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나이가 있었다.
20대는 조국을 위하여
30대와 40대는 가족을 위하여
그리고 50대는 나를 위해 살겠노라고..
산인\" 최 선생님\"은 자신이 설계한 인생관을 실천하려는듯
20대 후반까지는 장교로 군복무를 하였고
30대와 40대는 교직에 몸담으며 성실하게 가족을 위해 살았다 했다.
50대가 되자 교직을 떠나 산인의 삶을 이루고자 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 선생이 태어나고 자랐던 오지마을\"죽장\"에 짐을 풀었다 했다
내나이 30대 후반..그러니까 7년전쯤
죽장이라는 오지마을의 맨 그트머리이자
죽장 계곡물의 발원지인 깊은산골에 산장을 짓고 산다는
내친구의 지인인 \"최선생\"을 만나러 간적이 있었다
여름의 끝으로 기억이 되던 그날 .
포항에서 시간반 가다보니 아스팔트 국도가 끝이나면서
울툴불퉁한 비포장 도로로 접어들었다
삼십여분 아니 그 이상 달렸을까.
승용차 바닥은 돌들이 튕기는 요란한 소리와.
초록잎은 곧 가을을 준비 하는듯이 초록빛의 윤기가 바래져 가고 있었다.
산장으로 가는 촌길 양옆은 산이요 또산이고 산골짜기 따라
맑은 계곡물 소리가 피아노 건반을 통통 두드리듯이 경쾌 했으며
비옥한 들판에 곡식들은 마지막 여름 햇살의 양분을 저장하고 있었다
한참을.
몆개의 구릉을 오르고 몆개의 s자 내리막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작은 채전밭에서는 채 따지 않은 가지 몆개와 약오른 고추 몆개와 함께
최선생이 기거하는 산장이 눈안에 들어왔다.
삐딱한 대지위에 삐딱하게 차를 주차하고 내려오니
주인은 없고 머루랑 다래라는 털이 복슬복슬한 흰 강아지 두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에 어쩔줄 몰라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죽장의 발원지인 첫계곡이 산장앞을 흐르고
쾌 오래된 나무를 지붕삼아 자리잡은 산장앞에서 올려다본
면봉산 자락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이른 오후였지만 다된 저녁 나절 같았다.
말이 산장이지 콘테이너 박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촛불을 켜야하고
얼기설기 나무로 가려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엉성한 부엌이 전부였지만 손님을 맞을 수십개의 스텐 대접들과
수저들과 젓가락들이 사람을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이 전해져왔다
어설픈 부엌 선반위에 가로로 길게 세워놓은 글귀는
지나가던 객의 발길을 묶어놓기에 충분 했다
여보시게 쉬어가게나.
뭬가 그리 바쁜가 .
세상사 시름 이곳에 놓고
한숨 자고 가게나.
최선생이 나무에 직접 새겼다는 시 한구절이
가슴에 턱 닿아 눈물이 핑그르르 돌게 했다
커다란 나무아래 콘테이너 산장문을 열자
아랫목에 검게탄 장판에 옅은 온기가 전해져왔다.
같이간 친구는 산중이라 춥다며 엉성한 부엌으로 들어가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구울거리를 찾고 있었다
넓적한 돌을 깔아 만든 구들이라 한참이 지나야만
달궈진다며 친구는 커다란 장작을 더 넣고 망태기에 있던
감자를찾아 아궁이속으로 던져 넣었다
산장지기 \"최선생\"은 감자가 다 익을즈음 돌아왔는데
최선생의 손에는 산열매가 한움큼 들려있는걸보니
아마도 산열매를 수확하러 산에 오른듯 하였다.
홀로 있는 산장에 뜻밖에 사람이 보이자
\"어쿠 어쿠..이리 먼곳을..\"반가워 하는 그모습이
우리 주위를 맴도는 머루랑 다래라는 강아지 같아.
최선생의 고독한 면이 살짝 비춰지기도 했다.
최선생은 산열매로 담근 약술을 내놓고
계곡물속에서 물김치통을 건져올려 맛들은 물김치 한대접을 담아왔다.
요리의 기교가 전혀 들어있지않은
자연 그대로의 물김치와 계곡물을 떠서 지었다는 잡곡밥이
내입에 그리 달수가 없었다.
최선생의 안내로 일명 \"명상바위에\" 올라가니
희한하게 울퉁불퉁 바위 한가운데 한사람만 앉을수 있는
평편한 공간이 긴세월 풍화작용에 의해 만들어져 있었다
그 편평한 자리에 책상다리를 하고 눈을감고 앉아있으니
산새소리 물소리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소리에
근심도 시름도 비켜가는듯 마음의 개운함을 느꼈었다.
