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고은 봄날입니다.
큰아이 학교에 보내고 약간 뜸을 들였다가 둘째 세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랜만에 우리 부부는 아침 커피를 마셨지요.
그리고는 우리 아이가 어제 타온 장학 증서를 보면서 지난 세월의 고통이 떠올라
가슴이 울컥 하였답니다.
올해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였답니다.
이곳은 지방인 관계로 고등학교 입시를 치루는 실정인데 우리아이가 들어간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는 들어가는 것만도 쉽지 않은 곳이랍니다.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특수고등학교의 특성을 끼로 있기때문에 전국 각처에서
우수한 아이들이 밀려오기 때문이랍니다.
그런 학교에 우리 아이가 입학을 하면서 \"1학기 장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장학증서를 가져왔습니다.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던지....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한참을 울었답니다.
지난 세월의 회환으로 더 가슴이 저며왔습니다.
우리아이 1학년 겨울 방학때부터 시술받은 뼈 연장 수술이
아이가 2학년이 되어서 그 10월까지 의료기를 설치한체 학교엘 다녔답니다.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고통으로 가슴이 멍울 멍울 하답니다.
그속에서도 악착같이 공부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나는 맨날 눈물로
양식을 삼고 살았답니다.
학교에서 애가 얼마나 질문을 많이하는지 교무실 문고리를 잡고사니
선생님들도 엄청나게 시달렸지요.
오죽하면 선생님 입에서
\"야! 임마 나 월급 얼마 안타거든 나 월급 타는것 만큼만 질문해 .\"
하는 얘기가 나왔겠어요.
물론 농담인줄은 알고 있지요.
그도 그럴수밖에요.
다리때문에 학원엘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니 학교 선생님들께 의존 할수밖에요.
아이의 그런점을 예쁘게 봐 주시다가도 가끔씩 성가시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진짜 진짜 미안한 선생님은 우리 아이2학년때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고마우신 김효숙 선생님.
저희는 불편한 아이 담임을 맞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아주 잘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우리같이 교육열에 불타는 학부모도 엄청나게 부담스럽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죄송할수밖에요.
선생님께서 이런 저런 일들을 모두 감싸 앉아주셨어요.
그런속에서도 성적을 잘 지킬수 있었던것도 선생님의 숨은 노고였다는것
잘 알고 있답니다.
학교를 떠나면서 이런 속마음을 선생님께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그냥 졸업을 하였답니다.
이제 3년 잘 버텨야 할텐데.
하긴 3년의 세월로 끝날애가 아니지요.
우리 아이 사법고시에 꿈을 걸거든요.
경영학을 전공해서 로스쿨에 진학한후 사법고시에 도전을 해볼 생각이에요.
아이가 밤 10시 30분에 돌아오는데 오늘부터 12시에 돌아오겠다내요.
요즘 운전 연수를 하느라고 남편에게 구박을 좀 받고 있지요.
저도 이해가 안가는 것은 왜 그렇게 운전을 못하는지.
위험 천만이거든요.
그러니 남편에게 구박을 받을수밖에요.
아무튼 아이를 기르면서 부부라는 이름이 얼마나 감내해야 할일이 많은지
새삼 실감한답니다.
그리고 잉꼬 부부가 되었어요.
애때문에 남편에 비위를 이것 저것 다 맞춰야 하니까 그렇게 되드라구요.
아이를 아침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데려와야하고.
애를 데릴러 다닐때도 항상 둘이다니니 들눈에 잉꼬 부부로 보일수밖에요.
큰일부터 작은일까지 모든것에 감사할뿐입니다.
세월을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견딜때마다 절규하는 대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아픔을 함께 겪어내야하는 남편이 왜 그렇게 가엽은지 모르겠어요.
얼굴에 깊은 주름이 패여가는것도 딱하고 허리가 허연해지는것도 딱하고.
인생은 그런것 같아요.
사랑보다는 이해하는것이 더 중요하고
이해하는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용서인것 같아요.
지난세월 그 어려움 다 겪으면서 남편을 미워하고 원망하고 했었는데
그 분노가 지질 지질하다못해 하늘을 찌를 심정이었는데
어느세 아픈 세월을 견디는 사이에 다 녹어 없어지드라구요.
이제 내 아이 가는길에 끝까지 등불을 밖혀주는것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