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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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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일기(꽃 심는 날)


BY 개망초꽃 2006-04-06

저번 주부터 오늘은 꽃을 심는 날로 정했다.


카페를 하는 친구를 만나 꽃을 사러 갔다.

꽃에 취해 어찔어찔 춤을 추듯 꽃 속을 걸어 다녔다.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야생화들이었지만

카페 창가에 심기엔 꽃송이가 너무 작고 너무 비싸다.

흔하게 보는 꽃은 육백 원 정도하는데 야생화는 이천 원씩이니 비싸다는 말이 나올만하다.


하얀 마가렛을 골랐다.

연분홍, 진분홍, 연 주황,진주황  색색의 이태리 봉선화를 샀다.

잎만 붙어 있는 한련 화를 한판 담았다.

이름모를 야생화꽃 두 가지를 한판씩 샀다. 이건 좀 싼 편이다.

데이지는 덤으로 받았다.

이 꽃들은 육백 원이라서 한두 판씩 샀다.

이건 카페 사장인  친구가 샀다.


야생화를 심고 싶어서

비싼 애기별꽃, 메발톱,물망초,이름모름 들꽃을 두 개씩 샀다.

이건 직원인 내가 샀다.

낮 시간 동안은 내 카페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장사를 할 것이고

친구도 내가 알아서 장사를 하고 화단을 가꾸라고 했다.

호미와 거름흙을 사니, 총 팔만원정도 들었다.

친구 차 트렁크에도 뒷좌석에도 꽃으로 초만원이다.

꽃향기에 취해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창에 달린 나무로 짠 화분은 내려지지 않는 그 자리에 고정돼 있는 거라서

창가에 매달려 꽃을 심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창에 달린 기다란 화분이 7개였다.

전에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꽃을 심지 않아서

흙은 영양가 없이 말라 푸석푸석 살비듬이 떨어졌다.

호미로 파 엎어서 거름흙을 섞어가며 꽃을 심었다.

먼지만 덮고 있던 죽어 있던 화분이 하나씩 하나씩 생명을 받아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가렛은 노란 꽃술을 갖은 하얀색 꽃이다.

이 꽃이 만발하면 하얀 원피스 입은 소녀 같다.

이태리 물봉선화는 꽃잎이 나비를 닮고 색이 다양하다.

가을까지 삶을 사는 정열적인 꽃이다.

한련 화는 향기가 독특하다.

꽃보다는 잎이 연잎을 닮고, 항상 싱그럽다. 그래서 한련 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꽃이 자잘한 이름모를 들꽃은 짙은 분홍색과 흰색인데,

꽃잎이 너무 작아서 친구는 꽃이 안보일 것 같다고 내키지 않아 했지만

내가 믿고 사라고 했다. 보기보다 심어놓으면 예쁘다고.

사실 맞는 말이다. 야생화는 꽃이 너무 자잘하고 약할 것 같아서 볼품없지만

심어 놓고 보면 실증도 안 나고 보면 볼수록 정이 간다.


카페 전체 분위기는 목가적이고 프랑스풍이다.

그릇과 허브 꽃으로 유명한 프로방스 카페랑 닮았으니까 모방 카페인 것이다.

나무 의자에 하얀색 수성페인트를 칠하고, 테이블엔 하얀색 테이블보가 씌어져 있고

긴 꽃무늬 천으로 포인트를 주었고, 나무 의자엔 꽃무늬 쿠션이 몇 개씩 놓여 있다.

그래서 맘에 쏙 들었다.

그래서 친구가 카페일을 도와 달라고 할때 들꽃 같은 꽃을 심고 싶어서

망설임도 없이 좋아 좋아 했었다.


 

바람에 벗어 놓은 옷이 날아가 땅바닥에 엎어져 있다.

흙먼지가 얼굴과 눈에 들어가서 잠깐씩 숨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화분이 바람을 이기지 못해 엎어지기도 했다.

꽃들은 이제 막 세상을 접한 새끼처럼 여리고 나약해보인다.

그러나  비바람을 맞고 풍성하고 실속 있게 자랄 것이다.

다시 나는 오늘 심은 꽃처럼 출발선에 서 있다.

막 태어난 개새끼처럼 발발 떨리긴 떨린다.

끝은 시작을 예고한다더니 끝이었던 것들이 다시 시작이란 이름으로 정신 집중을 하게 한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흠뻑 넘치도록 줄 것이다.

꽃들에게 나의 힘을 몰아넣을 것이다.

카페가 잘 되고 못 되고는 나중 이야기다.

한동안은 꽃에 파묻혀 꽃순이가 될 것이다.


다 심고 나니 어느 사이 사방에 전기불이 켜졌다.

이 골목은 밤에 술장사를 하는 카페 촌이다.

본격적으로 술장사를 위해 불콰한 홍등이 켜졌다.

손님이 술에 절고, 종업원이 술에 불콰해지는 곳.

온 동네가 술로 불콰해 지는 곳.

내가 장사를 하는 낮 동안은 꽃들이 불을 켜는 꽃카페로 변장을 하는 곳.

오늘은 술동네를 꽃을 심어 변장을 시켰다.

엄청 보람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