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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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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벚꽃나무, 그 아름다운 윤회


BY 은하수 2006-04-10

호숫가 산책길을 따라

열을 맞추어 심어진 아름드리 벚꽃나무는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일본의 민족성을 대변한다는 명성에 걸맞게

앞다투어 시샘하듯

누구하나 한치 어긋남 없이

활짝 피어나 만개하고 있었다.

 

자그만 꽃송이 하나하나는 너무 가냘프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왜소함이지만

수십년된 벚꽃나무의 기하급수적으로 뻗어난 가지마다

한 목소리로 피어난 수만송이 꽃들의 어우러짐은

경탄이 절로 터지는 화려함의 극치였다.

 

톡톡 터지는 하얀 팝콘처럼 일제히 개화한

왕벚꽃나무 터널 아래를 거닐며

백조가 떠다니는 호수를 바라 보자니

천국이 여기구나 싶어

옥황상제 만나러 하늘나라에 올라간 손오공이라도

된 듯 싶어 우쭐거려졌다.

 

봄을 맞으려 나온 사람들 역시

활짝 피어난 벚꽃처럼

인산인해였고

소란스러웠고

화사한 옷들로 치장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대여해서 타고 다니는

소형오토바이의 소음이 몹시 심해서

꽃들의 고요하기만 하던 아우성이

무색해져 버린 면이 없지 않았다.

 

양지바른 곳에 서 있던 흰 목련도

오토바이들의 야단법석에 기가 질렸는지

활짝 피어난 것도 잠시, 이미 땅 위로 하강 중이었다.

 

조경사의 정성을 담뿍 받은,

커다랗고 둥근 검은색 화분 두개에 나뉘어

소담스레 핀 진노랑과 물파랑의 팬지꽃들은

모처럼 비치는 햇빛을 흠뻑 머금고서

눈부신 조화를 이루어,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한동안 붙잡았다.

 

주욱 이어지는 벚꽃길이 간혹 쉬어가는

광장 지점에는 여러 색깔을 교배시킨 

갖가지 팬지꽃으로 가득한 화단이

역시 이채로왔다.

 

 

이렇듯 길가에 가꾸어져

사람들의 눈길을 기다리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인공의 꽃들도

두말할 나위 없이 고왔지만,

 

저녁 해질 무렵

한적한 동네 골목길을 지날 적에

담장 위로 고개를 빼내어 수줍은 듯 내다보고 있는

키가 후리후리하게 큰

처자를 만났을 때의 감동은... 거의 충격이었다.

 

넉넉한 가지 위에 풍성하고 탐스럽게

벙그러진 검자줏빛을 발하는 자목련의

도도하면서 기품있는 자태는

때 묻지 않은 양갓집 규수의 그것이었지만

저녁의 서늘한 기운을 머금고는 농염한 관능미까지 내뿜어서

마치 왕비의 재목감이 될 처녀같았다.

 

너무 아름다와서 카메라라도 들이대고 싶었지만

차를 타고서 휙 지나가는 순간이어서

눈을 통해 가슴에 아로새길 수 밖에 없었다.

 

해마다 봄이면

그 이름모를 집 앞으로

그 처녀를 만나러 달려갈 것만 같으다.

 

 

데면데면한 성격인 울남푠,

아름드리 나무에 팝콘처럼 만개한 벚꽃들의

대합창을 보며  어렸을적

30년전 처음 심었을 당시에 허약하던 모습를 떠올리며

언제 크나 싶더니 저렇게 아름다와질 줄이야 하며

감개무량해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아름다운 꽃을 가득 피워내어

고색 창연한 자태를 한껏 뽐내는 벚꽃나무를 보며

나이먹는다는 건 두려워만 할 일이 아니고

나이먹는 만큼 아름답게 가꿀 무엇이 있어야함을

새삼 배운다.

 

 

내일이면 비가 와서

언제 후두둑 낙화해버릴지 모를 운명임에도

추운 겨울동안의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오늘이 마지막인 양

여한없이 활짝 핀 벚꽃들을 보며

내 인생의 황금기도

벚꽃이 핀 바로 이 순간임을 느끼며

저 꽃처럼 낙화를 두려워해서는 아니되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도 윤회하여

다시 태어나리라.

저 벚꽃처럼.

 

언젠가는 낙화해야할

운명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또

스스로 위로도 해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