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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기는 곱건만...


BY 은하수 2006-05-02

아파트 앞 정원에는 나뭇가지마다 연초록빛 신록으로 물들어가고

하양, 분홍, 연보라의 봄꽃들이 가지가 휘어지게 만발하여 흐드러져 있다.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깜깜한 밤에 들어설 적에 코안으로 훅 밀려드는

사방에 진동해 있는 꽃내음은 그 이상의 그것이다.

라일락꽃의 진한 체취에 금새 정신이 몽롱해진다.

 

밤에 나가는 여인네의 분냄새 같거나

방금 샤워한 여인의 머리내음 같기도 한 꽃향기는

왠지 모를 아련함에 내 가슴 속에서 뭔가 뭉클해져옴을 느낀다.

 

문득 \"세상이 참 아름답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더 오랜 옛날에도

봄이면 갖가지 아리따운 꽃들이 향내를 뿜으며 내게 눈짓을 했으리라.

 

꽃향기가 그리 진한지도 모르고

무엇을 쫓아서 정신없이 지나갔는지.

멋도 모르고 다녔다!!!

 

문득 슬퍼진다.

아름다운 것이 눈물 짓게 만든다.

 

신은 세상을 이리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거기에 사람 사는 모양은 때론 썩는 냄새가 난다는걸...

 

소설 속에만 나오는 일인줄 알았다.

여자를 끌고 조강지처가 있는 집에 들어가는 일이...

컴 속 이야기에나 있는 일인줄 알았다.

몇밤 살을 비벼댄 여자를 끌고 제 집에 들어가

십년을 버둥대며 같이 산 여자를 자식들 앞에서 위협하는 일이

내 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는줄 꿈엔들 알았을까.

 

흔히들 말한다.

당하는 여자에 대해서.

시집식구의 관점에서 혹은 친정식구의 관점에서 아님 제삼자의 입장에서.

지혜롭지 않아서 그렇다구.

바보같다구.

복이 없다구.

운이 없다구.

모두가 상처가 될 뿐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려서 비비는 소리다.

 

처음에 들을 땐 기암을 할 만큼 놀라운 얘기였지만

치가 떨리게 무서운 얘기였지만

사람은 적응을 하게 되어 있나 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싶었는데

어떻게 내 주변에서 그런 일이... 싶었는데

글을 씀과 동시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상한 일이다.

적응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이것은 불의다. 정의가 아니다.

우리는 정의가 아닌 일에 무감각해져서는 안되겠다.

 

꽃향기가 정신을 일깨워준다.

나를 맑게 해 준다.

 

오늘밤에도

꽃향기를 맡으려 나가 봐야지.

초승달이 날 지켜줄 거야.

 

봄이 조금만 오래 머물렀으면...

 

향기가 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