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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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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고들 살아?


BY 일상 속에서 2006-04-26

 

알고 지낸지 10년이 가까운 이웃 언니께 전화가 왔다. 50을 바라보는 그 분을 언니라고 부른지 얼마 되지는 않는다. 나에게 있는 단점들 중에 한 가지는 언니나 오빠라는 호칭을 유용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만나 사람들에게 난, 몇 살 터울 지지 않으면 ~엄마, 터울이 많이 지면 아줌마, 아저씨라는 호칭을 쓴다. 요즘은 나이 어린 사람에게도 편하게 언니~, 이모~, 오빠~ 하고 잘도 부른 다고들 하던데... 난 호칭하나 편하게 부르지 못하는 융통성마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단점을 알면서도 못 고치고 있으니 더 심각하다.) 모두가 아줌마면 아줌마, 아저씨면 아저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유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단 한사람이 있다. 오늘 내가 말하려는 분, 바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49살의 아줌마다.


미용실의 이름은 밝힐 수 없다. 혹 나를 아는 주변 사람이 이 글을 볼 수 도 있기에... 그렇게 되면 그 분의 상처 난 가슴이 만천하에 드러날테니 말이다.


미용실은 여자들의 사랑방이자 수다 방이다. 그 곳에서 나의 정신 수준을 높이기도 한다. 배우는 것도 많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옛 말... 그런 속담을 처음에 누가 만들었을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다들 그리도 수다스러운지 남의 흉, 남편 흉, 할 말 없으면 연예인에 정치인들까지 흉을 본다. 나 없으면 내 흉이 나올까봐 불안해서 화장실도 못 간다. ^^;;;


나이가 제일 많으신 분은 올해 환갑이신데 꾸미고 다니는 것이 우리 중에 제이 멋쟁이. 처음 난, 그 분이 이제 50줄에 들어서신 줄 알았는데 실제 나이를 안 순간 놀랐고 반성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는 부지런히 가꿔야 한다더니... 제일 어린 것이 제일 펑퍼짐하게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나이에 제일 민감하신 분이기도 하다. 나이를 연세라고 했다가는 큰일 난다고 누군가 귀띔까지 해줬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정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입에서 ‘아줌마’ 라는 호칭이 나올라치면 다들 기겁들을 하신다. 자신이 나이 들어가는 것도 슬픈데 너무 티내지 말라고 들 하셨다. 그래도 난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사랑방의 주인이자 미용실 주인아줌마는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는 장점을 갖고 계셨다. 가지런한 치아를 들어내 보이고 웃는 모습이 언제나 화사하게 예뻤다.


미용사의 직업 특정상 여자들의 수다와 넋두리를 모두 들어주고 공감해야 하기에 언제나 포근한 표정을 유지하고 계셨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미용실 아줌마가 불안과 슬픔이 가득담긴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아빈아... 바쁘더라도 시간 내서 나한테로 좀 올래?”


목소리의 심각성이 느껴졌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난 출판을 앞둔 때라 바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때였다. 하지만... 갔다.


손님 없는 미용실 안, 유리 탁자에서 커피 잔을 부여잡고 앉아 있는 아줌마의 모습이 심상찮았다.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은 화장으로도 감춰지지 않았다. 나의 모습이 보이자 예의 그 트레이드마크인 하얀 치아를 들어내 보였지만 미소조차 슬퍼보였다.


“놀랬지? 언니가 전화해서...”

(늘 내게 자신을 언니라고 호칭 하시는 그 분 앞에서 그 날부터 내 입에서 언니라는 말이 나온 것 같다.)

“놀라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냥 네 얼굴이 보고 싶더라.”

“에이... 이쁜 동상이 그렇코롬 보고 싶었어요? 헤헤헤... 하긴 나도 오늘 무진장 여기가 오고 싶더라.”

“그랬구나. 하하하하.....”


박장대소라고 표현하기 애매모호한 웃음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크게 있구나... 걱정되었다.


하지만 그럴 때 나의 푼수끼는 더 빛을 발하고야 만다.


“헉...허걱... 언냐~ 웃다가 울면 신체 어딘가에 변화가 온다던데... 어디 검사 좀 들어가 볼까나? 아무도 없는데, 이 동상이 언냐 궁둥이 좀 봐야겠다.”

