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은 저마저도 엄마한테 오면, 아빠가 너무 힘들것 같다면서
지는 아빠랑 있고, 작은놈은 어려서부터 지아빠랑 뜻이 안맞으니
엄마랑 있었으면 좋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세상에 형제라곤 둘뿐인데, 그것들을 떨어트려 놓다니 용납 할 수가 없었다.
둘다 지가 키우던지, 날 달라고 수백번 이야기 했다.
착하기만한 큰놈은 데리고 있고, 까탈맞은 작은놈은 날더러 맡으란다.
둘 다 주지 않으면,
눈치 빠르고, 카리스마있는 작은놈을 지에비옆에 두워야,
그나마 아들눈치에 불편할 것이라, 그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작은놈은 끊임없이 나와 함께 있기를 원했다.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혼자 산다는 것,
혼자 독립하여 살아야 한다면 아무렇게나 살고 싶지는 않았다.
진작에 갈라서고 싶었지만,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수근거림때문에, 참고 또 참았다.
그래 큰애가 대학만 들어가면,
뒷바라지를 핑계로, 아들에게 자주 가는것으로 위장하고,
이혼을 하던, 별거를 하리라 결심을 하면서 견뎠다.
근 2년동안 참아오다, 끝내는 아들의 수능 몇달을 앞두고,
더이상의 인내는 부질없다는걸,
나의 마지막 인내심이 깨지는 순간,
그날로 트렁크 2개를 챙겨 나왔다.
시어머니를 찿아갔다.
차마 가슴아프실까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어머니도 이제는 아실때가 됐습니다. 제가 지금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길로 집으로와 트렁크 2개를 들고 나왔다.
\"함께 사는것만이 최선은 아니다.
아름다운 부모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차라리,
떨어져 있으면, 모두가 평온할것 같다\"고 말했다.
아들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갈등했다.
\"너희들이 원치 않는다면, 죽을힘을 다해서라도 수능 볼때까지 만이라도 참겠노라\"고
아들들은 내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엄마 저희들은 괜찮으니까 차라리 이혼하세요\"
우리셋은 마지막 포옹을 하고, 그렇게 내 아들들과 헤어졌다.
그때까지도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새벽 1시 30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
몇번이나 몇번이나 갓길에 서야만 했다.
그렇게 난 독립의 길을 내가 택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을만큼 모든것이 두려웠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왠지모를 해방감과,
실낱같이 가느다란 한줄기 희망을 예감하면서,
첫발걸음을 내딪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으리라.
나는 품격있는 인생을 만들리라.
아무것도 믿을만한 구석이 없었지만,
준비한 그 무엇도 없었지만,
내 인생을 소모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나는 저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리는 없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다짐하고, 세뇌하면서,
나는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도 아주 도도한 발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