산장을 비울때면 책상위에 \"제가 없더라도 쉬었다 가십시오\"란 메모지를
돌로 눌러놓고 다니니 모르는 이들도 쉬었다 간다며
마당 책상 서랍에 열쇠가 있으니 언제라도 쉬었다 가라며
배려를 아끼지를 않았다
산속에 해는 금방 진다면서 서둘려 준비한 먹거리들을
트렁크에 실어주던 최 선생님
우리가 떠나는 차를 배웅하려
최선생과 달래와 머루가 노을지는 언덕에서
멀리 사라져가는 차 뒷 꽁무니를 보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평화로워 보였던지.
그곳을..
꼭 다시 가봐야지 마음먹고 있던 참에
한 3년전쯤인가 서울에서 친구들이 내려왔었다
두고두고 그 산장이 아른거리며 기억속에 남아 있던 터라
그 산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쌀을 사고 삼겹살을 사고 최선생에게 드릴 계란도 몆판 사서
서울서 내려온 친구들과 그 산장을 찾아갔지만
워낙 꼬불꼬불 시골이라 산장에 같이갔던 친구한테 전화상 물어보고 갔는데도
자욱한 안개 탓인지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기억을 더듬어 다시 가보았지만 산장을 찾지를 못하고 차만 뱅뱅 돌리다가
포기하고 세월이 흘러 내나이 마흔여섯의 4월을 맞이 하였다
그리고 어제 산행 멤버인 예은이네 부부와 우리부부는
죽장 면봉산을 산행코스로 잡았다.
먼지 풀풀 날리는 죽장 골짜기를 들어가면서 7년전 산장갔던 길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서
열심히 차창밖을보며 산장가는 길을 떠올려보았지만
여러갈래 길이라 헷갈려서 아쉬워 하면서 산을 타기 시작했다
면봉산 하산길..
올라왔던 산행코스 반대로 내려가기로하고
우리 일행들은 남들도 우리도 가보지 않은 숲길을 헤치며 내려갔다.
얼마만큼 내려갔나..
사람 발길이 전혀 닿지 않은 길없는 숲속은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야생화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꽃잎을 밟을새라 조심조심 건너뛰며 내려오다보니
친절한 누군가 \"취한체 빈산에 눕고보니 하늘이 이불같구나.\"란 글귀를
코팅을 해서 나무에 걸어놓았다.
우리일행들은 \"햐...취한체 빈산에 눕다..표현좋다 \"한마디씩하며
산을 다 내려오니 \"녹유정\"이란 산장이 눈에 띄었다.
산장지기인듯한 분이 길도없는 길을 어째 찾아오셨냐며
반가움을 표하고 나는 7년전 그 최선생을
혹 이분은 알수도 있지 않을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혹 최선생이란분 아시는지요?\"
\"최선생이라..\"
\'제가 7년전에 산장을 한번 와본기억이 있는데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시다가
산이좋아 오신분인데 ...그런데..이곳이 낮이 익네요..저기 들어오는 언덕길하며..\"
말끝을 흐리며 주위를 살펴보는 내게
\"제가 최선생인데요..\"
아...그러고보니 그산장지기가 최선생이였다.
선한 눈매하며 때묻지않은 말투하며 7년전 그분이였으니..
두번이나 죽장을 헤매다가 돌아갔다고 하자
\"아이고..이 쉬운데를...7년만에 오시다니요..반갑습니다\"
저만치 가던 남편과 일행들을 최선생은 불러세워
\"녹유정이\"라고 씌여진 비닐하우스 카페로 안내를 했다.
며칠전 탑쌓기 준공식에 마시고 남았다는 약초술을 주전자에 가득 따라
숯불위에 석쇠를 얹어 구운 고등어를 때깔좋은 김치와 함께 내오셨다.
7년만에 오메불망 그리던 그곳은 많이도 변해 있었다.
콘테이너 산장은자재를 덧부쳐서 공간을 넓게 만들었고
구멍숭숭 들어오던 부엌도 덜 썰렁했으며
7년전 반갑게 따라오던 머루랑 달래중 달래는 종족번식을 너무 자주해서
다른 산장에 주었다 했다.
7년전 공사중이던 웅덩이는 연못으로 변해서 수달들이 들락거리고
계곡과 산사이에 통나무 수십개를 가로 질러 놓고 자리를 깔아서
사방이 트인 방처럼 꾸며 놓았다
내가 변한만큼 그 산장도 변해 있었지만
세월속에 그대로인것은
선한 눈매에 때묻지않은 최선생과.
명상바위만이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니..
최선생과 만남으로 빠르면 오년후 늦으면 십년후에 나의 전원 생활 꿈이
박차를 가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뒤로 돌아보니
4월에 저녁노을이 푸르름이 머문다는 뜻에
\"녹유정\"산장을 오렌지빛 색으로 채색하고 있었다.
2006년 4월에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