“이래서... 네가 생각나더라. 편해서... 여기 사람들은 참 많이 오지만 내 아픔을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오늘 참 외롭더라.”


말을 마친 언니가 소리를 삼켜가며 수돗물처럼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난처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가 없었다. 5분 쯤 지났을까?


“나... 서울을 떠날까봐... 명석이(가명) 때문에...”


명석이는 언니의 하나뿐인 아들이다. 사춘기 때부터 언니를 힘겹게 하더니 군대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는 그 아들이 여전히 속을 썩이는 구나... 하고 혼자 짐작만 했다.


“아빈아, 명석이 내 아들 아니야...”


이어 나온 언니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답변조차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이지... 아들이 아니라면 양자란 말인가...


“난, 우리 남편의 2번째 처야. 이건 아무도 모른다. 난 이 나이 먹도록 아기를 한번도 낳은 적이 없어. 처녀 때부터 아픔이 있는 사람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인연인지 한번 가정을 실패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 나만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명석이가 나에게 온 건, 시부모님과 함께 산지 벌써 몇 해인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픔을 토해내는 언니의 말은 이러했다.


명석이란 아들을 데리러 갔을 땐 벌써 아이의 사고(자기 개인의 생각)가 어느 정도 생겼을 때였단다. 지하 단칸방에 살고 계시던 시부모님은 여유롭지 않은 삶 속에서도 인생을 포기한 듯 엉망인 채로 죽지 못해 살고 계셨고 명석이는 이미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못된 버릇을 갖고 있었다고...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하느님께서(언니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다. 아이러니 하게도 난 절실한 불교 신자로 절은 자주 다니지는 않지만 부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린 그런 것을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인연을 주신 대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매도 때리고 타이르기도 하며 지금껏 키웠단다.


내가 봤을 때 언니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들 흉도보고 걱정하고 챙기곤 하셨다. 꿈에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충격이었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장성해서 군대를 가고 제대를 해서 뭔가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데... 아들의 문제는 점점 더 크게 터졌단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거짓말. 개념 없이 써대는 돈, 핸드폰 요금, 거기다가 전 날 밤에는 명석이가 아버지에게 폭력까지 행하려 했다는 거다.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그 모습에 놀란 언니가 말리며 매달렸더니 손에 잡힌 병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때려서 붉은 피를 흥건히 흘려 냈단다. 그런 불효막심한 아들을 데리고 언니는 혼자서 간밤에 응급실까지 가서 터진 머리를 꿰매고 왔다고 했다. 그런 모든 일들이 계속 반복 될까봐서 두렵단다. 무섭단다.


다달이 제때 못내는 비싼 가게세보다, 카드 연체료 때문에 매일 전화해대는 은행 직원보다 더 무섭단다. 왜 안 그렇겠나... 듣는 것만으로도 섬뜩하던데...


“내가 친 엄마였다면 그 놈이 그렇게 막 나오지 않았을 거야. 나의 사랑이 부족 했던 걸 거야. 하긴... 난 놈을 정말 사랑한 것 같지 않아. 귀찮을 때가 많았고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 그래서 그렇게 됐나봐. 지금 난 어딘가로 멀리 도망가고 싶다. 어떡하지 아빈아?”


가슴 아픈 언니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막막했다.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 보이고 내게 말해준 언니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하지만 듣는 내내 느꼈던 감동과 가슴 아팠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다.


“언니...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난 몰랐어요. 언니가 새엄마란 힘든 자리에 있는 줄...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 아니... 세상 사람들 모두 언니가 말하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난, 워낙 언니를 좋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오늘 더 감동이네요. 어떻게 그런 마음을 내색한번 하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내 배 아파 낳은 자식한테도 귀찮은 생각 갖고, 없었으면 좋겠다는 나쁜 마음도 갖아요...”


그날 우린 10년 이상 터울 지는 나이를 뛰어 넘어 아픔을 함께 나눴다. 그날부터 심하게 차이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린 의자매가 되었다.


언니는 나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미용실에서 만나, 마음이 통하는 또래의 사람들과의 모임에 나도 껴주겠다고 했다. 언니가 나에게 주는 커다란 특권이었다. 평균 연령이 50대인 사람들 모임에 날 껴주겠다니 말이다.


다들 내가 시간 틈틈이 가서 만나는 사람들인지라 안면이 있는 터, 흔쾌히 나의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말씀들 하셨다는데... 죄송하게도 난 사양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와 시간과 즐기는 문화가 틀렸기 때문에 말이다.


