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시절 친구들을 이년만에 만났다. 한 친구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다니러 오는 바람에 우리 넷은 이 년 만에 뭉치게 되었다. 여고 2학년 때 둘씩 앞뒤로 앉아서 도시락 까먹고 밤새워 공부를 하고 소설책을 돌려 읽고 대학가요제 가사를 외우던 유일무일하게 남아 있는 학창시절 친구들이다.
풀 먹인 똑같은 교복을 입고, 귀밑일 센티 단발머리를 하고, 반에서 키가 큰 편이고, 대체적으로 예쁘던 우리 넷은 우정을 깊고 길게 나누었다. 그 시절엔 이 친구나 저 친구나 별반 잘난 것도 그렇다고 못난 것도 없이 서로 비슷해서 친구가 됐고, 통하는 게 많았기에 친구로 오랜시간동안 남아 있게 되었다.
십대 때 우리는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달랐지만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삶들을 살고 있다. 여고시절의 삶은 공부하고 수다 떨고 놀고 책보고 일상이 비슷했지만 중년이 된 우리는 네 사람 모두 각자의 삶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살고 있다.
짝이었던 희수는 넷중에서 일찍 남자를 안 조숙한 친구였다. 옷도 맞춰 입었는데, 맞춘 옷값을 주지 못해 외상 때문에 허덕이기도 했다. 입이 큰 편이어서 사진을 찍으면 입에만 확대경을 달아놓은 것 같아서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았고, 활달한 성격이라서 남자 친구 얘기를 떠벌떠벌 떠벌렸었다. 나는 희수 덕분에 남자랑 어떤 감정으로 만나는지 알게 되었고, 키스를 어떻게 하는 건지도 알게 되었고, 희수로 인해 남학생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희수는 남자친구를 만나면 가끔 날 불러냈다. 남자 친구가 한둘이 아니어서 헷갈리지만 딱 한 친구는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그 남자친구는 호리호리한 편이었고 서라벌에 다니고 있었다. 공부를 잘한다고 자랑을 했댔고, 희수랑 키스도 해 봤다고 했다. 두세 번 정도 같이 만났는데, 한번은 같은 반 친구를 데리고 나왔는데 그 친구는 공부를 더 잘한다고 잘난 척을 해서 난 그 자리가 불편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희수랑 서라벌이랑은 헤어졌는데, 그 이유는 야간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주간도 못가고 야간을 갔다면 중학교 때 공부를 지질이도 못해 놓고 잘난 척을 했으니 주간이었던 희수는 무시의 대상이었고 주간인척 속였다는 것이 헤어지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다음 사건 때문에 희수의 남자친구를 더 기억할 수 있었다. 여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데 희수 남자친구라며 전화가 왔다. 그러더니 자꾸 나보고 만나잔다. 희수보다 나를 더 좋아했다고 하면서 데이트 신청을 했다. 일부러 나간다고 대답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다. 그랬다. 희수는 남자를 여고 때부터 여럿 사겨봐서 여자친구의 친구를 좋아한 별스런 남자친구까지 다 있었다.
희수는 명랑한 성격에 말도 잘했고, 친구들을 좋아해서 희수네 집엘 제일 많이 갔고 희수네 서 밤을 새워가며 놀기도 했다. 희수는 노래를 잘하고, 유행하는 가요를 가장 먼저 퍼트린 친구이기도 하다. 제 1회 대학가요제가 여고 2학년에 열렸는데, 작은 전축을 학교에 가지고 와서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틀어 주었고, 난 그때 처음으로 레코드판을 보았다. 대학가요제 입상한 노래는 다 외워버렸고, 희수가 산울림 노래를 좋아해서 나도 덩달아 산울림 노래를 희수와 함께 밤을 새워가며 들었다. 대학가요제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하늘’이었다.
“작은 구슬 모래알이 물 결속에 부서지고 구름 걷힌 저 하늘엔 말고 고운 무지개~~”
희수가 좋아했던 노래는 ‘젊은 연인들’이었다.
“다정한 연인이 손에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자주 걸었나보다, 여고시절 남자친구에 대한 추억은 아마도 희수가 제일 많을 것이다. 다정한 추억을 간직한 젊은 연인들은 바로 희수가 주인공이다.
희수는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가 22살에 친구 넷중에 제일 먼저 결혼을 했다. 여고시절부터 조숙하더니 결혼도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임신을 해서 표시가 나도록 배가 불러 결혼을 했으니 첫아이가 군인이고, 둘째까지 대학생이다. 결혼 후 희수는 집 앞 상가에 레코드 방을 차렸다. 노래를 그렇게 좋아하더니 결국은 노래를 전파하는 가게를 하면서 남편과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두꺼비같이 생긴 남편은 사람이 좋고, 마누라 친구들까지 잘 챙기는 자상한 사람이다. 희수는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까지 수발하며 장사를 하고 자식 다 키우고 남편과 오순도순 사는 평범한 삶이다. 눈으로 보나 마음으로 보나 부러운 삶이다.
희수는 친구들 연락 방이다. 내가 친구들 대장하라고 했다. 미국 친구는 멀어서 연락을 못했는데. 희수 덕분에 연락이 끊기지 않아 이번에도 넷이서 기차를 타고 정동진으로 해서 정선을 대장 말 따라 그려, 그려 하면서 신나게 돌아다녔다. 가끔 희수는 친구들 말에 초를 치고, 잘난 척을 하고, 분위기를 생뚱 자르는 말을 하지만 인심도 후하고 힘들고 귀찮은 일을 앞서서 해 주어서 고맙고 편하다. 아직도 여고시절 단발 생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여고시절에 남자친구들 추억이 많아서 그런 건지…….그런대로 잘 어울린다. 얼굴에 검버섯이 큰 게 몇 개 생겼지만 화장도 잘 안하는 여고시절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친구다. 여고 때 생활과 전혀 딴판인 것도 희수의 삶이기도 하다. 십년이상 레코드 방을 하다가 지금은 반찬가게로 전환을 해서 반찬 냄새가 밴 손맛으로 친구들에게 연락을 수시로 하는 인심 좋은 배 둘레가 넓어진 보통 아줌마의 삶이기도 하다.