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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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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친구 사이


BY hayoon1021 2006-03-22

 

 

오랜만에 메일이 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윤희였다. 윤희는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씩 이렇게 짧은 메일을 보낸다. 처음엔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윤희가 고마워서 정성껏 긴 답장을 써 보냈다. 하지만 한 번도 윤희의 두 번째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한데 그 일이 까맣게 잊어질 무렵이면 또 다시 윤희는 짧은 메일을 보냈고, 나 역시 답을 보냈지만 윤희의 답장이 이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중에야 그게 윤희 방식임을 알았다. 꾸준한 교류보다는 저 내킬 때만 한 번씩 연락을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내 방식은 또 그게 아니어서, 이제는 윤희가 반갑지 않다. 

윤희는 고등학교 때 몰려다니던 다섯 친구 중 제일 예뻤고 공부도 잘했다. 상고를 나와서도 대학에 진학했고 공무원까지 되었다. 한때는 목표의식이 분명한 그 애가 내 친구라는 게 자랑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장점은 곧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윤희는 입시나 취직준비를 할 때면 아무 말 없이 연락을 뚝 끊었다. 그렇게 몇 달이고 잠적했다가도 제가 한가해지면 요란하게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한 마디로 자기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친구를 조종할 수 있다는 태도였는데,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또 어찌나 깍쟁인지, 우리들 연애담은 시시콜콜 다 챙겨들으면서 막상 자기 얘기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윤희의 결혼식 날에야 겨우 신랑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둘이 7년 연애한 사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윤희는 특히 나와 친했기 때문에 내가 느낀 배신감은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컸다. 그렇게 몇 번 실망하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진심을 갖고 윤희를 대할 수 없게 돼 버렸다.

깍쟁이 같은 성격처럼 윤희의 메일은 늘 짧다. 이번 메일도 언제나처럼 다섯  줄을 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 건망증이 심해질수록 옛 친구에 대한 추억은 더 선명해져서 내가 많이 보고 싶단다. 이보다 더 감동적인 편지가 어디 있을까마는 내 마음은 그저 덤덤하기만 하다. 다만 옛 친구가 보고 싶다는 그 심정은 알 것 같다. 마침 나도 한 친구가 그립던 참이었다.

요즘 나는 학창시절에 써놓은 일기들을 꼼꼼히 읽고 있다. 그 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친구가 바로 영애다. 영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만나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고등학교는 서로 달랐지만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계속 만났다.

일기 속에는 별별 얘기가 다 들어 있다. 뚱뚱한 영애와 함께 다니는 게 창피했던 거며, 아버지와 유난히 사이가 좋은 영애를 질투했던 거며, 처음으로 같이 소주를 마셨던 일이며, 전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숨어 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쪼르르 영애한테 달려갔다. 불화가 끊이지 않는 우리 집과 달리 영애네 집은 언제나 따뜻한 분위기였다.

그런 영애가 부러운 나머지 유치한 짓을 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와 죽이 맞아 뒤에서 흉을 본다든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영애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저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나 스스로 조바심이 났던 것 말고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영애는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차츰 연락이 뜸해질 때도 걱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끝날 사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수첩에 남아 있는 전화번호로는 더 이상 영애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달리 수소문해볼 데도 없다는 걸 깨닫자 엄청난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도대체 어쩌자고 지난 몇 년을 그냥 흘려보냈을까? 애 둘 키우느라 바빴다는 핑계 같은 건 대고 싶지도 않다. 미움보다 더 나쁜 무관심으로 일관해왔던 벌을 나는 지금 톡톡히 받고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내 주변에는 친한 친구가 없다. 원래 혼자 잘 지냈기 때문에 불편하진 않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입이 아프도록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내 집에 들일 성격도 못 된다. 그래서 더 영애가 그립다. 영애라면 그간의 공백쯤은 아무 문제도 안 될 것이다. 영애라면 남편 직업도 술술 말할 수 있고, 돈 문제도 털어놓을 수 있고, 아이들 자랑도 막 보태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애라면 집이 지저분해도 상관없고, 점심때 아무 거나 있는 대로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중한 친구를 나는 그만 놓치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이성간의 사랑에 주목한다. 두 남녀의 마음이 맞아떨어지면 내 일처럼 기뻐하고, 짝사랑이면 내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정이 엇갈리는 것도 참 슬픈 일이다. 윤희는 나를 원하고 나는 영애를 원하는 모양새라니! 나이 마흔에 아직도 이 친구 저 친구 가리려 드는 내가 딱하기도 하다. 영애든 윤희든 옛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무조건 반가우려면 앞으로 10년쯤 더 철이 들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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