대부분 연세가 있다 보니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자리가 잡혀 있었다. 또 다 큰 자식들 덕에 시간 또한 널널하신 분들, 나처럼 늦어도 오후 2시까지 집에서 애들 기다려야 하는 일이 없었다. 거기다 여유 있는 삶속에 속해 있는 그분들과 사고방식 또한 판이하게 틀렸다. 때문에 잠시 잠깐은 몰라도 약속이 담긴 지속적인 만남은 나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정중히 사양했었다.


근래 글쓰기를 관두고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것을 안 언니는 오늘처럼 내게 전화를 해서 함께 점심을 먹자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서 노는 사람도 아니고 미용실 한쪽 구석에 형식상 갖춰 놓은 듯한 작은 싱크대에서 손수 밥을 지으시고 집에서 들고 나왔을 갖가지 반찬들과 찌개 거리를 준비해서 그렇게 날 부르시곤 하신다.


수북이 담긴 밥그릇을 내미는 언니의 얼굴에서 난 모성으로 보이는 사랑을 종종 본다. 새끼 잃은 어미개가 고양이 새끼를 제 새끼처럼 젖 물려 키우듯, 언니는 내게서 허전한 마음을 채우는 듯했다.


점심 메뉴로 비좁은 탁자 위에 모듬 땀과 쌈장, 갓 버무린 열무김치와 참치 김치찌개, 닭도리탕, 알타리 김치가 놓여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6명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서 행복하다는 말을 연실 흘려대며 맛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티타임을 갖고 있으니 시장에서 싱싱해서 사왔다며 누군가 노란 참외를 들고 왔다. 개나리꽃처럼 노란 그것이 또 우리들을 행복하게 했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임박했을 때, 난 아쉬움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타고 왔던 나의 애마(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페달을 밟고 달렸다. 길 옆, 놀이터에 오랜 세월 그곳에 있었을 우람한 나무들이 연두 빛 나뭇잎으로 여름을 흉내 낸 듯 탐스럽고 예쁘게 나부끼고 있었다.


‘어쩌면 저리도 색깔이 예쁘지? 내가 그림 좀 그린다면 그대로 화폭에 담아 보고 싶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게 했다. 잠시 잠깐 낭만을 품에 안았다. 집이 가까워 졌다.


미용실 안에서 떠들어 됐던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 인생사는 거 뭐있다고, 다들 아등바등... 저 봐봐,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 다들 전쟁터 나가거나 도살장 끌려가는 것처럼 삭막하고 슬퍼 보이잖아. 왜 그러고들 살아 ”


그렇게 말한 분은 늘 웃고만 사실까... 그런게 가능은 한 걸까? 매일매일 행복해서 웃는 다는 것이 말이다. 매일 웃고 사는 사람은 머리에 꽃 꽂고 하얀 집에 가야 하는거 아닐까...


많은 연세에도 매일 미용실에 나와서 손톱소지하고 드라이하고 날씨 좋으면 좋아서 나쁘면 우울해서 분위기 맞춰 어디로 놀러 갈까, 주식이 상승세네 곤두박질 치네...하는 생각들로 하루를 보내는 그 분 들께,


“ 그럼 늘 이렇게 행복하세요? 저 분들은 저렇게 살고 싶겠어요? 저분들이 이해되지 않나요? .......”


하고 묻고 싶었지만 다들 기분 좋아 있는데 내 입으로 찬물을 껸질 수 없어서 참았다... 도둑이 제발 절이는 순간이었다.



어찌됐건, 잠시 나 또한 그 행복한 물결 속에서 헤엄을 치고 돌아다니다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미용실 안에서 봤던 밖의 사람들처럼 나또한 비장하고 슬퍼 보이는 표정이 되어서 말이다.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 아빈아, 오늘 네가 와서 언니는 참 좋았다. 여기 있던 어떤 사람보다 네가 제일 부자야. 기죽지마. 기죽을 너도 아니지만...내일도 또 올래? ”


내가 언니를 알듯 언니 또한 나를 잘 알고 있기에 내 아픔을 꼬집어서 위로한 말이다.


인연의 끈이란 참으로 묘하고도 묘하다. 생판 남끼리 이렇듯 애달픈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