창이 넓은 밖에서 한참동안 서점안을 기웃거리며 책을 살펴보다가

어느새 카운터에 앉아 있는 서점 안주인의 모습에 눈이 멎습니다.

겨울에는 털실로 스웨터를 짜고 있고 여름에는 하얀레이스실을 손가락에 걸어 코를 늘리고 있는

그 여자는 참 아름답습니다.

더 없이 지순하고 더 없이 착한 아내인것 같아서 바라보는 내가 다 행복합니다.

밖에서 그리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를 눈치채기는 했으려나요.

 

서점 옆에는 <풍금>이라는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음식점이 있습니다.

주인은 소설가이고 신문사 편집국장입니다.

풍금의 주인 남자는 피아노를... 기타를... 풍금을...아주 잘켜고 노래를 잘합니다.

가끔 식사를 하러가면 사천원짜리 밥을 먹는동안 기타를 치며 감미로운 노래를 불러주어

더 없이 호사스런 식사를 하고 나옵니다.

이런 옥천의 작은읍내가 좋습니다.

무섭지 않은 경찰서가 있고 경찰서옆으로 빨간벽돌의 우체국이 있고.

우체국 맞은편에는 어딘가로 훌쩍 떠날수 있는 기차역이 있습니다.

삼양리교각을 따라 장이 서고 시내버스종점이 있는곳 삼층에 <유은주피아노학원>이 있습니다.

그 피아노학원에 시音과 라音 같은 아름다운 선생님이 두분계십니다.

그 선생님은 내 오래된 단골손님입니다. 

클렌징크림을 사가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시音 같은 피아노 여자를 쳐다보더니

\"선생님도 여기서 화장품사요?\"하고 묻습니다.

\'그럼요. 나는 여기서 다 사다 써요. 얼마나 싸고 좋은데요.\" 시音 같은 여자가 말을 하니

여자 한번 올려다 보고 나한번 쳐다보고 \"그래요? 나도 한번 사볼까?\"하고 쪼그리고 앉아 화장품을 고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멈춥니다.

 

라音 같은 여자는 갑자기 밀려드는 손님을 받지못하는 나를 도와 이것도 한번 써보세요. 저는 이것만 쓰거든요.

라音 같은 여자가 말을 하니 손님이 주저하지 않고 싸달라고 합니다.

내가 열번 말해도 인정하지 않더니 말이예요.

 

옛말 그른거 하나도 없어요. 사람보고 사간다더니...

길이 좁으니 앉아있는 사람이 다섯사람만 되어도 뭔일 났나하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몰려듭니다.

나보다 더 신이난것은 시音과 라音같은 여자입니다.

손님이 돌아가고 시音의 여자는 찬거리사러간다고 떠났고 라音의 여자만 남아있습니다.

 

피아노_학원[1].jpg

 

 

요즈음 제가 시집을 읽고있어요. 하고 라音의 여자가 말합니다.

혹시 김용택님의 <그 여자네 집>이라는 시 아세요?

 

나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 아시는구나. 그게 뭐였지요?

물동이에 벚꽃 떨어지고.... 월남치마 살살끌고 다니면서 한겨울 김치독을 열때는 어깨에 눈이 내려앉았데요.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동네 어귀를 빙빙 돌았대요. 아마 첫사랑을 잊지못하고 쓴시 같았어요. 그치요?

 

네. 맞아요. 하고 내가 대답합니다.

 

 그걸 읽다가 어찌나 시가 아름다운지 남편을 붙들여 앉혀놓고

여보, 이거 좀 들어봐요. 내가 시 하나 읽어줄께요. 했대요. 라音 같은 여자가...

시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리잖아요.

 

왜요?

 

너무 시가 아름다운거예요. 어떻게 그런 기억을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어요?

하면서 또 눈물이 글썽글썽 하는거예요. 훗.

저는 라音 같은 여자가 너무 예뻐가지고 막 웃었어요. 그래서요?

 

우리 남편이 나보고 울지마...왜 책을 읽으면서 울어. 하더래요.

 

이 시 좀 봐요. 너무 아름답잖아요. 하면서 당신은 안 울고 싶어? 하면서 울먹거리니까.

 

그래.그래 그만 읽어, 그런 당신이 나는 그 시보다 더 아름다워. 그래서 나는 당신이 좋아. 그러더래요.

이번엔 그 말을 듣던 내 가슴에 살구꽃이 사방 정신없이 피어나는거예요.

 

와아~ 아저씨 너무 멋있다.

그런데 그 라音같은 여자의 큰눈에 아직도 눈물이 그렁 그렁 하길래.

 

내가 그랬어요.

나는 아마 그랬다가는 돌돌 말은 신문지로 머리 한대 맞는데...

 

라音같은 여자는 깜짝 놀래가지고는, 왜요? 하고 묻습니다.

 

까불지말고 나가서 돈 벌어와...하고 맞는데... 했더니

 

진짜요? 하고 동그란 눈이 끝도 없이 커집니다.

 

아...아니예요. 장난이예요. 그 시 나도 좋아해요.내가 들려줄까요?

 

 

조금 생각나는데로 내가 시를 조용히 낭송했어요.

내 나이도 잘 기억 못하면서 이 시는 어떻게 외우고 있느냐구요?

제가 워낙 <그 여자네 집>을 좋아해서 시집이 닳도록 읽고 다녔거든요.

 

 

    

 

 

그 여자네 집

                                                 

                                    김용택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 속에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앉아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살구꽃이 피는 집
봄이면 살구꽃이 하얗게 피었다가
꽃잎이 하얗게 담 너머까지 날리는 집
살구꽃 떨어지는 살구나무 아래로
물을 길어오는 그 여자 물동이 속에
꽃잎이 떨어지면 꽃잎이 일으킨 물결처럼 가 닿고
싶은 집

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 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와
옷자락이 언듯언듯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여하고 싶은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은 집
참새떼가 지저귀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 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은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속눈썹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김칫독 안으로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허리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목화송이 같은 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새워, 몇밤을 새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자의 방 앞
뜰방에 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신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히,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네집

어느날인가
그 어느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 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 집
내 마음 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 각. 을. 하.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