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 3월 春 바람이 살랑살랑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다.
느낌좋은 날, 뺨 위에 와 닿는 감촉이 갓난아기의 살처럼 보드랍다.
따뜻한 봄의 기운은 옷차림도, 표정도 모두 밝게 만들어 준다.
주부들의 일상이 안겨다 주는 땟국도 말끔히 씻어내고 있다.
어슬렁거리며 남아있는 꽃샘추위가 찾아올 법한데 며칠째 이어지는 상승기온으로
내 입은 하마 입처럼 크게 벌어진다.
\'아함\' 길게 토해내면서 두 손 깍지 끼고 쭉 뻗어 위로 올리니 움츠렸던 가슴이 확 펴진
다. 우두두둑 소리 내며 정렬하는 뼈들의 움직임, 긴긴 겨울 늘려만 갔던 뱃살이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발끝까지 시원하다.
무료한 한낮은 늘 오수를 불러들인다.
그 공백을 깨려 마당으로 나간 나는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마른 잎들의 어지러움에
불장난을 하기로 맘 먹었다.
푸릇푸릇하게 올라오는 원추리가 일색인 좁은 화단, 좁지만 그래도 여유가 있는 빈틈을
이용해 흙을 파내고 그 속에 마른 나뭇가지들을 톡톡 분질러 넣고 낙엽을 소복하게 쌓았
다.
휘발유를 조금 뿌려준 다음 찢어놓은 신문지에 불을 붙여 가까이 대니 불이 확 타오른
다. \'탁타다닥\' 튕기는 듯 그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들려온다.
순식간에 타버리는 소량의 놀잇감, 잿빛흔적은 바람의 방향 따라 흐느적대다가 끊어졌
다. 금새 사그라져 버리는 아쉬움에 두리번거리며 놀잇감을 더 찾았다.
화분들 사이에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나뭇잎도 있고, 쓰레기통에도 건초더미가 하나 가
득 들어있다. 쓰레기도 줄일 겸 불구덩이에 조금씩 올려놓고 손바람을 일으켜주니 사위
어 들어가던 불씨가 다시 활활 타 올랐다. 시원스레 타들어가는 모양새를 보니 묵은 체
증이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다.
집어넣을 뭔가를 찾았다. 내 안에 남아있는 찌꺼기를 꺼내 태워버릴까.
원망, 욕심, 미움 등 버리지 못한 마음속 앙금이 아직도 빠져 나가지 않고
나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참에 태워버리자. 타들어가는 잿더미 속에 이 모두를 던져
넣고 부채질을 했다. 시원하다.
모두 태워버리고 검은 재만 남았다.
아직 불씨는 남아 있지만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니 \'지지직\' 소리를 내며 연기를 올려 보
낸다. 남아있는 불씨를 확인 사살시키고 흙으로 일단 덮어 놓았다.
지저분한 건초더미와 낙엽들이 깔끔히 정리되었다. 미루었던 일이 아니고 재미삼
아 벌렸던 놀이였기에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불을 가지고 노는 일, 불놀이를 하다보면 그 어떤 쾌감을 느끼곤 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움직임에 자유로움 짜릿함을 느끼며 흥분이 고조된다.
심리적으로 흥분작용을 불러일으킨다는 불놀이, 잠이 들면 긴장되었던 근육과 정신적
흥분 등이 이완되면서 자율신경이 풀린다고 한다.
스멀거리며 봄의 전령이 기웃거리는 3월,
오수는 밀려나고 한바탕 불과 노닐고 나니 혹여 오늘밤 저지레를 벌이지 않을까.
긴장해야 할 나의 세포조직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