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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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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삶(소진)


BY 개망초꽃 2006-03-06

소진이는 고등학교 삼학년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두고, 친척들을 두고, 여고 친구들을 남겨 두고 추억 하나만 달랑 가지고 새가 되어 미국으로 날아갔다. 새가 되던 날 소진이는 청바지에 파란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앞머리를 핀으로 꽂고, 미지의 세계로 손을 흔들며 날아갔다.


얼굴이 작고 코가 오뚝했던 소진이는 사진이 잘 받았다. 실물보다 사진이 예뻤던 친구로 기억한다. 실제로 소진이는 미스로스엘젤레스 후보로 추천을 받았지만 나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키가 크고 미인이라서 그럴만하다. 우리 시절엔 키가 크고 얼굴까지 예쁜 여자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미스코리아 후보로 추천 받았다는 것이, 내 친구들 중에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다. 거기다 사진까지 잘 받았으니 후보로 나왔으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는다.


소진이는 학창시절에 영어를 아주 못했었다. 영어책 읽기조차 힘들었던 소진이는 영어 시간만 되면 몸과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안절부절 이었다. 공부엔 영영 취미가 없던, 특히 영어는 영영영 취미가 없던 소진이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할 때 , 소진이 자신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영어를 그렇게 못하는데 큰일이구나 속으로만 걱정을 했다. 소진이 말로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해서 공부를 할 생각조차 안했다는데, 그럼 공부는 재껴둔다고치자, 그럼 영어는 왜 그리 못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미국으로 갈 때까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학창시절엔 영어를 표 나게 못했어도 지금은 최고 잘하지 않는가.


소진이는 목소리가 양은그릇 떨어지는 소리 같다. 흙바닥에 떨어뜨린 소리가 아니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가 난다.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 톤이 좀 높으면서 뭐가 바쁜지 바쁜 듯 항상 서둘러서 소진이가 얘기를 하면 나도 덩달아 서둘러야만 했다. 성격이 명랑하고 활달했고, 행동하는 것이 여자답지 않고 남자 같았다. 학창시절 기억으론 그랬다. 그 후 여성스러워 졌는지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는지는 몰라도, 더펄이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만나니 화장을 진하게 하고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한 것을 보니 여성스러워졌다는 게 맞는다. 아니 원래 여성스러웠을 것이다. 내가 그걸 몰랐기 때문이지.


미국으로 날아가고 몇 년에 한번씩 한국으로 다시 날아 들어온다. 고향 품이 그리워 철새가 되어 날아 들어올 때마다 소진인 미국 사람다워졌다. 겉모습도 행동하는 것도 미국인스럽다. 겉모습은 화장이나 옷 입는 것이 그렇고 살이 미국여자처럼 배 쪽으로 모아지는 것이 그렇다. 행동하는 것은 일단 몸으로 표현을 아낌없이 한다. 만났다하면 포옹을 하고 얼굴을 비비적거린다. 한국말은 까먹지 않아서 별 다를 건 없지만 발음이 한국식 미국 발음이 섞여있다. 그래도 소진인 한국 사람이다. 특히 음식을 한국식만 먹으려 하고 학창시절에 즐겨 먹던 군것질을 사 먹으려고 길거리를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특히 포장마차 길거리표 간식거릴 엄청 나게 좋아한다. 우린 지겨워서 먹기 싫은 꼬챙이 어묵, 설탕 줄줄 호떡, 구수한 번데기, 양념한 구운 오징어, 겨울 냄새 군밤, 미국엔 비슷한 게 있긴 한데 여기처럼 맛있지 않다고 한다. 많이 먹지도 않으면서 줄줄줄 사고는 뒤처리는 우리 몫이였다. 암튼 이번에 친구들이랑 여행가면서 간식을 쉴 사이 없이 먹었다. 껌도 미국에서 한 상자를 사왔다고 한다. 미국 사람이 껌을 좋아한다더니 25년을 미국에서 살다보니 미국 사람을 닮았다. 당연한거겠지.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세월이 더 길었으니.


소진이에겐 아픈 사연이 있다. 별로 아팠다고 표현을 안 하지만, 소진이는 자식을 못 낳는다. 임신을 단 한번 했었다는데 바로 유산이 되었고, 아이가 생기질 않는다고 한다. 확실한 원인을 물어보지 않았지만 소진인 학창시절에 생리를 하면 생리통으로 결석까지 할 정도였다. 심한 생리통하고 임신을 못하는 것하고 어떤 이해타산이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임신이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진이는 초혼이었는데 남편은 재혼이었다. 거기다가 나이 차이가 열세 살이나 많이 나는 사람이었다. 소진이 집안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소진은 그 남자랑 도망을 쳐서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결국은 그 남자랑 결혼을 해서 이젠 남편이 되었지만 그 사이에 자식이 없다. 남편은 재혼이라 전처소생의 자식이 둘이나 있으니 아이를 못낳는건 소진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건 기정사실이고, 어찌 보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소진이는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자식을 못 낳는데 초혼인 남자와 결혼을 했으면 자식 때문에 더 큰 아픔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슨 일을 당하고 그 걸 액땜이라고 여기면 살아가는 것이 훨씬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다. 소진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팔자에 자식이 생기면 자식이 죽던지 자식으로 인해 너무 아픈 일들이 많다고 한단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스스로 달래던 친구 소진이, 이런 소진이는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결혼을 하면 신부 화장은 자기가 해 준다고 하더니, 소진이의 직업은  백화점에서 화장품 대리점 점장으로 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준다고 화장품을 가지고 와서, 아이크림은 두 가지를 펴 바르라며 눈가에 늘어나는 잔주름 걱정을 해 주었고, 색조 화장품을 골고루 가방에 담아서 한 가방씩 주었다.


돈 많은 중년 아줌마처럼 옷을 입고, 앞머리를 세우고 ,긴 머리를 올려 특이한 머리핀을 두 개나 꽂은 친구, 양쪽 손가락에 알 큰 보석 반지를 끼고 거기에 맞춰 귀걸이를 만날 때마다 바꿔 달고 나오는 친구, 여전히 양푼 떨어뜨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호들갑스럽게 웃는 친구, 한국입맛을 못 바꿔서 길거리표 군것질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친구. 자식이 없어도 남편하고 다정하게 잘 사는 미국인이면서 한국인인 친구, 그리고 여고시절 추억을 제일 많이 기억하며 들먹거리는 소진이는... 한국에서 기억은 여고시절로 끝나 있어서 잊혀진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다시 찾아준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