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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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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풀꽃 인연)


BY 개망초꽃 2006-05-04

손톱만한 거미가 까만 물방울 무늬 치마위로 기어 다닌다.

잽싸게 집어 한련화 꽃위에 올려놓았다.

화분과 화분사이에도 창살과 꽃사이에도 거미줄이 곡예를 한다.

의자 밑에도 천장위에도 거미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거미랑 함께 산다.


열흘 전에도 며칠 전에도 어제도 벌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 비행을 한다.

길을 잃은 벌은 길을 찾느라고 날개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난다.

창문을 활짝 열고 읽고 있던 책으로 길을 안내해 주었다.

나는 잃어버린 길을 찾아주는 안내인이 된다.


벌어진 창문 틈으로 넝쿨장미꽃 한 줄기가

내 친구가 카페 인수를 할  때부터 카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나보다

새로 바뀐 주인이 궁금해 들여다보다가

꽃을 좋아하는 나를 보고 안심하고 자기 집인양 살기로 결정을 했나보다.

장미는 슬쩍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가 눌러 앉아 살기로 했다.

꽃망울이 콩알만 하더니 부풀어 올라 풍선이 되어 기필코 펑~~ 터트려 버렸다.

빨갛게 터진 장미꽃을 친구를 불러 보여주고

손님을 모셔서 보여주고

꽃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팔을 잡아끌어 보여주었다.

오늘 두 송이채 꽃을 터트렸다.

아직 터트릴 장미풍선이 다섯 개는 더 된다.

심장 약한 나는 풍선이 터질때마다 깜짝깜짝 놀랠것 같다.


세를 놓지도 않았는데 화단엔 풀꽃들이 이사 와서 살고 있다.

주름잎꽃이 있는 대로 퍼질렀고,

뽀리뱅이꽃이 사방에 점령을 하고 목을 길게 내밀고 손님의 발길을 기다린다.

꽃마리꽃은 잔디밭 가장자리로 그득하다.

냉이 꽃이 하아얀 쌀티밥같다.

토끼풀도 한창 잎이 돋아나고 있다.

일산 시에서 풀 뽑기를 수시로 하는데 카페 잔디밭만은 잡풀이 무성하다.

옆 건물 해물잡탕찌게 음식점 잔디는 강제로 이발을 깔끔하게 했는데

카페옆 잔디밭만 신기하게도 단발령에서 제외가 되었다.

나는 신나서 매일 두세 번씩 잔디밭 순찰을 나간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풀꽃 지킴이가 되기로 했다.


화단엔 벌레들이 들끓는다.

코스모스 씨를 심으려고 땅을 팠더니

애벌레들이 허옇게 배를 내민다.

씨를 심고 애벌레도 제자리에 심어 주었다.

징그러운 지렁이도 물론 있고

노린재가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앞으로 계속 출현하겠다.

나는 이들과 함께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애기똥풀꽃 세 포기를 산 밑에서 업어왔다.

카페 입구에 카페 문 지킴이로 심어 놓았는데

기운이 없이 늘어지고, 노란 병이 들어 걱정을 많이 했더니
어느절에 노란 꽃을 피웠다.

추억 어린 꽃이라 가슴이 쓰렸는데, 다행이다.

나는 애기똥풀꽃과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에 잠긴다.



창문 밑에 키가 큰 풀 한 포기가 있었다.

꽃에 물을 줄 때 키다리에게도 매일 공짜로 물을 먹였다.

넌 뭐니 물어 보았지만 키다리 풀은 말은 안하고 키만 키웠다.

알고 봤더니 엉겅퀴였다.

지금 꽃망울을 머리끝에 이고 있다.

말없이 나를 놀래키려고 그랬나보다.

엉겅퀴를 어디서 캐오고 싶었는데, 엉겅퀴 스스로 내게 걸어왔다.

모든 인연은 내가 찾아가기 전에 내 곁에 걸어올거라 믿는다.

나는 그 맹목적인 인연을 오늘도 기다리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