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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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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뭉쳤다


BY 동해바다 2006-04-03


        삐이~~~~~~~~
        입술이 부르트도록, 오랫만에 배가 아플정도로 버들피리 불며 웃어 보았다.
        실로 몇년만에 불어보는 버들피리며 얼마만에 아픈 배 잡아가며 웃어보았을까.

        아이같은 어른들,
        함께 할 수 있음이란 통하는 그 무엇이 있기에 가능하다.
        자연을 사랑하고 또한 그 속에서 오가는 대화에 수긍하며 삶의 질곡을 조금은 풀수
        있어 너무나 좋은 자리다.

        기온이 하룻밤 사이 10도나 올라 초여름을 방불케 했던 봄날이다.
        진달래 산동백 가득하니 색색이 내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산..
        그 산속에서 푹 젖여있다 돌아오니 한결 가벼워진 몸뚱아리다. 
        겨우 몇시간밖에 되지 않지만....

        산 입구에 심어놓은 야생화들이 삐죽삐죽 올라오기 시작했다. 
        금낭화 매발톱 제비꽃 단풍취 무릇 용담 바위취 등등...
        작년 이 산으로 내려오면서 처음 보았던 얼레지와 수종의 야생화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 그간 감기로 심하게 앓다보니 많이 약해졌나보다.
        산으로 치지 않던 이 길이 벌써부터 다리가 풀리고 호흡이 가빠져오니 말이다.
        기온 탓도 있지만 땀이 등줄기를 타고 주르륵 내려오고 벌써 얼굴은 땀범벅이 되어
        복면처럼 가리고 있던 마스크가 푹 젖어버렸다.

        마른 흙더미에 피어있는 하얀 남산제비꽃이 쪼르르 줄지어 서있다. 
        앙증맞은것 같으니라구....
        연보랏빛, 진보랏빛 제비꽃들도 함께한다.
        제비꽃의 종류가 그리 많은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노랑제비꽃 남산제비꽃 졸방제비꽃 단풍제비꽃 털제비꽃 고깔제비꽃...휴..
        아는게 병이라. 지나치며 어? 제비꽃이네 하고 지나가던 내가
        어머 남산제비꽃이네 어라 이건 무슨제비꽃이지...이렇게 변하고 말았으니
        어찌보면 내 스스로 복잡하게 만들어버리는 삶을 택하는 바보아닐까 싶기도 하다.

        진달래 꽃잎 몇장 떼어 맛도 보고, 산수유처럼 노오란 생강나무 꽃잎도 맛을본다.
        봄맛이 쌉싸롬하다.
    
        처음 올라가본 사람에겐 힘든 산일지 몰라도 여느 고지산행도 마다않고, 
        백두대간이라는 험한 산길도 날씨에 관여치 않고 타는 내가 오늘은 쩔쩔맨다.
        그때마다 다른 컨디션이 사람을 힘들게 한다지만 오늘은 왜 이럴까.
        세상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란 마음비우기가 아닐 듯 싶다.
        나도 모르게 고르는 서적이 매번 마음을 다스리는 책인걸 보면 그것도 병인 듯...

        뺑 돌아 내려오는 산 길목옆에 자릴 잡았다.
        늘 이 자리에 앉아 커피한잔 마시고 내려가는 자리였다.
        계곡물 소리들으며 쑥쑥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가 새록새록 잎사귀를 달고 있다. 
        음료캔 몇개, 오렌지 하나 그리고 가져간 매실주 한병..
        조촐한 메뉴에 버드나무 몇가지 꺾어 버들피리를 메뉴로 얹었다. 

        입으로 불어 나오는 소리음이 각기 달라 한바탕 배를 움켜잡고 웃는다.
        웃을 일도 아니건만, 무에 그리 웃음이 나오는건지 모르겠다.
        다들 그 어떤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 가는걸까. 각자 푸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하나가 되어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일에 깔깔거리며 체내의 묵은
        찌꺼기를 토해낸다.

        졸졸 흐르는 냇물소리가 비가 와서인지 제법 우렁차다. 
        한참을 웃다가 두손 모아 물도 한모금 마신다. 무릉도원이 따로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이 한 가족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이고 형제이고, 친 혈육이라면....
        한가족이 모여 이렇게 배꼽잡으며 웃을 일이 어디 있을까. 기껏해야 TV 오락프로 
        앞에서나 웃어대면 그게 다이지싶다.

        서울에서 하숙하며 대학다니는 아들도, 
        올해 입시를 앞둔 딸도, 나를 사랑한다고 오버액션 취하는 그이도 
        모두가 따로국밥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한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모여 웃을 일이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설악의 험한 능선을 함께타고, 초록이 제 색을 한껏 발휘하던 유월의 야생화산행..
        몇 번의 자리를 함께했던 어제의 용사들이 또 한번 뭉친 오늘이다.
        동갑도 아니요, 성별도 같음도 아니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같은 자리를
        거듭 만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음일까.

        마알간 동심이 가득한 어른들이다.
        꽃을 보며 똑같이 환호를 터트린다.
        약간의 음주 속에 오가는 대화를 너무나 즐긴다. 
        이런 공통점일까..

        산을 좋아한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는 친해질 수는 없다....
        작년 5월쯤인가. 잔설이 남아있는 틈 사이로 삐집고 올라오는 얼레지의 개화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산으로 안내하여 주신 어른이자 산동무..
        산 꼭대기 정상에서 두어시간을 앉아 진지하게 서로의 얘기를 토로했던 사이다.

        여유의 시간이 있기에 가지고 갔던 과실주로 한잔씩 건내다보니 마음 안에 꼭꼭 
        숨기고 있던 얘기들이 술술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서로의 모습을 확인했던 것 같다.

        물 흐르는 소리와 삘릴리 버들피리 부는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퍼져나간다.
        내려오는 길에 얼레지 꽃이 만발하였다.
        똑같이 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맴맴돌며 꽃 들여다보기에 여념이 없다.
        빈 손으로 가 카메라에 담지못한 아쉬움이 컸다. 길가에 피어 있는 얼레지가 
        사람들의 손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너도나도 야생화를 키우는 요즘에는 멸종위기까지 가는 야생화들이 많다고 한다. 
        차라리 깊은 산중, 소리없이 피다 지는 그 고요하고 귀한 시간을 누림이 좋지 않을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깨끗해 보인다. 
        호탕하게 웃고 실컷 봄 산을 느끼고 맛 보고 온 오늘...
        매일매일 오늘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 봄 찍어둔 야생화 (노란표시 안의 꽃 \'얼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