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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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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이비, 돌팔이...


BY 일상 속에서 2006-04-21

 

엄마란 무엇일까?

어느 책에서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다.

신이 모든 사람을 돌봐 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고...


엄마란 참으로 강해야 한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해야 할 일들은 많다. 잠드는 그 순간까지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것 들이 너무도 많다.

엄마이기에 앞서 가녀린 여자이고 나약한 인간인데

‘엄마’하고 불리면 슈퍼우먼이나 원더우먼이 되어 버려야 한다니...


결혼 전 내게는 참으로 많은 꿈들이 있었다.

남녀공학이던 학창시절 남자를 주름잡고(외모가 아닌 힘으로, 깡다구 하나로 남자들을 휘어잡았던 그 시절 나의 별명은 깡패였다. 에휴...) 응원단장에 오락부장을 온통 도맡아 하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었다.


“영미야! 우리 목욕탕가서 함께 때 밀자.”


하교시간에 남자 녀석들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얼굴 붉히기는커녕,


“ 알았어. 임마!!! 토요일이라 사람 많을 테니 먼저 가서 기둘려!!! ”

하고 한 술 더 뜨던 그 시절... 개그맨이 꿈이었다.


친구들은 그런 내게 ‘ 넌 개그맨, 충분히 되고도 남어. ’ 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에 도시락 까먹고, 무단 외출까지 감행하며 과자봉지 사들고 몰래 먹다 들켜서 선생님의 꿀밤 세례를 비켜가지 못할 그 시절...


두발과 교복 자율화 시절이었기에 여자 아이들의 차림새는 다양했다. 선생님께 혼날지언정 어떡하든 짧게 입으려는 치마 차림에 계집애들과 달리, 난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지금은 바지의 길이가 길어서 땅을 쓸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지만 그때는 쫙 달라붙는 바지가 복숭아 뼈 위로도 한참 올라가는 것이 멋스런 유행이었다. 짧은 컷트 머리는 고슴도치처럼 쭈뼛대고 하늘을 향했던 외모. 여자치고는 허스키하고 굵직한 목소리... 누가 날 여자라고 봤을까.


겁 없이 날뛰던 그 시절,

난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총각 내(?)가 물씬 풍기는 ROTC출신의 잘생긴 담임선생님의 아부를 받아가며 기세등등하게 학교를 다녔다. 친구들도 내 덕에 틈틈이 짜장면이나 떡볶기같은 분식을 얻어먹는 호사를 누릴 정도였으니 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글짓기나 독후감쓰기 대회...

운 좋게 쓰기만 하면 당선되는 내 덕에 선생님 역시 어깨에 힘 좀 들어갔으니 나의 오만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나에 상상의 나래 속에 등장하는 멋진 남자 주인공이나 왕자님이 활약상이 멋들어진 자작 이야기들은 계집애들로 하여금 쉬는 시간마다 나의 주변을 뺑 둘러앉게 했다. 그때는 작가가 꿈이기도 했다.


그랬던 나였다.


그런 내가 한 남자를 만나고 아이들을 낳고 살림을 배웠다.

처음엔 단추도 꿰매지 못해서 남편이 바느질을 해줬다. 지금은... 눈 감고도 꿰맨다. 손빨래도 하지 못했던 나였기에 남편은 지하 단칸방을 얻고 조금 남는 돈으로 냄비같은 살림보다 세탁기를 먼저 장만해줬다. 그 세탁기, 지금까지 쓰고 있다. 눈높이 역시 한없이 높던 내가 지금은 시장판에 떨이만 찾아 헤맨다.


낭만적이고 활발하던 나의 영감으로 가득했던 머리는 언제부턴가 지금처럼 궁상 속을 헤집고 다닌다.

그래도 시간 틈틈이 글을 썼다. 신혼 초 뽑힌 글로 TV 출연도 몇 번 했었다. 라디오로 채택된 글들로 짭짭한 상품들도 제법 되었다.


그러다 시작한 인터넷 속에서의 작가 생활로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한 싸이트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일 년에 한 번씩, 베스트 작가상을 뽑아서 시상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운 좋게 베스트 작가로 뽑혀서 시상을 하고 인터뷰도 하고 부상으로 노트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 책 출판 제의를 받고 책도 냈다. 살림을 하며 글을 쓰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또 하나의 배움을 얻은 것이다.


일 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에 완성했던 글을 출판사의 제의대로 분량을 늘렸다가 줄였다가 여러 번 수정하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리고 완성된 책 한권... (지금은 그 책이 한없이 엉성하고 잡스럽기 그지없어서 스스로 눈길조차 피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증정용으로 몇 십 권의 책을 보내 주었다. 계약료와 인쇄 값으로 내게 들어 온 돈은 고작해야 2백이 조금 넘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책을 내고 보니 정말 내가 뭔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싸이트 시상식 인터뷰때 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 년에 한권씩 책을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그 약속을 2년째 지키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내가 펜을 잡고 있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주변에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나를 박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성할 거라고 덧붙여준다. 무식이 허를 찌르는 내게 박식... 대성...


이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지난 날 나의 오만까지 한 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 말들이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하는 것으로 들린다. 고작 책 한권 내고 그만이냐고 꾸짖는 것으로 들린다.


나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겠지만... 글이란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것을 이제서 알았기에 한 동안 한 줄의 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엄마이기에 앞서서 한 인간으로 나태하지 않고 뭔가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재능이 잔재주에 지나지 않음을 안 순간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핑계가 좋아서 어린 딸을 팔며...“ 이제 아이가 1학년에 입학해서....” 라든지 “ 2학년이 됐는데 학교에 아이가 잘 적응하지 못하네...” 라는 등의 말 갖지 않은 변명을 늘어놓은 그 날은 밤에 잠까지 설칠 정도다.


연재하다 중간에 그만 둔 3개의 작품들이 아직도 나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누군가 그랬다. 내가 슬럼프에 빠진 거라고... 그 동안 뭘 해놓은 것이 있다고 슬럼프에 빠졌을까?


한없이 부족한 나를 안 순간, 글쓰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나는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내 머리는... 아니, 마음은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문득 문득 꿈속에서 괜찮은 줄거리를 만들고 기뻐하는 나를 본다. 꿈이지만 꿈속에서 조차 그것이 꿈 인줄 알고 꿈에서 깨면 그것을 꼭 줄거리로 삼아야지 하는데...꿈에서 깨어나면 그 영감 역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날 허무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럴 때면 다시 독하게 마음먹었다. 절대...절대...절대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그런 내가 지금 이렇게 에세이랍시고 무언가를 끄적거리고있다. 제일 기뻐하는 것은 역시나 나의 아이들... 엄마의 속도 모르는 녀석들...


\"엄마, 다시 작가 선생님 되는 거야?“

“바보, 엄마는 언제나 작가 선생님이셔. 넌 그것도 몰랐어?”


아이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앞에서 나는 또 다른 다짐을 한다.

나의 무능함을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다.

나의 능력이 이제 막 바닥을 기기 시작한 아기의 실력만큼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늦지 않았다고...


제대로 된 지식하나 머릿속에 든 것 없는 나를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채워 보자고... 그렇게 다짐해본다.

변덕이 죽 끓듯, 때때로 변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미련이 남지 않게 하려면 더 노력이라도 해보자고 나 자신을 그렇게 격려 해본다.


엄마이기에... 망상을 쫓는 어리석은 인간이기에... 그냥 이대로 멈춰서만 있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